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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의 영성\철학과 함석헌식의 해석학적 설교(강론)

함석헌의 언어이성비판과 감성사회

by anarchopists 2020. 1. 12.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8/12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의 언어이성비판과 감성사회

이른바 포스트모던이라는 어떤 현상-이 현상은 규정하기가 애매모호함이 있지만-여하튼 우리 사회는 그런 시대를 접어들면서 미 즉 아름다움이라는 감성적, 감각적 삶이 급격하게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회, 계몽적인 사회에 대한 경험조차도 없는 한국사회는 서구의 사조나 문화를 수용하기에 바빴고 그에 따른 반성이나 성찰이 없이 사회 이곳저곳에서는 ‘미학’이라는 용어가 우리 사회의 허영심을 자극하였습니다. 심지어 피부관리를 하는 곳에서도 간판은 ‘에스테틱’(aesthetic)이라는 수준 높은(?) 상호명을 붙이고 있으니 말입니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미학이나 감성주의를 운운하면서 정서나 감각, 그리고 언어조차도 올바른 감성언어를 사용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비록 미학이라는 용어가 독일 철학자 바움가르텐(A. G. Baumgarten, 1714-62)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다고는 하나, 사실상 ‘미학’(『판단력비판』)을 학문으로 정착시킨 사람은 그와 동시대 철학자인 임마누엘 칸트(I. Kant, 1724-1804)였습니다. 그런데 칸트에 따르면 이론이성(오성/지성, Verstand)과 실천이성(이성, Vernunft) 사이의 다리 역할내지는 통합의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감성(Sinnlichkeit)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이성만도 아닌, 도덕이나 윤리만도 아닌 그렇다고 감성만도 아닌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을 자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자 도덕적 존재인데,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인간에게 여백을 마련해주는 감성적 존재라는 것이 다 같이 조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칸트는 감성 즉 미가 추구하는 종착점은 도덕이라는 것을 넌지시 암시해줍니다. “미는 도덕(인륜, Sittlichkeit)의 상징이다.” 한마디로 감성조차도 인간의 도덕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한갓 흐물거리고 중심을 잡지 못해서 비틀거리는 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칸트에게 있어서 이성적이라고 할 때 오성과 감성을 포함하기 때문에, 감성이라는 것은 이성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고 이성적 감성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논리들을 통해서 우리 사회를 조명하고 있는 사람이 함석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언어는 이성과 도덕, 그리고 감성이 조화를 이루는 말-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나치게 감성을 자극해서 이성적 반성이 결여되거나 도덕적 행위의 결과도 예측하지 못하고 움직이는 몰지각한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지금 통용되는 언어들이 그와 같은 조화를 이루는 언어, 하다못해 정제된 감성적 언어들을 사용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익명성을 통해서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들이 이성적이고 도덕적 언어인가라는 물음도 없이 내던져진 언어는 천박하기 그지없는 감정적 언어(감성적 언어와는 다른)입니다. 자극적이고 감정만 촉발시키는 언어에는 논리적, 이성적, 합리적으로 생각하도록 만드는 언어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회의를 품게 만듭니다.

함석헌은 훈민정음이 만들어진 사건에 대해 “민족의 자각 운동의 싹틈”이라고 했으며, 그로 인해서 “민중이 제눈을 얻었다”, “민중이 자기 해방을 얻었다”라고 평가했습니다. 나라가 자기 언어를 갖는다는 것이 민족자각과 민중계몽의 힘이라는 말입니다. 더 나아가서 그는 언어를 통해서 민중이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자아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함석헌에 논리대로라면 언어란 모름지기 자기 해방, 자기 표현, 자기 계몽, 자기 각성 등을 위한 정신적 바탈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언어를 통해 여전히 민중을 억누르고 호도하려는 권력을 목도하게 됩니다. 민중이 자기를 눈뜨게 하고 자아를 표현하도록 만드는 언어를 권력층에 빼앗기고 이제는 제3의 언어 혹은 주변어들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민중과 민중 사이의 언어들이 단절되고, 세대와 세대 사이가 분절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정치 언어, 미디어 언어, 경제적 자본의 언어 등은 과거 민초의 언어를 자신들의 언어인 양 차용하면서 민초들을 기만하고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비판적인 안목을 갖지 못한 민초들과 약자들은 그 언어들이 마치 현실 언어이고 소통 가능한 쌍방의 언어, 진실성과 진실감이 담겨진 언어로 착각하기까지 하면서 그 기득권의 언어에 현혹되어 소통하려 하지만 그만 좌절하고 마는 것입니다.

함석헌은 “모든 사상, 정신, 가치는 계시”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마치 계시와도 같았던 민초의 것들을 담아내는 언어마저 권력층의 감성정치와 감각적 매체에 의해 그 계시적 힘들은 소멸되고 와해되고 있는 것입니다. 감성 세대니 감성정치니 떠들어 대면서 민초들을 설득한다고 하지만, 민초들은 실상 그 언어 안에 담겨 있는 비논리적, 비상식적, 비이성적 모순들이 내재해 있다는 사실들을 간파해야 합니다. 그들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이론이성과 실천이성을 통해 민초들 스스로가 해방, 자각, 표현을 당당하게 이루어 낼 수 있도록 자신들의 감성적 판단능력들이 배양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른바 문화적으로 예속되지 않고 비굴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득권층이나 정치경제적 권력의 언어에 경도되는 것조차도 이미 문화적으로 속박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과거 조선의 역사 속에서 민초들이 억눌리고 지배당했던 것도 언어에 대한 독점과 언어를 통한 가상정치(virtual politics)였습니다. 그것을 타파하고자 민초들을 위한 새로운 언어를 만들었던 세종은 민초들의 언어가 있어야만 민초들을 통한 정치가 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필자는 민초들의 언어 능력, 이성적 판단 능력이 보다 더 성숙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아름다운 세상을 꿈꿉니다. 그것을 그려보는 저마다의 세계는 다르더라도 아름답다고 하는 그 세계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과 지향은 다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아름답다는 말은 ‘앎답다’는 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앎은 인식(Erkenntnis)이며 양심(Gewissen)입니다. 칸트의 철학을 확대 해석하자면, 앎이란 인간의 인식능력의 지성(오성)과 도덕적, 윤리적 행위의 욕구 능력인 실천이성과 깊은 연관성을 지닙니다. 따라서 우리 사회가 지나친 감정사회 혹은 감각적(표피적) 사회로 가는 것을 지양하고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사회로 가고자 한다면, 인간의 이성적 성찰과 도덕적 행위가 함께 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문자보다는 그림이나 이미지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돼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림이나 이미지조차도 문자나 다름이 없으니 정치경제적 권력을 가진 현정권의 지배층들이 쏟아 놓는 메시지에 대한 우리의 감성적 판단과 이성적 판단은 같이 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칸트와 거의 같은 시기를 살았던 독일의 문학가 프리드리히 쉴러(F. Schiller, 1759-1805)가 인간성의 회복이 가능하려면 감성능력이 오성능력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곱씹을 필요가 있습니다. 칸트의 3대 대작을 꼽으라고 한다면 『순수이성비판』(1781), 『실천이성비판』(1788), 『판단력비판』(1790)입니다. 이 중에서 인간의 미적 판단력(더불어 목적론적 판단력)을 다룬 작품이 맨 마지막에 나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2010.8.12 새벽, 김대식)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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