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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영호 교수 칼럼

“깨어있는 시민이라야 산다” 2

by anarchopists 2019. 12. 21.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5/31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깨어있는 시민이어야 산다 2
노무현이 남긴 메시지

“지도자로서 개인적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이 비전이죠... 비전이 뭐냐.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이냐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비전이 자기의 단순한 희망사항이냐, 아니면 역사의 법칙과 맞닿아 있느냐, 이 점이 중요한 것입니다. 좋은 비전이라면 역사의 법칙 위에 서 있어야 하고, 그것을 전제로 선택 가능한 것 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비전은 역사의 법칙 속에서, 그것을 실현해낼 수 있는 전략과 결합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이 비전과 전략이라는 것이 역사의식이고, 역사를 보는, 역사를 해석하는 관점이고, 그 토대 위에 자기의 희망 사항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럼 보수는 뭐고 진보는 뭐야? 보수는 이런 겁니다. '세상은 강자가 지배하는 거야, 무슨 소리들 하고 있어.' 보수를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습니다. 모든 보수는 우수한 사람, 잘난 사람, 힘센 사람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똑똑하지 못한 사람, 성공하지 못한 사람, 힘없는 사람은 시키는 대로 말 잘 듣고 있어라, 그러면 되는데 왜 자꾸 시끄럽게 구느냐. 신자유주의든 구자유주의든 다 덮어놓고 보수의 핵심은 그겁니다. 성공한 사람이 주도해간다, 맡겨라, 통째로 맡겨라. 그럼 진보는 뭔가? 진보는 '그게 아니올시다.'입니다. 진보는 보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 게 아니고요. 그건 기회를 평등하게 해주고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주면 우리도 다 잘할 수 있습니다. 무슨 소리 하십니까.' 권력도 나누고 지혜도 나누고 평등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강자에게 맡겨라.' 이 말은 보수가 지배력을 유지하겠다는 것이고, 진보는 이렇게 말하는 거지요. '지배하지 말고 합의해서 합시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보면, 보수 세력에는 반드시 적의 개념이 있죠... 그래서 그 사회의 보수 세력이 대부분 적대적인 노선을 많이 취합니다. 강경 노선, 적대 노선, 반면 평화 공존은 진보 쪽에서 많이 주장을 하고요.

“특권 구조의 해체, 그게 내가 물려받은 역사적 과제입니다... 그래서 권력과 권력이 유착해서 만들어져온 특권의 구조를 해체하는 것, 이 구조 속에서 우선 권력기관 내부의 유착 구조를 해체하는 것, 정경유착을 해체하는 것, 그것이 내가 물려받은 과제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언론이 양쪽에 다리를 다 걸치고 있습니다. 언론이 정치권력과 한 다리를 걸치고, 정경유착을 만들어내는 시장 권력에다가 또 한 다리를 걸치고. 그래서 내가 '이 유착 구조도 해체합시다.'라고 했죠... 그래서 기자실을 개혁하고 언론 대응을 원칙적으로 했지요. 그리고 계층 간, 지역 간 불균형 해소도 큰 과제였지요. 또 도덕적으로 우수한 사회, 성숙한 사회, 이것도 우리가 부닥쳐 있는 역사적 과제라고 봅니다. 지도자의 사명은 여러 가지 기능적인 요소도 잘해야겠지만 그 시기 역사의 과제를 정확하게 짚고, 진보의 방향을 올바르게 설정하고, 그것을 위해서 전략을 가지고 노력해야 되는 것이죠.

"결국 이 모든 이야기가 민주주의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리자는 것이죠... 저는 민주주의가 한 단계 더 발전하느냐 아니냐는 이제는 결국 시민들의, 최종적으로 시민들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시민들에게 내가 얘기하는 것은 역사적 관점에서 선택해야 된다. 우리의 미래 정치 지도자가 내걸어야 될 비전은 경제가 아니고 도덕적으로 성숙한 사회, 민주적으로 성숙한 사회다 이겁니다. 결국 시민이 최종 선택을 하기 때문에 지금부터 내가 하려고 하는 것은 '시민사회를 재조직해보자'는 겁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위에 인용한 글(인터뷰)만으로도 정치인으로서는 드물게 노무현의 주장과 생각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 잘 정제(整齊)된 합리적 틀을 갖추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노무현이 역대 대통령들보다 두드러진 것은 철저히 공익에 봉사한 공적인 사람이었다는 점일 것이다. 그는 당선 후 국립묘지에서 멸사봉공(滅私奉公)을 쓰면서 다짐한 바였다. 상대적으로, 아마 거의 절대적으로, 그는 깨끗하고 청렴한 정치인으로 평가되었다. 그런 그를 그가 경찰, 국세청, 감사원, 정보원과 더불어 권력에서 독립시킨 검찰이 배은망덕하게 새 대통령과 여당의 질투와 복수심에 편승하여 죽음으로 몰고 갔다. 똑똑하다 싶은 놈은 다 제거해버리는 우리 역사의 순환 고리를 재현한 것이다.

