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함석헌평화연구소/김영호 교수 칼럼

함석헌의 이상과 오늘의 현실- 교육2

by anarchopists 2019. 12. 25.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3/30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의 이상과 오늘의 현실
교육(2)

[함석헌의 이상]
그렇기 때문에 이 나라는 국민정신, 국민도덕이 없는 나라다. 목표 없는 민중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은 형식뿐이지, 아무 이념이 없다. 그럼 국민정신이 부족한 것은 또 원인이 무엇인가?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생각이란 다른 것 아니요, 물질을 정신화함이다. 없는 데서 있는 것은 창조해 냄이다... 인도를 인도로 만든 것도 생각이요, 히브리를 히브리로 만든 것도 생각이다. 철학하지 않는 인종은 살 수 없다. 그런데 이 나라는 고유철학이 없는 나라다. 그러면 이 비참은 당연한 것 아닌가? 물질적 가난은 정신적 가난의 상징적인 표시일 뿐이다. 정신이 끊어지는 때에 이집트 문명은 땅 속으로 들어갔고, 정신이 일어나는 때에 아테네는 세계를 얻었다. 우리의 가장 근본적인 결점은 생각이 깊지 못한 것이다... 살려거든 생각해야 한다. 제 철학을 가지고, 제 종교를 가지고, 제 역사를 가지고, 제 세계를 가져야 한다.

“앞으로 세계는 하나의 세계일 것을 생각하고 그 세계의 주인은 민일 것을 생각하고, 이 교육에서 시급히 고쳐야 할 것을 찾아본다면 무엇인가? 학교 이름부터 국민학교란 것을 떼어 버리고 유산, 무산을 가릴 것 없이 적령이 된 아이는 다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되어야 한다. 국민학교란 이름은 지난날 일본이 전체주의의 독재정치를 민중 위에 씌우려 할 때에 붙인 것이다. 거기는 국가지상주의, 민족숭배사상이 들어 있다. 이제 자라나는 아이는 세계의 시민일 터인데 그런 것을 붙여 인간성을 고의로 치우치게 하면 그것은 나아가는 역사 진행에 공연한 마찰만 일으키는 일이다.

건전한 사회가 되려면 되도록 노동하는 자가 많고, 놀고먹는 자가 적어야 할 일이다. 대학이 늘수록 놀고먹는 자가 늘어갈 뿐이니 많을수록 국민적으로는 손해다 그러니 대학 수는 훨씬 줄여 학문에 소질이 있는 자로 필요한 수에만 한하게 하고, 그 경비를 초등교에 돌려야 할 것이다. 대학 하나를 헐면 초등학교 몇십 개가 나올 수 있고, 대학생 하나가 농촌으로 돌아가면 무산아동 몇이 학교를 갈 수 있다... 대학을 자꾸 지원하는 것은 정부가 인물 등용에 반드시 실력으로써 하지 않고 소위 간판으로 하기 때문인데, 정부가 그 방침을 쓰는 것은 표면은 그럴듯한 구실을 내걸고 사실은 특권계급이 자기네의 이익과 지위를 옹호하는 제도를 지켜가는 방법으로 하는 것이다. 학교를 졸업해야 우대한다 해서 실지로 필요하지도 않은, 하고 나오면 실업자가 되는 교육을 강요함으로써 농민을 착취하고 있다. 교육이 철저하려면 될 수 있는 대로 학교 수가 적고, 한 학교에 학생 수가 적어야 한다. 대학교주의는 교육적 제국주의이다.

“먼저 교육의 목표를 하나되는 것으로 세워야 한다. 하나란 가장 구체적으로 말하면 나라의 통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고 나아가서는 세계가 하나되는 세계국가에까지 가야 하는 것이요, 속으로 들어오면 내가 하나가 되는, 나와 하나님이 하나되는 인격통일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그래서 '하나'의 교육이다. 그중에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나라의 통일이다. 이것이 가장 현실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제 이 셋의 관계를 그림으로 표하면 한 개 거목과 같다. 나라의 통일이 그 줄기가 되고, 그것의 뿌리가 자아의 인격통일이 되고, 그 가지와 잎과 꽃과 열매가 세계의 통일이다.

