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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영호 교수 칼럼

함석헌의 이상과 오늘의 현실-사회윤리 1

by anarchopists 2019. 12. 25.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3/31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의 이상과 오늘의 현실
사회윤리(1)

[함석헌의 이상]
“이제 새 임금이 나온다. 전의 임금이 힘을 상징하는 칼을 들었다면 새 임금은 욕심과 꾀를 상징하는 돈을 든다. 자본주의시대가 왔다. 이제 돈이 왕이다. 돈이 하나를 대표하는 시대다. 돈의 시대는 향락주의의 시대요, 지능주의시대다. 물건과 물건을 바꾸던 인간이 돈을 만든 것은 편하게 살아보자고 꾀를 부린 데서다... 그러던 것이 기계의 발달로 거리가 없어지자 돈은 눈부신 활동을 시작하여 인류의 온 사회를 거의 손아귀에 넣었다. 그래서 자본주의시대라 한다. 봉건시대에는 그래도 전통이니 의식이니 하는 것이 있어서 임금의 주위에 들어붙어 가지고 그것이 이 사회의 권위 노릇을 하였다.

그러나 자본주의시대는 노골적인 이욕주의이기 때문에 그런 따위가 다 떨어지고 다만 하나, 돈만이 모든 행동의 표준으로 되었다
. 그것을 그들은 현실적이라 했다... 그리하여 돈은 온 세계를 통일한 듯하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의시대에 들어오면서 주의할 것은 과거에 인간을 구속하던 모든 사회제도와 전통이 다 무너졌다는 것이다... 돈만 있으면 어떤 학문도 기술도 예술도 빌어 쓸 수가 있다. 돈 앞에 종파도 없다. 돈이 없으면 교단은 유지해 갈 수 없고, 돈을 모으기 위해 교단을 창설하고, 생활을 위해 이 종파에서 저 종파로 옮겨도 옛날처럼 무슨 제재(制裁)가 있는 것도 아니요, 재산을 위해서는 어제 대처승이 오늘 비구승이 되기도 하고, 돈을 많이 내면 과거에 어떤 죄를 지었어도 다 사함을 받는다. 예수께서 세상엔 두 임금이 있어서 하나님을 섬기게 되든지 돈의 왕 마몬을 섬기든지 하게 된다고 하면서, 하느님과 대립을 시킨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모순을 드러냈다. 그것의 모병(募兵) 포스터에 내건 표어는 실리(實利), 사리(私利), 쾌락인데 그리하여 한동안 사람들은 다 그곳으로 갈듯 했는데 아니 갔다. 봉건군주의 성내에 갇혀 있던 민중에겐 그것이 해방인 듯 들려 그 성을 텅 비우고 모두 나왔으나, 나와서 생긴 것은 쟁탈전이었다. 서로 실리, 쾌락을 다투는 바람에 말은 자유라 하나 사실은 자유할 수가 없고, 형식으로는 계급을 없앴으나 내용으론 있는 사람, 없는 사람의 대립이 생겼다.

더구나 그것은 봉건시대같이 계급제를 쓰면서도 그 사이에 어떤 조화를 주려는 뜻을 두고 한 것이 아니고 무제한으로 자유라 했기 때문에, 일단 유리한 자리에 선 자는 거리낌 없이 그 지위를 보존하는 방법을 쓰려 하므로 그 싸움은 한없이 혹독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자본주의 의미의 모두가 아니다. 자본주의는 그러자고 나온 것이 아니었다. "너희는 다 같은 짐승이다"고 한 셈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모처럼 준 망원경을 거꾸로 본 데서 나온 소리다. 바로 댔다면 "너희는 다 같이 한님의 아들이다."고 했을 것인데 그것을 거꾸로 댔기 때문에 반대상이 생겨서 잘못을 저질렀다. 문제는 자유인데, 인격은 자유라는 것이 그 제목인데 그것을 외적으로 취했나. 내적으로 취했나 하는 것에 따라 달라졌다. 자유를 외적, 물적인 뜻으로 취한 것이 자본주의 경제요, 제국주의 정치다...그러나 아무래도 자유를 찾는 정신은 없앨 수 없다. 그러므로 지금 그 모순이 폭로됐다고는 하나, 그것을 잘 이용하면 본래의 목적을 달할 수 있다.

“잘못이 있기는 하면서도 수천년래 묵어온 가족적, 계급적, 종교적, 물적 심적 가지가지의 인습, 폐단, 미신, 무지의 누더기와 때를 돈이 아니고는 인류의 몸에서 못 벗겼을 것이다
... 돈은 말하자면 제 스스로 적군의 괴수가 되어 그것을 통일해서, 그것을 한 곳에 모은 셈이다. 싸움은 이제 대단히 간단해졌다. 옛날처럼 분산전은 필요 없고 돈이라는 [적을] 하나만 겨누고 공격을 하면 되게 된 셈이다. 돈 없이 사는 세상을 만들자! 이런 의미에서 이것은 세계의 끝장을 내는 아마겟돈 싸움인지도 모른다. 자본주의는 폐가 있는 동시에 인격의 자유를 점점 더 절실히 가르쳤다. 사실은 본래부터 쌍둥이 태여서 자본주의의 발달을 따라 자유의 정신도 자라 왔다. 다만... 강한 데 이르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나 정신은 이기고야 마는 것이요, 속은 겉을 정복하고야 마는 것이다. 경쟁으로 자유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이 상식이 되어간다. (1959)(함석헌전집 2권 353-356쪽 〈새 윤리〉)

