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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칼럼

함석헌의 종교언어와 살림의 언어

by anarchopists 2020. 1. 12.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8/11 06:31]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의 종교언어와 살림의 언어

인간의 삶이 복잡해지면서 언어 또한 복잡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첨단 문명의 발달로 인하여 인간의 언어가 단순화되고 일원화되는 것 같지만 반면에 소통은 더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한 세대만 건너뛰어도 언어가 소통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언어가 소통되지 않는다는 것은 상호간의 삶의 의미를 주고받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서로 전달되지 않는 언어를 사용하면서 사회와 세계를 새롭게 창조해내지 못하는 상황들이 전개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종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원로 종교학자 정진홍은 이러한 종교언어의 불통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종교언어가 그것 자체로 하나의 특수한 언어라는 사실을 지각하지 않은 채 종교언어를 사용하거나 발언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아예 우리의 일상적 언어 생활의 경험 속에서 특수언어의 현존자체를 인지하지 않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 종교를 발언하는 언어, 곧 종교경험이라고 일컬어지는 특정한 경험을 진술하는 종교언어는 일상언어의 차원에서 소통불가능한 장애를 수반한다. [......] 종교언어는 그 진술형식 속에서 스스로 사건과 의미의 연관구조를 지닌다. [......] 특수언어의 특수성은 일상언어의 기호를 공유하고 있고, 그럴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특수성을 확보한다는 사실... 그렇지 않을 때 우리는 일상언어에 의한 특수언어의 거절, 그리고 특수언어에 의한 일상언어의 훼손을 감행하게 된다. 종교적 광기나 지적 독선은 그러한 현실의 다른 묘사이다.”

다소 긴 내용을 언급했지만 종교언어의 특수성은 일상언어와의 관계성 속에서 소통되지 못한다면 의미를 상실할 뿐만 아니라 광기와 독선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말에 동감이 갑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규호의 말은 시의적절합니다. “참으로 사람의 가장 위대한 과제는 사람과 삶과 역사의 의미를 창조하는 것이다. 이것은 곧 형이상학의 과제이며 종교의 과제이며 예술의 과제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윤리적인 과제이다. [......] 다시 말하면 부조리한 세계를 창조적으로 다루어서 하나의 밝혀진 의미 있는 세계를 이룩하는 것이다.”

이규호가 말한 ‘의미 있는 세계’를 달리 풀면, ‘살림의 세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 삶, 역사의 의미는 ‘살림’과 매우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종교 혹은 종교의 언어가 살림이 되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 사람이 함석헌입니다. 그는 “새 종교, 하나의 종교, 참 종교가 필요하다. 있는 모든 것을 버리라는 말이 아니라, 살리라는 말이다. 그러나 살리려면 일단은 버리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종교 자체에 대한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기대를 가지고 오늘의 종교를 보면, 한편에서는 벌써 동이 트는 것이 보이나 대부분은 멀었다. 아마 과거에 언제나 그랬던 것 같이, 기성 종교는 그대로 화석이 되어, 역사의 지층 속에 남고 말 것이다.”

기성 종교가 화석이 된다는 의미는 종교의 기원 즉 로고스의 생명력을 상실한다는 말입니다. 말은 살림에 있지 가뭇없는 죽임에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종교의 언어는 박제되고 중세의 언어만 부르짖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발생될 수 있는 창조적인 삶의 의미들이 중세의 교리에 갇혀서 급기야 살지 못하고 오히려 죽음으로 내몰리는 것을 목도하게 됩니다. 종교의 언어가 살면 종교가 살 수 있습니다. 종교의 고백 언어가 종교 공동체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상식의 언어, 공통의 언어, 이해의 언어가 될 수만 있다면, 씨알을 살리고도 남습니다.

예수의 언어를 비롯하여 부처의 언어, 무함마드의 언어, 공자의 언어 등은 죽임의 언어가 아니라 살림의 언어였습니다. 그 언어가 하나의 사건이 되었기 때문에 각각의 종교가 탄생한 것이 아닙니까? 살림의 언어가 정신의 새로운 탄생을 가져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종교인이 부르짖는 언어가 과연 살림의 언어일까요? 아니 정신의 살림을 목적으로 하는 것일까요? 정신의 살림을 가장한 수단화된 언어, 가공된 언어나 목소리는 아닐까요? 언어는 소리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만 종교에서 발생되는 언어는 단지 소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의미의 발생 즉 살림의 발생을 본질로 하는 자체의 물음이 결여되어 있으면서 앵무새처럼 소리를 내기만 합니다. 사람들의 삶에서 의미가 발생되지 않고 오히려 정체되는 삶이라면 종교의 언어는 살림의 언어가 아닙니다. 오히려 소음이자 잡음입니다.

함석헌은 “돌 같은지라 생활 체험이 들어갈 수가 없고, 기계적인지라 전체적․생장적(生長的)인 역사 파악을 하지 못하고 도리어 그것을 이단시하여 버린다. 본래 종교 경전이라는 것은 개조적(個條的)인 법률서가 아니요, 자라는 힘을 가진 원리를 보여 준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종교의 경전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살림의 언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살림의 언어를 죽임의 언어로 혹은 자신들만의 언어로 만들려고 하는 기성 종교의 권력자들은 그것을 교조적 무기로만 사용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더 이상 종교와 그 종교를 품고 있는 사회 공동체에서는 살림이 발생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함석헌이 말한 것처럼, 종래의 사용하던 자신의 낡은 언어를 우선 버려야 합니다. 자신이 가진 기득권의 언어를 버리고 새로운 종교 언어, 새로운 종교로 탈바꿈해야 합니다. 그래야 설득력이 있으며 그 설득력을 통해 새로운 살림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고집스럽고 편협한 언어, 타자를 죽이고 있는 언어라는 사실을 까마득하게
모른 채 입에 달고 다니는 언어, 자신조차도 알지 못하면서 내지르는 언어, 자신의 고백대로 살지 못하는 언어, 타자를 위협하고 협박하는 폭력적인 언어, 자신의 미래는 희망적으로 기대하는 한편 그것을 위해서 정작 타자를 절망하게 만드는 언어, 내 종교의 언어만이 유일한 소통언어(지배언어)이고 타종교의 언어는 말살되어야 할 언어라고 생각하는 오만한 언어 등은 모두 살림의 언어가 아니라 죽임의 언어라는 사실을 얼른 알아차려야 합니다.

기성 종교가 자신을 옹호하기 위해서 철옹성처럼 쌓아 올린 언어들을 철저하게 버리지 않는다면, 살림의 종교, 살림의 세계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만일 언어가 바뀐 것을 보고 그 삶이 바뀐 징표로 읽을 수 있다면, 모든 종교 공동체가 사용하는 언어의 뿌리를 살펴보면 살림에 있는지 죽임에 있는지를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필자는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종교들이 비대해진 만큼 자본의 언어, 부자의 언어, 막강한 권력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약자를 배려하고 가난한 자들을 편드는 언어, 잘못된 권력 집단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종교 공동체의 언어는 모두 자본의 언어요, 사어(死語)에 지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이제 죽임의 언어가 아니라 씨알들에게 살림의 언어를 통해 살림의 세계를 나아가자고 말하는 함석헌의 목소리, 함석헌의 살림 언어를 귀담아 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 살림의 대열에 필요로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정신을 살리고자 하는 새로운 살림의 언어를 대폭 수용하고 사용하려고 하는 씨알이라면 모두 환영합니다(2010/8/11, 김대식).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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