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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칼럼

모든 종교여, 너 자신부터 비판을 하라

by anarchopists 2019. 12. 28.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2/15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의 종교비판2]


“교회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생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자기소화 혹은 자기비판,
자기섭취를 함으로 해야 할 것이다”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는 “창조가 있기 전에 파괴가 있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좋은 취향(good taste)이 얼마나 불쾌한가를 말한 적이 있다. 종교도 이와 같은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새로운 정신을 창조하기 위해서, 새로운 영성을 고양하기 위해서 종래의 잘못된 관행과 행위들을 파괴해야만 한다. 그것이 설령 좋은 맛이라고 여겼다고 하더라도 이제 더 이상 좋은 맛이 아니다. 아니 이미 좋은 맛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기존의 맛에 길들여지면 그 맛이 전부인 양 착각을 한다. 착각을 하다못해 그 맛에 익숙해져 더 이상 고칠 수 없는 나의 식습관이 되는 것이다.

그것을 아무리 고치려고 애를 써 봐도 고쳐지지 않는 것이 평생의 식습관이다. 하물며 종교는 말할 나위도 없다. 종교는 세상의 좋은 맛을 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종교는 좋은 맛을 내기 위해 너무 많은 조미료를 섞고 말았다. 그것을 사람들이 알아차려 버린 것이다. 자신들이 지금까지 맛들인 음식이 너무 많은 조미료가 가미된 것이라는 사실을. 반면에 그들은 이제 진리의 맛, 참다운 삶의 맛, 신이 주는 깊이 우러난 맛, 삶의 고통도 있지만 그 고통을 딛고 일어서면 신앙의 향긋한 맛이 있다는 것을 알기 시작했다.

그러니 종교가 새로워지기 위해서 파괴는 어쩔 수 없는 선결과제여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냥 파괴가 아니라 새로워지기 위한, 창조되고 새로운 정신을 발생시키기 위한 파괴이니 탈구성, 탈구축이라 해야 할 것이다. 이른바 deconstruction이다. 이러한 파괴는 자기비판에서 시작된다. 자기비판이 결여된 상태에서 대중들의 맛을 파괴할 수 없으며, 잘못된 정신상태를 새로 구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종교가 그러기에 너무 늙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함석헌의 말이다.

현대가 과도기에 빠졌다 함은 교회가 늙어버렸다는 말이다. 다음 시대로 진전되는 것을 보는 면에서 말하는 고로 임산기라 하지만 성인으로서의 교회 자체로 보면 자라기를 멈추고 늙어버렸다는 말이다. 시대를 통일해가는 것은 종교인데, 그 종교 자체가 자라는 때까지는 역사도 나아간다. 그러나 종교가 모체로서의 자기완성을 다하고, 열린 교회가 되지 못하고 닫힌 교회가 되는 순간, 자기통일을 완성하는 동시에 역사를 통일해 갈 실력을 잃어버린다. 그것은 곧 정신적 침체를 의미한다”(함석헌저작집, 새 시대의 종교, 한길사, 2009, 47쪽).

다른 어떤 것을 다 제쳐두고라도 "정신적 침체"를 방기하고 조장하는 종교는 더 이상 설자리가 없다. 아이가 자라고 성숙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성인으로서 갖추어야 하는 이성적이고 정신적인 성장을 이루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만일 정신적 지체 현상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어른이라 말할 수 없으며, 후손을 지도하고 인도할 수 있는 자격이 없는 것이다. 지금 종교가 그 꼴이 되어 가고 있다. 사람들을 계도하고 정신을 성숙시켜야 하는 종교가 오히려 노화현상을 겪고 있으니 말이다.

종교는 세상에서 짠 맛, 단 맛, 쓴 맛, 신 맛 등 맛을 내는 요리사여야 한다.
주방에서 일하는 주방장이 누구인지 몰라도, 그 맛을 알아본 고객들이 그 식당의 진가를 아는 것처럼, 고객들이 냉철한 비판에도 귀를 기울여 자신만이 갖고 있는 고유의 맛을 창출하려고 각고의 노력을 하려고 하는 것처럼, 종교도 그리 해야 한다. 저 골방에 박혀서 아무도 그 종교의 외향을 몰라도 그 종교의 맛과 종교의 종교다움으로 인해서 그 가치에 따라 살아가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종교는 대중들의 비판에도 겸허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 스스로 자기 비판을 통하여 그 맛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람들은 물을 것이다. 종교는 지금 감당할 만큼의 소화력을 가지고 있는가? 종교는 지금 자기비판을 끊임없이 수행하고 있는가? 종교는 자기완성을 위해서, 시대에 앞서 질주하고 있는가? 故 이태석 신부처럼, 자신과 이웃을 위해서 종교의 맛, 삶의 맛을 “아침에 눈떠서 잘 때까지 무조건 퍼주는” 삶을 살고 있는가? 맛에는 한 집안의 영혼, 정신, 역사, 고유성, 기품 등이 녹아 있다. 그렇다면 지금 종교는, 맛의 종말이야말로 맛이 갖고 있는 이야기의 종언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2011/02/15, 김대식).

키워드: 종교, 자기비판, 맛, 파블로 피카소, 정신적 지체, 함석헌, 함석헌평화포럼, 이태석 신부,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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