  노무현은 이상주의자였지만 막상 집권할 때는 현실주의자가 되기도 했다. 미국과의 관계가 그 예다. 이락파병과 자유무역협정에서 명분과 실리를 추구했다. 그 결과 북한과의 관계에서 미국을 견인하면서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조적으로 현 정권은 대북 국제관계에서 사면초가에 처해있다.) 5년 임기동안 그가 세운 정치적 이상을 추진하면서도 여소야대나 관료주의, 언론의 비협조 때문에 여러 가지 면에서 실패한 것이 많다고 자인한 노무현은 스스로의 한계를 노출했지만 그것은 그의 한계가 아니고. 그가 고치려고 한 몰상식과 반칙에 물든 한국사회 전체의 한계였다.

  또한 무엇보다 제도적인 문제가 있다. 여소야대를 초래하는 대통령제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선출절차만 다를 뿐, 과도한 권력집중 면에서 군주제도와 큰 차이가 없다. 결국 인물중심이 되기 쉬운 선거의 결과, 누구도 그 지도자가 제대로 기능할지 알 수 없다. 막상 해봐야 그 실체를 파악하게 된다. 지금처럼 잘못하면 5년을 또 기다려야 한다. 개인보다는 집단 즉 정당이 책임지는 체제가 더 바람직하다. 노무현처럼 혼자 똑똑해도 소용이 없다. 개인보다는 시스템이 중요하다. 노무현도 시스템을 충분히 가동, 활용했는지 의문이다. 혹시 몇 사람의 젊은 참모와 자기 머리에만 의존했는지도 모른다. 인문-사회과학에서 이제는 개인의 사고와 깨침보다는 집단적 사고와 깨침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노무현은 스스로를 ‘합리적 진보주의자’로 분류했다.
나아가서 더 구체적으로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등 북구에서 성공한) ‘사민주의’(사회민주주의)까지 제시했다. 앞으로 치를 총선과 대선에서 보편 복지를 내세울 수밖에 없는 진보-민주 통합세력이 지향해야할 모델이다. 그것은 노무현의 정신을 이어받는 결과가 될 것이다. 연합이든 통합이든 진보-민주 세력은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이 국민의, 그리고 노무현의, 명령이다. 진보적 정당과 정책의 스펙트럼을 넓힌다면 대동소이(大同小異)한 정당들이 작은 차이(小異)보다 대동(大同)을 우선해야 한다. 소이를 앞세운다면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다.
 
현 정권은 기득권의 보수 즉 수구 밖에는 아무런 가치도 말할 수 없는 빈탕 정권임이 드러났다. 그들이 누리고 있는 특권, 민주와 자유는 다 민중과 민주세력이 힘들게 쟁취한
가치들이다. 보수는커녕 그것을 남용하여 후퇴시키고 있다. 기득권 말고 무엇을 보수하자는 것인가? 자유라고? 사회분열과 다수의 불행은 놔두고, 자기들만 누리는 자유가 진정한 자유인가? 노무현도 강조했지만, 자유 평등의 양 날개는 분리될 수 없다. 스웨덴의 현 집권 보수당은 장기 집권한 사민당이 깔아놓은 복지정책을 조금도 바꾸지 않고 지켜간다. 그것이 참 보수다.

사민당 장기집권의 심리적 피로에서 보수당의 선택은 거기에다 약간의 신선한 자극을 주고자함일 뿐이었다. 과도한 복지로 인하여 북구 나라들의 정부예산이 거덜 났다는 수구정당의 주장은 완전 허구다. 허위 정보를 그대로 전달한 수구언론은 얼마나 엉터리인가. 내년과 내후년에 투표할 신세대 청년들은 사기 정보에 근거한 여론조작에 더 이상 속지 않을 것이다.

“불행한 한국, 몰락하도록 놔둘 건가”(재미 강인규 교수, 오마이뉴스)의 시각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는 형국에서 총선과 대선에 마지막 희망을 걸어야 한다면, 민주-진보 정치인들에게 정당통합은 역사적 소명이다. 그때 노무현이 다시 살아날 것이다. (2011. 5.31, 김영호 내일 계속)
김영호 교수님은
인하대학교 명예교수다. 선생님의 전공은 종교철학(원효사상)으로, 세계관의 큰 틀(패러다임)은 함석헌과 크리슈나무르티에서 영향을 받은 다원주의다.

선생님은 늘 사회변혁을 갈망하였다. 하여 해외 민주화운동의 도구인 민중신문』(캐나다) 창간(1979)에 간여하였으며,『씨알의 소리』편집위원, 함석헌기념사업회 씨알사상연구원장을 지낸 바 있다. 지금은 함석헌평화포럼 공동대표와 함석헌학회 부회장 학술위원장직을 거쳐 함석헌학회 학회장을 맡고 있다.(2011년 8월 현재)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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