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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철학

지금이야말로 사랑의 철학시대입니다

by anarchopists 2020. 1. 16.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6/08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사랑의 철학시대입니다”

선거는 막을 내리고 그동안 온통 거리를 뒤덮었던 정치인의 ‘초상화’(?)는 기억의 저편으로 살아지고 말았습니다. 씨알에게 있어서는 정치현실의 초상화를 통해서 드러난 하이퍼 리얼리티 혹은 시뮬라크르(simulacre)에 대해서, 또한 각 정당의 선거 성패론과 그 의미에 대해서 갑론을박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사안은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정치관념입니다. 다시 말해서 공약으로 내세운 이념과 실천사항을 씨알의 “삶”으로 이어나갈 수 있는 추진력과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씨알들이 낡은 초상화를 새로운 초상화로 바꾼 것은 새로운 삶의 철학과 변화를 원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씨알 함석헌은 “지금이야말로 사랑의 철학시대입니다”라고 외친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사랑의 철학입니까? 그에 의하면 “평화”입니다. 앞으로 정치는 지속적인 사케르(sacer)를 통해서 희생과 구별을 지양합니다. 더 나아가서 정치는 천안함 사건으로 발생된 개인과 사회의 트라우마를 치유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며, 4대강 살리기라는 명분으로 찢겨진 산하를 싸매는 사회적, 국가적, 생태적 평화가 필요합니다. 함석헌은 “평화는 자연 현상이 아니고 인류의 자유의지를 통해 오는 윤리 행동”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평화란 인간의 의지적 행위를 통해서 이룰 수 있는 현실태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평화란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지향과 노력, 그리고 분투가 평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치가 씨알을 통해서 윤리적 지향을 가지도록 요청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정치는 모름지기 인간의 정신적 표상일 뿐만 아니라 삶의 구체적 행위입니다. 그런데 함석헌이 비판하고 있는 것처럼, “정치와 종교는 힘의 철학에 의하여 작용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정치나 종교는 힘의 철학, 지배의 철학, 군림의 철학, 죽임의 철학이 아니라 ‘사랑의 철학’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철학의 바탈에는 씨알의 “근원적 삶”(Urleben)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함석헌의 표현을 빌리자면 “같이 삶만이 삶”입니다. “공존만이 생존”입니다. 같이-삶을 위한 정치, 더불어-삶을 위한 정치, 서로-삶(상생)을 위한 정치, 삶의-있음, 삶숨의-있음의 정치를 구현하는 것이 사랑의 철학이고 지금 추구해야 하는 정치철학의 정신과 방향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만이 인간의 선천적 의지의 발현으로서 서로 조화를 이루고[和] 넉넉한 마음과 삶의 자리를 나눌 수 있을 것[平]입니다. 그런 뜻에서 함석헌이 “생(生)은 명(命)이다. 삶은 하나의 현상이 아니라 하나의 명령이요 주장이다”라고 말한 맥락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늘의 명령, 하늘이 살도록 한 것은 씨알을 삶답게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삶의 꿈틀거림이 곧 평화운동이요, 평화의 길”이라고 말했듯이 이제 정치인이 해야 하는 일은 씨알의 삶, 사람다운 사람, 삶-터가 생생하게 살아 있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가 “정신은 본래 남을 배척하고 싫어해서가 아니라 서로 무한히 주고받고 교통할수록 더 발달하는 것”이라 말한 의미는 정신의 바탈이 개별적 존재의 능력을 넘어서 사회적 공동체 안에서 이루는 의사소통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인간이 성숙된 행위라는 점을 드러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치인의 정신적 바탈과 씨알이 충분히 소통이 되는 교호성을 상실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설령 혹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정치는 진리가 아니’라 할지라도 인류 공동체의 정치와 윤리적 행위는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함석헌이 “사람은 지정(知情)만이 아니라 정신과 윤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 것은 인간의 정신과 윤리의 등가성을 염두에 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향후 정치적 현실 속에서 정치인은 씨알을 위한 한삶[大生命, 絶對生命]을 거역하지 말아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정치인이든 씨이든 모두가 하나의 바탈[性]에서 나오는 삶을 풀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2010.6.6, 김대식)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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