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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칼럼

[오늘의 명상] 씨알의 인간학 1, 평화를 추구하는 인간

by anarchopists 2020. 1. 11.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9/06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씨알의 인간학1
평화를 추구하는 인간

“인간이란 무엇인가?” 진부한 물음 같지만 사실 영원히 해답을 찾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한자어를 있는 그대로 풀면 ‘사람 사이’(人間)를 말하는 것이고, 영어로 풀면 human being이니 ‘흙에서 비롯된 존재(있음)’, ‘흙에서 나와서 있음’이라는 뜻이 됩니다. 그러므로 세계 내에 ‘있음’으로 존재하는 인간은 사람이 서로 엇기대어(人) 사이사이에(사이좋게) 관계를 맺고 사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홀로-있음이 아니라 이미-관계-속에-있는-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함석헌은 이 인간이라는 존재가 관계-속에-있어야-함을 이렇게 말합니다. “같이 삶만이 삶이다. 공존만이 삶이다”(함석헌저작전집 12. 평화운동을 일으키자, 한길사 2009, 17쪽). 같이-삶, 함께-있음(共存)의 지향은 ‘삶’입니다. 사람과 삶이 동근원적 개념이라고 할 때, 사람은 곧 삶이여야 합니다. 사람이 삶을 저버리고 정반대의 길로 가고자 한다면 그것은 죽음이 아니라 홀로-삶, 나만-삶, 제멋대로-삶입니다. 그러므로 함석헌이 제시한 인간의 삶은 같이-삶, 함께-있음이라고 말한 것은 당시로서는 매우 훌륭한 통찰력이었습니다.

게다가 인간이 같이 살아야, 함께 존재해야 평화로워진다는 해석 또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중요한 삶의 지표가 됩니다. 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너도 있고, 너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결국 같이,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함석헌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종교의 위대한 교사들은 수천 년 전부터 인류에게 모든 당파심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왔다. 수천 년 후에 과학으로 인해 오게 되는 시대를 그들은 자기네 가슴속에서, 인간의 본바탕 속에서, 과학적인 방법이 아니라 정신적인 뚫어봄으로써 보아내었다”(함석헌저작전집 12. 평화운동을 일으키자, 한길사 2009, 28쪽).

여기에서 ‘당파심’이 평화를 저해한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파당 즉 나의 무리, 우리‘만’의 모임(집단)을 만들어 다른 무리를 배제한 채 자신들만의 이익을 앞세운다는 것은 같이 망하자는 이야기밖에는 안 됩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교육, 종교, 환경, 지역(문화) 등 전반이 이 당파적 이기심의 발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함석헌은 옛 성현들이 이 당파심을 비판하고, 이것은 인간의 올바른 삶이 아니라는 정신적인 꿰뚫어-봄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의 가슴속, 마음속, 제 바탕에서 세계를 꿰뚫어 보는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꿰뚫어-봄은 가슴, 마음으로 사람과 사람의 문제를 꿰어서 표피가 아닌 심층/밑바닥까지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이른바 세계를 보는 통찰력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진리입니다. 참으로 믿는 것, 참이라고 믿어지는 것, 참된 이치로서 우리 앞에 드러나는 것(aletheia)이 우리에게 보여짐으로서 우리가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근본이 달라지는 것이며, 마음 바탕에 변화가 생기는 것입니다. 함석헌이 말한 것처럼 “우주와 인간의 근본이 뚫려 밝혀지는” 것입니다.

진리가 진리인 이상 둘일 수는 없다. 그러므로 서로 제 믿는 바대로 뚫은 것이 결국 맞구멍이 뚫리게 된 셈이다... 우주와 인간의 근본이 뚫려 밝혀지는 날, 완전에까지는 아니라도 그건 가능성이라도 환히 보이는 날, 달라질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모든 문제는 그 마음 하나에 달렸다... 땅 위에 평화가 온다면 그것은 사람의 가슴속의 평화가 나타남일 것이다. 수천 년 전부터 거룩한 맘들이 한 것이 무엇인가. 결국 제 가슴 안에 평화 하나를 가져오잔 것 아니었나”(함석헌저작전집 12. 평화운동을 일으키자, 한길사 2009, 29쪽).

그러므로 평화는 조직이나 체제도, 재화의 교환도, 법의 제/개정으로서가 아닌 “마음 하나에 달렸”습니다. 그러기에 마음이 달라지면 사람이고 인간이 되자면 마음부터 뜯어 고쳐야 합니다. 왜냐하면 평화는 사람의 마음속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달라지면 평화가 옵니다. 다시 말해서 종교적인 의미에서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모두가 거룩해져서, 티 없이 맑아져서 흠도 없는 마음이 되고자 애쓴다면 이 땅에 평화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함석헌은 모든 종교에서 추구하고자 했던 근본적인 가르침이 거기에 있었다고 보았습니다. 함석헌의 참된 씨알 인간(학)의 첫 번째 발걸음은 우리가 관계-속에-있는-존재임을 자각하고 제 마음속에 평화가 싹트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화(平和), 글자 그대로 서로 골고루 나누어 먹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일입니다. 설령 그것이 인간사에서 가장 지난한 일일지라도 말입니다. (2010. 09.06, 김대식 )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위 그림과 사진은 인터넷에서 따온 것임.-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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