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함석헌평화연구소/김영호 교수 칼럼

전태일을 살려라

by anarchopists 2019. 12. 13.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9/10 07:07]에 발행한 글입니다.


전태일을 살려라

[함석헌]그 참한 혼을 살려내야 한다. 오늘 우리는 전태일을 추도하기 위해 모였다고 하지만 사실을 말하면 그에게 추도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기 손으로 자기 목숨을 불사른 사람에게 죽음을 슬퍼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나는 그보다도 차라리 우리가 그를 살려내야 한다고 하고 싶다. 전태일을 살려라. 그는 우리를 위해 죽었다. 우리가 그를 차마 죽은 채로 둘 수가 없다. 아니다. 전태일은 죽은 사람이 아니라 산 사람이다. 그는 그 죽음으로 우리 앞에 삶을 절규하고 있다. 그런 그를 어찌 차마 죽음 속에 묻어두고 썩혀둘 수가 있느냐? 전태일을 살려야 한다. 왜 우리는 그를 죽여서는 아니 되나?

첫째, 그는 이 썩어지고 악독한 사회에서 참 드물게 보는 아까운 심정의 사람이었다. 그는 마음이 착한 사람이었다. 자기의 어려움을 잊고 남을 도와주기에만 바빴다. 그 어머니의 말에 의하면 그는 불쌍한 어린 직공들을 도와주기 위해 밤늦도록 일을 하다가 통행금지 시간이 지나서 시내에서 창동까지 그 먼 길을 걸어오는 일이 많았다 한다. 그나마도 신은 벗어 들고 맨발로 오곤 했다는 것이다.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서였다. 그런 참한 마음을 어떻게 죽어 없어지도록 할 수 있겠나? 악하고 사나운 놈들만이 판을 치는 이 사회일수록 그 참한 혼을 살려내야 한다.

둘째, 그의 부르짖음이 지극했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은 그의 외침이요 호소요 경고다. 생각해보라. 스물세 살의 젊은이가 죽고 싶어 죽었겠나? 안타까운 가슴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 불길로 뽑은 것이다. 전태일의 죽음은 이 사회의 적신호다. 그렇게 착하고 정의감이 강한 청년이 살아서 자기 할 일을 하지 못하고 불길로써만 그 말을 할 수 있다는 이 사회는 어딘지 크게 잘못된 데가 있다. 사회의 밑둥, 생활의 근본 원리가 썩지 않고는 그런 처참한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셋째, 그의 죽음이 나타내는 그것이 바로 세상을 건지는 참 생명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제 목숨을 건지려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얻을 것이라”는 것이 이것이요, 공자의 “살신성인”이란 것이 이것이다. 인간 사회가 발전하고 정신이 자라온 것은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이는 욕심에 의해서가 아니고 전체를 살리기 위해 나를 바치는 이 정신으로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를 살려내야 한다.

그럼 어떻게 하면 전태일을 살려낼 수 있나?
첫째, 그가 남긴 뜻을 받아 행해야 할 것이다. 그가 인권의 유린을 당하고 자기 노동의 결과를 뺏기면서 아무 말도 못하는 불쌍한 직공들을 돕기 위해 몸과 마음을 썩히다 못해 몸을 불사르기까지 하고야 말았다면 그것을 실현하는 것이 우리 남아 있는 사람의 의무다... 이제라도 우리가 그가 하려다가 못해 안타까워했던 그 일을 해야 한다. 노동운동을 일으켜라. 그는 살아날 것이다. 몸으로는 아니라도 몸보다도 더 높은 생명으로 살아난다.

