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칼럼

함석헌의 종교비판, 예수 가라사대 "여시여시"하다

by anarchopists 2019. 12. 28.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2/14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의 종교 비판1]


“종교는 씨다.
썩어서 새싹이 나와 자라서
열매 맺어 퍼져나가야 한다”

지난 주 조계사에 들어가 난장판을 만들며 타종교를 폄하하고 폄훼하는 일부 목사와 추종자들에 대해서 법적 조치가 이루어질 거라는 보도가 있었다. 이젠 ‘땅밟기’도 모자라 타종교의 고유 정신을 짓밟는 행태를 자행하겠다는 건가. 도대체 언제까지 수천 년간 이 땅의 민중의 정신과 영성적 토양이 되어 준 우리 종교들에 대해서 폄훼하는 짓을 하자고 하는 것인가. 그것은 어디서 비롯되는 판단과 신념인가. 야훼에 ‘대한’ 신앙인가? 아니면 야훼‘의’ 신앙인가? 야훼에 대한 해석학적 반성이 시도되어 이루어지는 실천은 제각각 다를 수 있으므로 이것은 타자를 존중하고 의사소통의 합리성을 통한 대화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야훼의 신앙은 나의 신앙이 아니라 야훼에게 속해 있는 신앙이다. 야훼의 판단과 의지가 무엇인지 그분과의 일치를 이루지 않고서는 절대자로부터 온다는 망언을 일삼거나 과잉된 신앙적 행동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대부분의 종교적 신념은 바로 전자에 입각한 경우가 허다하다. 마치 자신이 믿는 바나 자신이 해석한 것이 전부인 양 착각하는 것이다. 인간이 지닌 이성의 한계에 대한 겸허한 자세를 지니지도 못한 것이 아니던가.
함석헌은 이러한 종교 현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종교는 변치 않으면서 또 변해야 하는 것, 늘 그대로 있으면서도 늘 새로워져야 하는 것이다. [...] 모든 것이 다 그렇지만 종교까지도 부정되어야 종교다. 내용으로는 어떻게 고상한 진리를 알았다 하더라도 “이것은 절대 진리다” 하는 순간 그것은 거짓이 돼버리는 것이요, 남이 보기에 어떻게 열심 있는 신앙을 가졌다 하더라도 “내 믿음은 절대 정신(正信)이다” 하는 순간, 곧 불신이 되어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자꾸 새로워질 수밖에 없다
”(함석헌저작집, 새 시대의 종교, 한길사, 2009, 16-19쪽).

옳은 말이다. 종교가 자신의 종교 자체까지도 상대화시킬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겸손한 마음으로 종교를 날마다 쇄신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종교만이 절대적이다라고 말하는 순간 종교가 갖고 있는 절대성은 상실될 수밖에 없다. 종교는 절대적 영원을 추구하는 것인데 상대적 시간에 머물러 안주하고 그 상대적 잣대로서 타종교와 타종교인을 비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심지어 특정 종교를 신봉하는 그 신자 자체도 인간이라는 유한적인 존재라는 것을 망각하면 안 된다. 특정한 공간과 시간 안에서 수많은 개별적인 존재자들이 자신이 추구하는 신념 체계에 따라 의례를 거행하고 믿음의 내용을 고백하는 것은 그야말로 그 순간이 절대적 깨달음의 순간이기에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 순간이 지나면 깨달음은 다시 상대적인 것이 되기 때문에 또 다른 깨달음을 향해서 되어 가야 한다[精進]. 다시 말해서 절대라고 생각했던 것을 놓고 다시 완전한 절대를 향해 나가야만 가상적 불신과 회의가 없는 확실한 진리 체험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날로 새로워져야 한다.
새로워져야 한다는 것은 ‘나’라는 과거의 자아가 마치 본래적 자기라는 것을 규정하지 않고 공간과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 생성되면서 참 나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썩어져 나 아닌 것이 사라져야만 새로운 나를 만날 수가 있지 않은가.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똑같은 것이던가. 어제는 죽었고 오늘은 살았으니, 과거의 나의 맘과 몸은 이미 썩어서 오늘의 내가 되었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전 15,31)고. 그런데 지금의 종교나 종교인들은 때마다 살기를 바란다. 자신들이 죽어야 비로소 세상이 살고, 종교가 살며, 우주가 산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이미 예수가 2천 년 전에 외치던 말씀, 너희가 썩어져야 한다. 그래야 생명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말을 허투루 들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예수의 말씀에 따라 산다고 자부하는 그리스도교는 허튼수작이나 일삼는 허투(虛套)의 종교가 될지도 모른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예수께 “어찌하면 저희가 살겠습니까? 썩으면 되겠습니까?” 하고 묻는다면 그분은 이렇게 말씀을 하셨을까? “아무개야, 여시여시(如是如是)하다.” 깊이 새겨야 할 말이다(2011/02/14, 김대식)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