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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어록 365일

[김영호의 함석헌읽기] 세계로 나가기 위한 선결조건은 민족통일이다.

by anarchopists 2020. 1. 14.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7/14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2. 민족, 전체(사회)
사회변혁과 새 인류의 출현을 위한 작업의 구체적인 현장은 역시 민족이다. 역사발전의 단계에서 이제는 세계주의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함석헌의 이상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우리가 아직도 들어 있는 역사단계를 대표하는 민족을 어찌할 수 없다. 세계주의로 가는 과정에서도 민족이 아직 지구촌의 구성단위로 남아있을 것이다. 민족이 민족국가 시대에서 자기 책임을 다하고 나서 세계화 시대로 접어들 수 있다고 보았다. 그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 군사독재를 넘어서서 분단된 나라의 통일이 필요하다. 함석헌은 ‘전체’를 강조하는 사상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전체는 인류전체, 생명계전체(온 생명), 우주에까지 무한히 확대해 갈 수 있다. 여기서는 민족이 ‘전체’를 대표한다. 그것이 가장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전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족의 할 일이 무엇인가. 민족성/민족개조 같은 것이 필요하다. 그러면 민족개조의 방법은 무엇인가. 나를 개조하는 것이다. 나의 개조를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가. 참 나(眞我)의 발견이다. ‘새 나가’ 탄생한다. 이는 불교수행의 목표인 깨달음에 해당한다. 불교처럼 무아(無我)의 원리도 제시된다. “나(즉 거짓 나, 작은 나)를 죽이면 전체가 살아난다.”( ) 용어와 수행방법에서 불교와 일치한다.(49)

다른 것은 ‘전체’를 강조하는 점이다. 물론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보살정신에 들어있다고 볼 수 있다. 불교의 목표는 상구보리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으로 표현된다. 중생은 함석헌에게 온 생명‘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현대에 와서 대부분의 밑바닥 민중에게 경전의 지식, 참선보다 단순한 신앙(念佛法))이 필요하다고 진단한다. 이는 이미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뛰어난 학승 원효의 수행과정과 대중교화를 상기시킨다. 요석공주와의 일화를 남기고 나중에는 환속하여 뒤웅박을 치면서 저자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나무아비타불‘을 염송하였기 때문이다. 함석헌의 관찰은 불교사를 꿰뚫는 데서 나오거나 아니면 불교사와 우연히 일치하는 통찰이다.(그는 원효를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유가에서도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말한다. 함석헌은 그 순서가 역순이 되어야 한다고 해석했다. 세계평화와 나라사회의 질서가 개인적인 수신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2천년 이상을 지배해온 봉건주의적, 군주주의적인 질서를 뒤바꿔버린 것이다. 유가의 수신은 참 나를 찾는 데는 미치지 못한다고 보았을지도 모른다. 그의 신앙인 기독교의 방법론도 빠질 수 없다. 이는 민족적 죄악의 참회를 요청한다.

함석헌은 사상 형성과정에서 점점 사회구원론으로 기우러졌다. 개인구원 따위는 없다,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개인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이 글 속의 접근법과 약간 차이가 느껴진다. 이 글은 1961년에 쓰인 것이고. 전체(사회) 구원이 뚜렷이 등장한 것은 그 이후이다. 샤르뎅의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지만 확증해 주었을 뿐, 자기 내면에서 자라나온 사유였다. 전체론은「펜들힐의 명상」(1971)에서 정점을 이루었다. 예수를 배반한 가롯 유다에 대한 여태까지의 선악 2분법적 서양식 해석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 십자가 사건은 전체가 깨지는 아픔이었다. 아마 지금도 예수가 유다와 소통하려고 지옥에 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펜들 힐의 체험은 다른 의미에서 불교의 연기론에 그대로 부합한다. 이는 모든 존재가 다른 존재와 유기적으로 얽혀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 맥락의 차이가 크지 않을 수도 있다. 함석헌도 말했지만, 전체구원이라 하더라도 그 단초는 개인에게서 출발해야하기 때문이다.(2010.7.1, 김영호, 내일계속)

김영호 선생님은
인문학의 몇 분야를 방황하면서 가로질러 수학, 연구(스톡홀름대, 하버드대 펠로우), 강사(연세대 숭실대), 교수(인하대, 현재 명예교수)로 일했다. 전공은 종교철학(원효사상)으로, 그의 세계관의 큰 틀(패러다임)은 다원주의다. 다원주의를 통해 민족분단. 사회 및 지역 갈등, 종교간 갈등 등 한국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극복하기위한 방법론을 모색하고 있다. 그의 사상적 준거는 함석헌과 크리슈나무르티이다. 그 동안, 해외 민주화운동의 도구인 민중신문』(캐나다) 창간(1079)에 관여,『씨알의 소리』편집위원, 함석헌기념사업회 씨알사상연구원장을 맡기도 했다. 지금은 함석헌평화포럼 공동대표와 함석헌학회 학회장직을 맡고 있다.(2015년 12월 현재)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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