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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어록 365일

함석헌의 야인정신(들사람 얼)은 무엇인가

by anarchopists 2020. 1. 16.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6/21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 학회 제1회 함석헌읽기]


들사람 얼(野人精神)에 대하여

[함석헌 읽기]

장자(莊子)가 초(楚)나라엘 갔다가 어느 냇가에서 낚시질을 했더니, 그 나라의 임금이 듣고 신하를 보내어 예물을 잔뜩 가지고 와서 하는 말이
"우리 나라 임금이 선생님의 어지신 소문을 듣고, 꼭 오시어 우리 나라를 위해 일을 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했다. 장자 그 이야기를 듣고 하는 말이

"이애 여기 제사 돼지가 있다. 그놈 살았을 때 진창 속에 뒹굴고 있지만, 제삿날이 오면 비단으로 입히고 정한 자리를 깔고 도마 위에 눕히고 칼을 들어 잡는다. 그때 돼지가 되어 생각한다면 그렇게 죽는 것이 좋겠느냐? 진창 속에서나마 살고 싶겠느냐? 또, 너희 나라 사당 안에 점치는 거북 껍질 있지? 그놈은 살았을 때 바닷가 감탕 속에 꼬리를 끌고 놀던 것인데, 한 번 잡힌즉 죽어 그 껍질을 미래(未來)를 점치는 신령(神靈)이라 하여 비단보로 싸서 장 안에 간직해 두게 되니, 거북이 되어 생각한다면 죽어서 그 영광을 받고 싶겠느냐? 감탕 속에 꼬리를 끌면서라도 살고 싶겠느냐?"
했다.

함석헌
저작집 30권 중에서 제1권의 제목이 <들사람 얼>(野人精神)이다. '들사람'은 무엇인가?  들에 있는 사람인가? 들에 들어가는 사람인가? 아니다. 빈들에서 하늘을 향해 제소리로 외치는 사람이다. 문명의 상대말이다. 곧 문명이 나오기 전의 자연상태가 들이다. 그렇다면  문명의 옷을 입기전의 사람 자체를 들사람이라 할 것이다.

사람이 문명을 알면 체면이나 형식을 따진다.  껍질이 생기는 것이다. 껍질은 인간의 탈이다. 곧 정치적ㆍ사회적 직위나 지위 계급이다. 껍질이 두꺼우면 두꺼울수록 체면이나 형식도 2중 3중이 된다. 권력이나 지위가 있으면 껍질은 더욱더 두꺼워진다. 아마 속살(제얼)이 나오려면 상당한 껍질을 벗겨내야 할 것이다. 의원, 장관, 변호사, 판사, 사장, 공장장, 의사, 과장, 차장, 대령, 소령, 소장, 중장 등 껍질은 수없이 많다. 이런 옷을 입기전의 사람을 들사람이라 할 것이다. 

들사람이 이러한데 야인(野人)하면, 현재 이 나라에서는  권력을 잃은 사람,  밖으로 돌고 정치적 변방에서 떠드는  사람을  지칭하지만 그렇지 않다. 본래 있는 그대로의 사람을 야인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야인(들사람)이어야 하는 것이지, 도시인(문명인)이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단계 전의 사람의 본성, 성(性) 즉, 사람의 본래 성품을 지닌 본래의 사람을 들사람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들사람은 사실 ‘맨사람’이다. 민중이라고 하여도 된다. 씨알이기도 하다. 사람씨를 가지고 나서 살아가면서 사람열매를 맺는 사람이 들사람, ‘맨사람’이다. 가식 없이 순정한 정신을 지닌 사람 들사람, ‘맨사람’이 본래 사람이다. ‘맨사람’은 그래서 땅에 우뚝 바로 서서 하늘소리를 듣고 제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래서 들사람의 행동은 하늘의 섭리에 합치되고 참에 합치된다.

얼은 무엇인가?  얼은 정신이기도 하지만 정신안의 기둥을 얼이라 할 것이다. 얼은 돌려져야 한다. 그래서 얼이 돌려져야  얼이 기화하여 정신으로 나온다. 얼은 사람이 사람다운 본질이다. 얼빠진 놈은 짐승이지 사람 아니다. 얼이 모여 있는 곳이 얼굴이다.  그 사람 얼굴보면 그래서 얼이 보이는 것이다. 

들사람은 얼이 있다.  얼이 차있다. 본래 가지고 있다. 그래서 들사람은 빈들에서 외친다.  하늘의 소리를 낸다.  어떤 소리인가?  한마디로 호랑이 소리다. 여우나 승냥이소리가 아닌 호랑이 소리다. 어흥이다. 소리 내면 다들 도망간다. 왜 도망갈까?  도저히 호랑이소리를 당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호랑이소리가 나면 그곳은 사실 정리가 된다.  제일 문제가 호랑이소리가 나지 않을 때 여우가 호랑이 흉내 내는 꼴이다.

본래, 그래서 들사람은 소리를 친다. 어떤 소리, 천둥소리다. 소리치지 않는 놈은 들사람아니다. 얼이 없는 놈이다. 소리는 밖으로  치는 것이 아니라 속으로 치는 것이다. 속으로 치는 소리가  계속되면  이 소리는  겉으로 결국 나오게 되어 있다.

그런데 소리를 내려면 자신의 몸을 찢어야 한다. 제 몸을 찢으려면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런 용기는 어디서 오는가? 자기가 맨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내면 거침없이 몸을 찢어낼 것이다. 자기에 하늘이 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늘 소리를 낼 것이다. 말로 몸을 찢는 것이 아니라 혼의 힘으로 육이 변화되면 함께 문이 열릴 것이다. 그것의 이세상의 첫째 문이요 하늘 문이다. 그것이 개벽이다. 개벽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찢고 나오는 것이다.

요즘 현실에 보면  들사람 얼이 어디에 있는가? 시대에 따라 야인정신이 나타났다. 지금의 시대도 이런 야인정신이 요구된다. 특히 지식인의 책무는 이런 야인정신을 몸으로 해내는 것이 아닌가? 그것을 밥값한다고 한다.  언론인, 법조인, 교수들이 야인정신으로 외쳐야 한다. 이들이 언론인, 교수 ,법조인으로 있을 때는 나름대로 조금은 떠든 자들이 있다. 그러나 이들 중 누군가 장관이나 청와대의 높은 자리로 가면 전혀 침묵이다. 야인정신이 사라져버린다.  그런 사람은 본래 얼이 없는 놈인지 모른다.

세상을 향하여, 민중을 향하여 소리를 질러야지 권력이나 무슨 출세자리를 위하여 옹알옹알....옹알이 하지 말아라.(박종강, 2010, 6.12일 《함석헌학회》 제1회 <함석헌읽기>에서 가져옴)

박종강 변호사님은
사법고시 33회 출신이다. 법률사무소 “민중”에 소속되어 사회적 약자를 돕는 변론활동을 하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 한세병인권변호단, 서울지방변호사회 변호사기자, 한국소비자보호원 소송지원단으로 일하고 있다. 그리고 제도권의 로스쿨에 반대하여 빙송통신 로스쿨(민중로스쿨)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외 함석헌학회 감사직을 맡고 있으며 새물결포럼, 함석헌평화포럼에도 관여하고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 알림: 다음 제2회 함석헌 읽기는 7월 10일(토) 오후 3시입니다.
장소는 함석헌 학회 사무실입니다.
읽을거리는 함석헌저작집 제2권입니다.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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