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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칼럼

함석헌의 종교문화비판과 종교평화1

by anarchopists 2019. 11. 11.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9/20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의 종교문화비판과 종교평화1



  현존재의 죄의식은 인간 공동체의 사회적 의식과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거나 종교적 의식과 규범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여기서 죄를 인간의 삶에서 도덕적·윤리적 범주에서 다루는 행위의 일탈과 위반으로 볼 것이냐 아니면 인간의 선천적 의식과 본래적 도덕감에 대한 위법으로 볼 것이냐에 따라 논의의 양상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함석헌에 따르면 죄란 윤리적이라기보다 보다 더 근원적인 인간 실존의 균열 상태에서 발생한다.

“죄는 다른 것 아니요 갈라짐이다. 부모와 자식이 갈라짐, 집과 집이 갈라짐, 계급과 계급, 민족과 민족, 나라와 나라가 갈라짐, 몸과 마음의 갈라짐, 사람과 하나님의 갈라짐이다. 갈라지면 어지럽고, 어지러우면 죽는다. 거기서 건지는 것은 다시 하나됨을 얻게 하는 것이다.”(함석헌, 함석헌전집 영원의 뱃길 19, 한길사, 1985, 17쪽)

  ‘갈라짐’의 존재론적 명암에는 해방과 분리가 엄연히 존재하지만, 그리스도교에서 갈라짐의 상태는 초월적 존재와의 분리이자, 이웃과의 분리, 자연과의 분리이다. 갈라짐의 궁극적인 결과는 결국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가른다는 것은 생명적인 것의 타자 혹은 절대 타자와의 능동적, 자발적 오만에서 비롯되는 인위적인 구획지음이다. 나의 자리와 타자의 자리가 완전히 일치될 수는 없으나 최소한 조화로운 자리가 되어야 교차되는 지점과 타협점이 마련될 수가 있다. 다시 말해서 가르기 이전의 상태로 회복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초월적 존재와 하나가 되고, 이웃 및 자연과의 하나됨이라는 근본적인 회복이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갈라짐은 원래 상태로서의 하나가 되는 일치의 집을 짓기를 갈망한다. 그래서 갈라짐은 하나가 되고자 하
는 마음-짓기와 다르지 않다.
서로의 마음이 차이가 난다는 것을 인정하고 마음과 마음이 만나서 논의를 하는 것이 갈라짐 이전의 모습으로 마음의 온전한 구조를 지음으로써 조화가 인식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갈라짐은 죄로서 죄의 상태가 분열이라는 극단적인 결과를 초래하여 원래의 관계 지음이 해체되고 마는 것을 의미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마음-짓기로 돌아서는 가능성의 단초이다. 죄는 철저하게 아니라고 부인하면서 돌아서는 실존의 유한성이지만 동시에 초월적 존재에서 자연에 이르기까지 마음으로 대화하고 설득하는 화해-세움, 즉 화해-지음이라는 일치의 구축, 일치의 만듦으로 나아가게 한다(George Weigel, 김덕영․송재룡 옮김, “요한 바오로 2세 시대의 로마 가톨릭 교회”, 세속화냐? 탈세속화냐?, 대한기독교서회, 2002, 57-58쪽).


  또한 갈라짐은 새로운-관계-지음이라는 필연적인 요청을 동반한다. 새로운 종교교육(Ausbildung), 새로운 시민교양(Bildung)을 통하여 종교와 종교, 종교와 세계가 평화를 추구하고, 인간과 정치, 인간과 경제, 인간과 사회, 인간과 문화, 인간과 환경 등의 새로운 평화질서를 세우는 것이 갈림이 아닌 건짐으로의 실재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이 곧 인류의 건짐, 구원의 행위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구원은 하나를 지향한다. 모든 종교, 모든 사람을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다원성을 인정하는 보편적 일치를 일컫는다. 다원성을 무시한 일치라고 하는 것은 생각할 수조차 없다. 개별적인 자유, 의지, 행위, 종교, 영역이라는 것을 긍정하면서 인간을 품을 수 있는 보편성이 있어야 비로소 공동체의 와해를 막을 수 있다. 최소한 ‘하나’라는 보편적 인식, 보편적 구원이 담보되지 않으면 공동체는 죽음이라는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갈라짐의 마지막 부정적 상황이 죽음이라면, 그 해결책은 인류가 하나가 되는 길 이외는 다른 방도가 없다. 종교는 맨 먼저 인류에게 갈라짐이 곧 죽음이라는 것을 깨우쳐 주었다. 그렇다면 종교가 앞장서서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고, 그것을 통해서 인류, 국가, 사회, 정치, 자연 등이 하나가 될 수 있는 현실을 모색할 수 있어야 한다.


  짐짓 가르고 나서 나와 너, 그것을 분리하는 버릇을 고치는 것은 어렵다. 습관을 길들인다면 먼저 짓고 세우고 싸매고 잇는 것부터 배워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유사 이래로 인간이라는 존재는 늘 선후가 바뀐 삶을 살아왔던 것 같다. 이제부터라도 갈라짐이라는 원초적인 죄를 짓지 말고, 흩어지고 분리된 것을 다시 하나로 지어 올리는 역사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종교의 어원인 라틴어 religare(다시-묶는다)가 보여주고 있듯이 짓고 연결하는 일은 다시, 계속해서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초월적 존재의 구원은 멈출 줄 모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위 이미지는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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