둘째, 그가 가졌던 그 믿음을 우리도 가져야 한다. 그가 “나 하나 죽어지면 뭔가 좀 달라지는 것이 있겠지” 했을 때 그의 확신이 어떠했던 것을 잘 말해준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남이 감히 하지 못하는 그 영웅적인 일을 했다. 그 말 속에 그가 정의의 법칙을 꽉 믿었던 것이 들어 있다. 또 모든 사람의 속에 양심이 있음을, 그리고 그것이 살아나고야 말 것을 믿었다... 그는 또 죽어도 죽지 않는 생명을 믿었다. 전체를 믿은 것이다. 그 전체에 더 힘있게 살려고 죽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 믿음을 가져서만 전체 안에서 그를 만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우리는 그와 함께 행동함으로만 그를 살려낼 수 있다. 그의 일을 우리 일로 알아 거기 참여해야 한다. 전체의 삶을 우리 삶으로 알아 하나로 일해야 한다. 그러면 그는 죽은 것이 아니고 이제부터 참으로 산다. 자란다...

태일이 죽은 것은 자기해방을 하기 위해서 한 것이었다. 속에 절대의 의지가 명령을 하고 있는데 나갈 길이 막혔다. 어떻게 할까? 아니 나갈 수가 없고, 그 난관을 물리칠 힘은 없고, 거기 고민이 있다. 그러다가 한 깨달음에 이르렀다. 즉 내가 힘이 없다는 것은 무엇이냐? 내 몸 하나 때문이 아니냐? 이 몸 하나만 아니라면 내 대적이란 놈이 무엇을 가지고 나를 위협하고 막을 수 있나? 이것 하나만 벗어버리면 자유다. 막을 놈이 없다.

억지로 해서는 자기해방이 아니 되고, 오는 대로 받아서만 참 자아로 해방이 되어 무한한 생명에 들 수 있다. 예수의 십자가도 그것이요, 간디의 죽음도 그것이다. 그들이 다 죽은 후에 살았을 때보다 더 크고 놀라운 영향을 주었다. 규모의 크고 작음은 있으나 태일의 죽음도 그 성격에서 마찬가지로 자기해방이다.... 태일의 죽음은 민족을 위한 일종의 손가락 짜름이다. 수혈이다. 민족의 생기가 사라져 가기 때문에 된 일이다. 한 민족이 생기가 마르지 않고는, 스물세 살의 시퍼런 청년이 분신자살을 한다는 그런 모순된 일이 절대 있을 수 없다... 그렇듯이 태일이도 민족의 숨이 막힌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 숨구멍을 뚫어놓으려고 제 몸에 불을 붙인 것이다. 근래에 우리 사회에 폭력과 부정부패가 느는 것은 민족의 생기가 줄어든 증거다. 태일의 죽음은 그 한 증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을 보고도 깨달음이 없다면 이 민족은 망해버리는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태일의 죽음은 참 의미에서 제물이다. 민족의 제단에 희생으로 바친 제물이다. 원시 사회로부터 제사의 목적은 그 전체 사회의 생기를 부흥시키는 데 있다... 어느 사회나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것은 곧 개체와 전체 사이에 불화로 막힌 것이 있다는 말이다. 사회가 바로 되려면 그것을 풀어야 한다. 푸닥거리라는 말은 여기서 나온다. 그런데 그 불화를 풀려면 언제나 제3의 인격의 희생이 필요하다. 이것이 예로부터 모든 사회에 희생으로 드리는 제사가 있는 이유다. 처음에는 짐승을 써서 상징적으로 했으나 나중에는 예수에게서 사실의 인격으로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태일이 노동자의 대우를 개선하기 위해서 노력하다가 뜻대로 되지 않아 종래 자기를 불살랐다는 것은 역시 정부라는 형식으로 나타나는 전체와 노동자 사이의 막히고 맺힌 것을 풀기 위해 자기를 제물로 바친 것이라 할 것이다.

제3의 인격의 희생이 어떻게 그 막힌 둘 사이의 화해가 되느냐? 양심의 법칙에 의해서다. 사람은 아무리 부족하더라도 다 양심을 가지고 있다...이리해서 언제나 옳은 사람이 자진해서 하는 희생은 전체 사회의 정신을 소생시킨다. 새 생명을 일으킨다. 태일의 죽음도 그 한 예이다.