“이날까지 인류를 이끌어 온 것도 종교지만 또 못쓰게 만든 것도 종교다. 종교는 자라나는 인류에 그 순을 꺾고 줄기를 비꼬았고, 제 마음대로 걸어 보려는 그 걸음에, 발목에 고랑을 채우고, 목에 칼을 씌운 일이 많다. 그저 무지도 무섭지만 그릇된 종교 신념으로 비꼬이고 들뜬 마음처럼 무서운 것은 없다. 역사 위에 가장 고집스런 일을 한 것도 종교요, 가장 더러운 짓을 한 것도 종교요, 가장 끔찍한 꼴을 낸 것도 종교다.

종교는 제 몸을 칼로 찢었고, 제 자식을 제 손으로 불에 던져 죽였고, 제 동무 되는 사람의 염통을 따내어 점을 쳤다. 대낮에 남녀가 벌거벗고 춤을 추고 한데 붙어 음란을 하게 한 것도 종교요, 시퍼런 하늘 밑에 짐승, 버러지를 보고 절을 하게 한 것도 종교요, 사람을 단으로 묶어 세워 놓고 불을 사르고 껍데기를 벗겨 덮개를 한 것도 종교였다. 그뿐인가? 평시에는 백성을 속여 피를 빨고, 살을 긁고, 전쟁이 나면 부채질을 하고, 원시인, 바빌론, 이집트는 말할 것 없고 하나님의 사자가 세웠다고 자랑하는 가톨릭의 역사를 보면 그 지은 죄가 어느 야만, 어느 세속적 국가가 지은 것보다도 더 지독, 더 음험한 것 아닌가?

그런데 그 원인이 무엇이냐 하면 마음의 분열 때문이다. 밖에 나타난 그러한 어지러움은 내부가 반영된 것뿐이다. 깨달음이 없는 인간에게 무지함은 있고 어리석음은 있을 것이나, 마음의 고민은 없다. 그러나 종교가 한번 마음에 들어가면 어둠 속에 광선이 들어간 것 같아 맹렬한 대조, 분열이 일어난다. 몸이 상한 것은 오히려 견딜 수 있고 나라가 갈라진 것도 또 견딜 수 있으나, 제 마음이 제 마음을 갈라놓는 것은 견딜 수 없다.

모든 잔혹, 악독은 이상심리에서 나오는데 그 이상심리를 일으키는 것은 종교적 자아분열이다. 오늘날도 종교적으로 열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몰상식한 일을 저지르는가 하는 것을 보면 그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기에 사회도덕, 사회주의, 세계평화, 새 질서 운운하면서 종교에 의한 인격의 분열이라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리석은 일이다. 따라서 정치, 경제, 학문, 예술로 하나되기 전에 먼저 신앙적으로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의 종교를 가질 때 나라를 통일하기는 쉬운 것, 종교가 어떻게 국가 분열의 원인이 되는가를 역사가 잘 증거하고 있지 않나. 그런데 국민을 통일하는 종교가 되려면 그것은 인생을 통일하는, 인격을 통일하는, 자아를 통일하는 종교가 아니면 아니 된다.



“동양이고 서양이고 종교란 종교는 온통 깨졌다. 물질주의의 검붉은 불길은 모든 기성종교의 교회를 휩쓸었다. 그리하여 인류는 레기욘이 들어간 돼지떼같이 미쳐 비탈길을 내리닫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일차대전, 이차대전, 또 냉전 아닌가. 현대의 모든 일은 흔히 분열로, 미친 사람의 행동으로 해석해야만이 바른 투약을 할 수 있다.

인류는 또 한번 "평안히 가라, 네 믿음이 너를 성케 하였나니라." 하는 소리를 기다린다. 한층 더 깊은, 한층 더 높은 영, 육의 통일이 와야 할 것이다. 소위 심령통일이라 하여 입신(入神)이요, 예언이요, 방언이요, 에덴낙원이요, 상식에도 어그러지는 무당식, 성력파(性力派)식의 미친 짓이 아니다. 그것은 미친 심리에서 나오는 것이다. 보다 높은 윤리의 열매를 내는 거룩한 통일이 아니다... 영, 육의 새 통일을 얻으려면 참 과학과 참 윤리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함석헌전집 2권 361-363쪽 〈새 윤리〉) (2011. 3.30, 김영호 뽑음, 내일 계속)

김영호 교수님은
인하대학교 명예교수다. 선생님의 전공은 종교철학(원효사상)으로, 세계관의 큰 틀(패러다임)은 함석헌과 크리슈나무르티에서 영향을 받은 다원주의다.

선생님은 늘 사회변혁을 갈망하였다. 하여 해외 민주화운동의 도구인 민중신문』(캐나다) 창간(1979)에 간여하였으며,『씨알의 소리』편집위원, 함석헌기념사업회 씨알사상연구원장을 지낸 바 있다. 지금은 함석헌평화포럼 공동대표와 함석헌학회 부회장 학술위원장직을 거쳐 함석헌학회 학회장을 맡고 있다.(2011년 8월 현재) /함석헌평화포럼
* 본문 내용 중 사진은 한겨레신문에서 따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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