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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칼럼

[오늘의 명상] 씨알의 인간학2-전체적 인간과 이성적 존재

by anarchopists 2020. 1. 11.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9/07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씨알의 인간학2
전체적 인간과 이성적 존재

요즈음 우리 사회의 인간(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나 자신이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영국 철학자 홉스(Thomas Hobbes, 1588-1679)의 ‘Homo homini lupus’ 즉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라는 말이 실감이 납니다. 서로 물어뜯고 죽이다 못해 제 살을 깎아 먹고 사는 우리의 본능적인 모습을 보면서 말입니다. 정치적 인간은 종교적(초월적) 인간으로, 다시 종교적 인간은 경제적 인간으로, 그리고 현재의 감성적(감각적) 인간으로 변천해 가면서 인간의 내면성에 대한 성찰과 인간 자신에 대한 본질 규정도 끊임없이 이루어져 왔습니다. 그럼에도 이성적 존재, 이성적 인간으로 이행되어 인간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는 과정은 더디고 간헐적이기만 한 것이 현실입니다.

이와 동일한 고민을 안고 한 시대를 살아간 함석헌은 인간 존재를 세 층위로 나눕니다. 인간의 본능적, 생리적, 심리적 특성을 일컫는 ‘본성’적 층위, 이성과 정신적 측면의 ‘지성’적 층위, 그리고 정신(spirit), 영혼을 관장하는 ‘영성’적 층위가 그것입니다.
함석헌은 이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마지막에 있는 영성이라고 하는, 혹은 정신이라고 하는 그 층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 없이는 사람이 아니니까. 나타나 보이지 않지만, 그것이야말로 사람이 사람 되는 근본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한가운데 있는 이성 혹은 지성이라는 그 층입니다. 사람이 사람된 점은 여기 있습니다. 영성은 잘 뵈지 않기 때문에 거기 대해서 분명하게 체험을 못하고 마는 사람도 있지만, 누구나 다 아는 점은 사람인 다음에는 다 이성을 가지고 있다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성에서 가장 중요하게 나와 있는 건물입니다”(218-219).

이 중에서 사람의 근본을 만드는 것, 그것이 영성(靈性, spirituality)이라고 말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것이 없이 온전한, 전체적 인간이 아니라는 겁니다. 본성과 이성만으로 인간이 다른 존재와 차이가 있다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바로 신을 인식하고 의례적(ritual) 행위를 통해서 내세 동경을 반복적으로 체현하는 존재의 특성은 인간만의 특성일 것입니다. 그러나 함석헌은 이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인간 존재의 성격을 ‘이성’ 혹은 ‘지성’에다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영성은 사람됨의 뿌리(근본)로, 이성은 사람다움의 독특한 본질로 이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함석헌의 논리를 따른다면 사람을 사람으로서 규정할 수 있는 것은 이성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이성적 사유나 행위를 할 때에만 비로소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 존재의 가장 밑바닥 층이라 할 수 있는 본능에만 이끌려 산다면 그것은 이미 인간이 아닙니다. 인간은 모르지기 그 본능을 통제할 수 있어야 보다 더 고상한 존재로의 도약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함석헌은 인간이라면 보편적으로 이 이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다만 우리가 이성적으로 사유하고, 이성적으로 말하고, 이성적으로 행위하지 못 하는 것은 이성의 자각이 결여되어 있거나 이성의 발현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애초에 이성 능력은 정신활동을 가능케 하는 본성이요, 이성은 인간의 반성을 가능케 하는 능력입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 사회가 이성적인가?’라고 물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인간으로서의 사태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자꾸 결여되고 가고 있으며, 정신활동이 아닌 물질적 활동과 결과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각기 인간에게는 이성적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발전시키지 못하는 것은 결국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주도적 삶을 살 수 없도록 만듭니다.

이른바 자신의 입법에 따라 사는 자율적인 인간이 아니라 타율적 존재가 돼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함석헌은 “씨알-자기의 갈 길을 내가 아는 거지. 내가 안다. 나도 알고 가렵니다 하는 거예요”(263). 다시 말해서 씨알로서의 인간, 인간으로서의 씨알은 자기 주도적 삶의 개척자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인간이 다른 힘에 의해서 삶이 결정되거나 끌려가는 삶이 아니라 자기가 이성에 의해 주도적인 삶의 길을 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성은 내가 나의 길을 알고 갈 수 있다는 현존재의 고집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자기만 아는 본능적 존재도, 반성을 통해 초월적 삶을 살고자 하는 이성적 존재만도, 내내 이 땅의 현실을 무시한 채 보이지 않는 초월만 지향하는 영성적 존재만도 아닙니다. 이 모두가 인간의 본성을 구성하는 특성들입니다. “인간은 그것이 아닙니다. 전체야말로 인간입니다. 나 혼자 참고 견디는 것만은 아닙니다. 전체가 어떻게 하면 장마 가뭄을 이겨나갈 수 있도록 인간관계를 가지느냐 하는 데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전체의 구조가 인간을 건져왔습니다”(《함석헌저작집》 11, <세계의 한길 위에서>, 한길사, 2009, 106-07).

지금 가을로 가는 문턱에서 막바지 여름의 질투가 이끌고 온 태풍으로 힘들어 하는 백성들과 뿌리째 뽑혀진 나무들의 아픔들이 있습니다. 나만 생각하는 본능적 인간은 이런 현상에 대해 아랑곳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성적 존재입니다. 전체를 내다보며 다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반성적 숙고를 할 수도 있는 이성적 동물(animal rationale)입니다. 전체의 구조 속에서 보다 더 완전한 지구 공동체 혹은 사회 공동체를 구현하려는 인간은, 보이지 않지만 인간의 동근원적 뿌리(homo spiritualis)를 생각한다면 모두가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전체적 인간의 요지는 모두를 배려하고 보살펴야 진짜배기 사람이라는 것입니다.(2010. 09. 07 새벽, 김대식)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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