나는 지난해 미국에 가 있는 동안 태일의 소식을 신문에서 보고 알았다. 그때의 내 슬픔은 참으로 컸다... 나라에 돌아올 때는 집도 말고 친구도 말고 우선 태일의 무덤으로 직행하고 싶었으나 정작 비행기에서 내리니 일이 그렇게 되지도 못했다. 오늘 이 자리만이라도 만들지 않고는 내 마음이 견딜 수 없었다. 한때 기념이나 하자는 것이 아니라 태일을 내 속에 살려보자는 것이다.

태일아! 내가 너를 죽였구나 하면서 몇 번이고 눈물을 못 금했다. 사실 내가 한일회담을 반대하며 싸웠을 때 전태일이만 해서 내 몸을 능히 불사를 만했더라면 나라꼴이 오늘같이 말이 아니 되지는 않았을는지 모른다. 사회에 좀 밝은 공기가 흘렀다면 스물세 살의 꽃 같은 생명이 희생되지 않고도 됐을 것이다. 그러니 누구를 나무랄 것이 있느냐. 태일을 죽인 것은 이 나지, 이 70이 되어서도 아직도 욕심을 이기지 못하고 이 살 속에 갇혀 있는 이 나지.

- 위 글은 함석헌 선생이 전태일 열사 1주기를(1970) 당하여 당시 군사정권의 감시를 받으면서 추도회를 열고 말한 추도사의 주요 대목이다. 전태일 분신 당시 그는 미국 체재 중이었다. 소식을 “듣고 나니 차마 밥을 먹을 수 없어. ‘아, 배고프다’ 하는 소리가 자꾸 들리는 것만 같아” 하면서 단식을 했다고 한 편지에서 썼다. 함석헌은 지식인으로서 누구보다 앞장 서서 전태일의 희생의 의미를 선양하여 비폭력 민중운동과 민주화 운동의 상징과 기폭제로 삼았다. 분신이지만, 불교경전(법화경)에서도 중생구제를 위한 타당한 방편으로 인정되었듯이, 폭력적이 아닌 비폭력적 수단으로 간주된다. 비폭력의 성자 간디에게도 자기희생은 비폭력의 핵심적인 요소이다.

수일 전 전태일의 모친 이소선 여사가 별세했다. 모든 노동자의 어머니로 추앙을 받아온 이 여사는 아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아들이 못 다한 뜻을 이루기 위하여 여생을 40년 넘게 노동운동에 받쳤다. 그것은 마치 장준하의 꿈을 이어받아 열화같이 민족 통일에 몸을 받친 문익환 목사의 일생 같이 민족의 제단에 불사른 삶이었다.

함석헌은 ‘진리의 바통’을 이어주고 누군가가 받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바로 전태일-이소선과 장준하-문익환이 그 아름다운 바통 전승이다. 재벌-아들의 재산 상속과 독재자-딸의 권력 세습은 아름다운 이어줌이 아니다. 남에서나 북에서나 시대착오적인 바통 터치가 일어나고 있다. 선순환과 악순환의 차이다.

이제라도 우리는 각자가 누구의 정신을 이어받을 것인가 심사숙고하여 모든 분야에서 선구자나 참 스승을 한 사람씩 정하여 그 바통을 이어받아 새롭게 살아간다면 이 막다른 골목에 든 나라를 살릴 수가 있지 않을까. (우선 누가 장준하-문익환과 전태일-이소선의 바통을 이어받을까. 그것은 꼭 단수일 필요는 없다.) (2011. 9.10, 김영호)

김영호 교수님은
인하대학교 명예교수다. 선생님의 전공은 종교철학(원효사상)으로, 세계관의 큰 틀(패러다임)은 함석헌과 크리슈나무르티에서 영향을 받은 다원주의다.

선생님은 늘 사회변혁을 갈망하였다. 하여 해외 민주화운동의 도구인 민중신문』(캐나다) 창간(1979)에 간여하였으며,『씨알의 소리』편집위원, 함석헌기념사업회 씨알사상연구원장을 지낸 바 있다. 지금은 함석헌평화포럼 공동대표와 함석헌학회 부회장 학술위원장직을 거쳐 함석헌학회 학회장을 맡고 있다.(2011년 8월 현재) /함석헌평화포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