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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어록 365일

[김영호의 함석헌 읽기] 혁명은 이론이 아니고 실천이다.

by anarchopists 2020. 1. 14.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7/13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읽기
함석헌저작집 2권 인간혁명


자료: 함석헌저작집 제2권 (인간혁명) 15-80 (「인간혁명」
열쇳말 - 민족개조, 민중, 종교, 전체, 혁명, 생명, 인(仁),

이 글은 제2권의 표제로 삼은 첫 글로서 전체 18편 가운데 가장 분량이 있는 것으로 그만큼 알찬 내용을 담고 있다. 1961년 출판된 책에 포함된 글로 함석헌의 사상이 한창 원숙해지는 시기의 산물이다. 따라서 그의 사상의 알짬을 엿볼 수 있다. 저작집은 직접 저술(문어체 “...한다))과 강연기록(구어체 “...합니다”), 두 부분으로 이루어지는데 이 글은 전자에 속한다. 주제를 우회하기 쉬운 후자보다는 더 선명한 초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여전히 곁가지로 나가는 대목도 없지 않다.

어떻든 대개 그(함석헌)의 글과 강설은 다양한 사고의 흐름이 합류하는 통합적, 포괄적 성격을 갖는다
. 마치 바다와 같다. 바다로 가는 여러 강물처럼 그의 사상에는 몇 가지 뚜렷한 주제가 있고 그 주제들이 변주곡처럼 반복된다. 어느 말씀도 바닷물처럼 한 맛(一味)이라고 할까. 바닷물의 경우처럼 구태여 여러 군데서 맛을 볼 필요가 없을 수도 있지만, 그때그때 일깨움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비슷한 내용의 말씀이라도 새로 들으면 경각심을 일으킬 수 있다. 어떤 글이나, 같은 글이라도, 다시 읽으면 새롭게 느껴진다. 함석헌의 글은 머리로만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영감을 얻어 가슴에서 나온 소리다. 그만큼 감응을 일으키기 쉽다. 이 글은 읽는 이에게 어떤 생각거리를 주고 있는가. 몇 가지 주제로 가를 수 있다. 그 중에도 세 가지를 주요한 것으로 본다.

1.혁명
제목이 가리키듯이 우선 인간(개인과 사회)의 혁명을 말한다. ‘혁명’은 함석헌의 담론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중의 하나이다. 변화, 개혁, 혁명, 진화, 탈바꿈은 함석헌 철학과 종교관의 기조를 이룬다. 그 연장선에서 그는 ‘새’것(나라, 교육, 윤리, 종교, 사람, )이 나와야한다고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논증하는 글을 썼다. (샤르뎅, 엘리아드, 김지하도 신인류의 출현을 대망하고 예견했다.) “새 문명, 새 세계관, 새 인생관, 새 국가를 세우지 않고 우리 살길만을 찾을 재주가 없게 됐습니다.”(전집 5:17)

이 글을 자세히 보면 인간혁명에 대한 철학적 근거와 종교적(궁극적) 차원의 실천방법이 제시되어 있다. 함석헌이 대안 없는 공상가나 비판자라고는 할 수 없는 이유다. 예를 들면, 하나님도 고정된 관념이나 실체가 아니다. 따라서 제도화, 교조화한 종교도 변화해야 한다. 나아가서 함석헌의 여느 글처럼 이 한 가지 글에도 그의 다른 연관된 주제들이 유기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그의 사고의 복합성과 종합성을 이 글도 역시 들어내고 있다. 상아탑 학자의 체계적인 이론으로 모양이 갖추어있지 않다고하더라도 나름대로 분명한 체계적인 사고를 담고 있는 원전이라 볼 수 있다..

인간혁명이 왜 필요하고 어떻게 가능한가, 그것이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있는가. 그의 분석은 추상적인 사변의 산물이 아니고 그의 실존적인 사회적 현실을 자료로 한 통찰에서 나온 구체적인 방법론이다. 그는 단순히 세속적 명리와 권세를 지향하는 지식인이 아니고 “백가지 이론보다 나를 새 사람으로 만드는 실제적인 방법”(80)을 모색한 지행합일의 선비였다.

함석헌의 말씀은 늘 당장의 현실을 놓고 분석하여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나 대처방법을 제시하는 내용이다. 철학적인 개념 또는 이념 논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다. 개인과 사회의 개혁, 혁명, 변혁, 진화를 촉진하는 실천방법론이 중요하지 필요이상의 이론 논쟁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 글에서 구체적인 단초와 소재는 정치혁명, 특히 4.19와 5.16으로, 그 두 가지 (실패한) 혁명의 진정한 의미, 목표, 방향이 제시된다. 20세기 후반부의 사회정치적 상황을 이야기하는 글이 아직도 우리에게 감응을 일으키는 것은 역사에 대한 관심에서만이 아니라 그 상황이 아직도 근원적으로 지속되고 있으며 앎과 행함 사이의 간극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식인에게 사회적 실천의 핵심은, 함석헌의 생애에서 보여주었듯이 ‘소리’에 들어있다. 그는 양심대로 종교가 대표하는 궁극적 차원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소리를 냈던 것이다. 이 글도 아무도 소리내지 못하던 엄혹한 시절에 용기 있게 내지른 소리였다. (2010. 7.10, 김영호)

김영호 선생님은
인문학의 몇 분야를 방황하면서 가로질러 수학, 연구(스톡홀름대, 하버드대 펠로우), 강사(연세대 숭실대), 교수(인하대, 현재 명예교수)로 일했다. 전공은 종교철학(원효사상)으로, 그의 세계관의 큰 틀(패러다임)은 다원주의다. 다원주의를 통해 민족분단. 사회 및 지역 갈등, 종교간 갈등 등 한국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극복하기위한 방법론을 모색하고 있다. 그의 사상적 준거는 함석헌과 크리슈나무르티이다. 그 동안, 해외 민주화운동의 도구인 민중신문』(캐나다) 창간(1079)에 관여,『씨알의 소리』편집위원, 함석헌기념사업회 씨알사상연구원장을 맡기도 했다. 지금은 함석헌평화포럼 공동대표와 함석헌학회 학회장직을 맡고 있다.(2015년 12월 현재)
/함석헌평화포럼


위의 글은 지난 7월10일 함석헌학회에서 있었던 제2회 <함석헌읽기>에서 있었던 발표내용입니다.
오늘부터 김영호(함석헌평화포럼 공동대표/함석헌학회 부학회장) 선생님의 발표글을 4부로 나누어
싣습니다. 많은 구독 바랍니다.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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