“이제 갈라진 나라를 순전히 남북이라는 지리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정신적인 분열로 생각하여 그 통일은 누가 할 것이 아니요, 내가 할 것이다, 내 인격으로 할 것이다라고 생각할 때, 그 교육이 어떻게 되겠나?... 마지막으로 자아의 통일, 나라가 하나가 되고 세계가 하나가 되는 문제를 실천을 하려 들면 자연히 필연적으로 내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문제에 다다른다. 38선은 세계의 표현인 동시에 또 나의 표현이다. 우리 인격에 분열이 없다면 남북의 분열이 있을 리 없다... 밖은 안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나라를 통일하고 세계를 통일하려면 먼저 내가 한 사람, 곧 참 사람이 되어야 한다. 통일 못 된 것은 참 인격 아니요, 참 인격 아니고는 남을 한 사람도 움직일 수 없다. 한 사람도 못 움직이는데 나라와 세계를 어떻게 움직일까?” (1959) (함석헌전집 2권 367-94쪽 「새 교육」)

그러므로 오늘날 민족의 장래를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교육에 있어 근본적 대개혁을 단행해야 할 것이고, 그런 새 교육을 하려면 이때까지 죽은 줄로 멸시했던 자연에 대해 눈을 고쳐 뜨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죽은 것 같은 것은 너무 엄청나게, 크게 살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어리석었던지, 얼마나 병이 들었던지... 대학에서 철학 강좌를 없애버린 데가 있다 하지 않습니까? 이만하면 앞날의 운명은 가히 점칠 수 있습니다. 정치만능의 주문을 어서 벗겨버려야 합니다. 사람은 결코 행복만을 추구하는 존재도 아니고, 또 물량주의의 진창 속에 떠돌아가는 것이 결코 행복이 아닌 것도 알아야 합니다. 스스로 하는 것이 참 삶임을 모르고 그저 지배하는 데만 쾌감을 가지고, 피지배 속에 의무를 잊어버리는 안일만을 탐하는 사람은 이대로 있으려 하지만, 씨알은 단연 자기와 남을 다 살리기 위해 거기 반항하여야 합니다. 사람은 의미에 삽니다. 살아도 의미, 죽어도 의미입니다. 의미가 무엇입니까. 살아 있
는 우주 전체입니다." (1979) (함석헌전집 8권 438쪽)

[오늘의 현실]
반세기 전(1959, 1979)에 펼친 함석헌의 교육론은 오늘의 시점에서도 생생하게 느껴질 만큼 남다른 깊은 통찰이 들어있다. 그것은 그가 지적한 원칙들이 실천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개선, 발전되기커녕 오히려 퇴보한 면이 더 많다. 함석헌은 자본주의의 폐단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의 기치아래 시장경제의 탈을 쓰고 더욱 사나워졌다. 유독 한국에서 더 표독해진 셈이다. 교육은 그 도구로 전락했다. 대학교육은 필요한 교양과 창조적 사고를 진작시키는 인간교육이 아닌 직업교육, 기술교육으로 전락했다. 그가 걱정한 대로 철학과목이나 철학과 같은 분야는 더욱 더 대학에서 사라졌다. 대학을 재벌과 부자들이 인수하여 돈벌이와 명리의 도구가 되고 있다. 등록금은 국민소득에 비해서 어느 나라보다 비싸졌다. 중등교육은 대학입시 준비과정이 되고 대학은 취직준비 기관이 되었다.

주목할 것은 함석헌의 통일교육론이다. 왜 통일이 중요한지 매우 치밀한 분석을 한다. 인격의 통일. 세계의 통일과도 관계짓는다. 오늘의 교육과정에서 통일은 멀찌감치 밀려나 있다. 더 이상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젊은 세대에서는 갈수록 더 잊혀져 가고 있다. 통일은 온 겨레, 모든 학문의 주제, 모두가 풀어야할 화두로 삼아져야 한다. 그 이유를 함석헌이 조리 있게 밝히고 있다. 통일을 못 이룬다면 온전한 나라도, 온전한 국민도, 온전한 인격도 될 수 없다.

한 가지 함석헌이 주장한 것이 실현된 경우가 있는데, 그의 사후의 일이지만, 그것은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개명한 일이다. 이것은 함석헌을 따르던 한 노장이 자기가 일제시대 소(초등)학교 교사 노릇한 것을 참회하면서 살다가 개명 주장을 듣고 운동을 전개하여 이룬 성과였다. (2011. 3,28, 김영호, 내일 계속)

김영호 교수님은
인하대학교 명예교수다. 선생님의 전공은 종교철학(원효사상)으로, 세계관의 큰 틀(패러다임)은 함석헌과 크리슈나무르티에서 영향을 받은 다원주의다.

선생님은 늘 사회변혁을 갈망하였다. 하여 해외 민주화운동의 도구인 민중신문』(캐나다) 창간(1979)에 간여하였으며,『씨알의 소리』편집위원, 함석헌기념사업회 씨알사상연구원장을 지낸 바 있다. 지금은 함석헌평화포럼 공동대표와 함석헌학회 부회장 학술위원장직을 거쳐 함석헌학회 학회장을 맡고 있다.(2011년 8월 현재) /함석헌평화포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