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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칼럼

성탄메시지-전쟁이야기 그만 하자

by anarchopists 2020. 1. 4.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12/24 08:20]에 발행한 글입니다.

예수 성탄을 통한
소통의 종교와 정치가 구현되기를 바란다

“망령된 사람과 논쟁하는 것은 얼음물 한 사발을 들이켬만 못하다”(與妄人辨, 不如喫氷水一碗). 형암 이덕무(炯菴 李德懋)가 한 말이다. 마음은 고사하고 언어로 이루어지는 소통도 안 된다는 말이겠다. 한번은 어느 가톨릭 교구청에서 주최하는 평신도 선교사 훈련을 위한 교육에서 종교간의 대화에 관한 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 필자가 목사이기는 하지만 가톨릭에서 공부한 경험과 개신교의 본바탕이 신구교의 상호이해를 매개해주는 좋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으리라. 그러나 슬픈 현실은 그것을 단점으로 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며, 같은 종교 안에서조차도 소통이 안 된다는 것이다.

사실 종교란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경험 세계 중에 일부의 ‘다른 경험’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회가 이미 다문화, 다원화, 다양화의 성격을 띠면서 어떤 절대성을 주장하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한국사회에서 타종단과의 이해나 교류는 상식을 벗어난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연하게 드러내는 것은 결국 극단적인 배타성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므로 타종단과의 대화를 더욱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런데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J. Derrida)의 논리를 따라가 보면, 그 정체성이란 확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디페랑스’(differance) 즉 ‘차연’(差延)이라는 개념을 통해 알게 된다. 정체성(존재) 혹은 본질이란 본시 시공간 안에서 개념의 미확정성과 유예성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획득한다는 것은 모험과도 같다. 종교를 구성하고 있는 개별적인 맥락들도 마찬가지 아니던가.


그날 강의의 분위기는 경직되지 않았고 매우 편하게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었다. 아니 재미있었다. 사실 그분들에게 유익했다기보다 필자에게 더 편한 시간이 되었다. ‘아, 종교의 소통이 가능할 수 있겠구나. 세상에는 닫힌 사람보다 열린 사람이 더 많겠구나’하는 희망을 갖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아마도 강의를 들었던 분들과 필자가 충분히 교감하면서 즐거웠던 이유였을 것이다. 또한 서로 다른 종교를 인간과 인간의 대화로 풀고, 그러면서 각자가 믿고 있는 종교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같이 나누는 데서도 신앙적 공통감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일이 성탄절이다. 성탄절의 유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어떤 사람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태양신을 숭배하던 12월 25일을 예수 탄생일로 제정되었다는 설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성탄절 즉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교나 유대교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날짜인 것만은 분명하다. 특히 12월 25일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비가 오는 우기에 속한다는 점에서는 더더욱 신빙성이 없는 날이다. 역사적인 기록에 따르면, 성탄절이 예수의 탄생일로 간주된 것은 4세기 중엽 약 354년이었다. 그러면 어떻게 성탄절이 12월 25일이 되었을까? 루가복음서에 보면 예수의 수태고지가 나오는데,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를 찾아와서 예수님의 수태를 알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그 수태를 알린 날이 그러니까 4세기 당시의 새해 첫 날인 3월 25일이었기 때문에 대충 잡아 9개월 후인 12월 25일이 예수의 탄생일이 되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17세기 영국의 청교도들은 더럽혀진 인간들이 발광하는 날이라고 하면서 성탄절을 비난하기도 했다.

이번 성탄절에는 개신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가 다른 그 무엇보다도 예수 탄생의 의미를 되새기는 마음의 쇄신, 이웃 종교와의 관계 쇄신을 통해 좋은 모습을 다시 한번 갖춰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더 나아가서 마음의 벽, 또 그 마음의 벽만큼 높이 쌓고 있는 이웃집과의 울타리도 좀 무너뜨린다면 어떨까. 그렇게 하기 위해서 예수가 평화의 사신으로 온 것은 아닐까.

지금 종교는 신과도 통(通)하지만, 인간과도 통(通)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또한 지금 이 나라 백성들은 예수의 평화정신에 입각하여 평화의 지도력을 발휘하는 지도자의 신뢰어린 좋은 소식을 갈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발터 카스퍼(W. Kasper)가 “예수의 메시지는 기쁜 소식이요, 하나님의 최종적이며 궁극적인 은총의 제공이다... 예수의 설교는 위협의 설교가 아니라 기쁜 소식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이 나라의 수장도 그러한 신앙자세로 당면한 국가 대소사를 잘 해결해준다면 백성들에게 뜻깊은 성탄선물이 될 것이다.2010.12.24., 김대식)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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