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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어록 365일

[김영호의 함석헌 읽기] 교회에서 불경을 읽을 때다.

by anarchopists 2020. 1. 14.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7/15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읽기
함석헌저작집 2권 인간혁명

자료: 함석헌저작집 제2권 (인간혁명) 15-80 (「인간혁명」
열쇳말 - 민족개조, 민중, 종교, 전체, 혁명, 생명, 인(仁),

1. 혁명, 7월 12일자
2. 민족 전체, 7월 13일자
3. 종교다원주의

이 글에서 뚜렷이 각인되는 모습 또 한 가지는, 앞에서 엿보았듯이, 종교에 대한 열린 태도이다. 기독교만이 아니라 불교, 유교, 힌두교, 도교 등을 넘나들면서 자기 생각을 펴고 있다. 현대는 다원주의 시대이다. 모든 가치관, 이념에 다 적용되지만 무엇보다 문화와 사회의 기반인 종교에 적용된다. 서구는 이미 종교다원주의를 실천하기 시작하고 있다. 개인은 물론 학교에서도 세계종교가 거의 모든 대학에서 주요 교과목(교양필수)이 되어있다. 하버드대가 대표적이다. 여기에는 세계종교연구소가 설치되어 세계각지의 다양한 종교인, 종교학자들이 모여 함께 대화하고 연구하고 있다. 북미 등지에서 교과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모든 종교를 일단 평등하게 보는 다원주의 입장에 서지 않고는 그런 책을 쓸 수 없다.

미국에서는 1950년대 말에 휴스톤 스미스(MIT)의 세계종교 라디오 강좌가 인기를 얻어 책자로 출판되고 판을 거듭하여 150만부 이상이 팔렸다. 학자들을 포함한 많은 지식인들이 하나의 종교에 만족하지 않고 다른 종교까지 신앙으로 채택하는 추세가 늘고 있다. 말하자면, 이중국적처럼 이중, 다중의 종교, 즉 이중, 다중 종적(宗籍)인 셈이다. 비교종교학의 석학이며 세계종교 책들을 쓴 Ninian Smart는 스스로 ‘불교-성공회교도’(Buddhist-Anglican)라고 고백한다. 하버드대 세계종교연구소의 창설자인 Wilfred Cantwell Smith는 다중 종교인이라고 고백했다. 동시에 자기 소속 종파에서 봉사했다. 함석헌도 다중종교일 수밖에 없다. 한국인 피 속에는 유전자처럼 3교와 무교(巫敎 shamanism) (神敎))가 내포되어있다. 함석헌은 영락없는 한국인이다. 황필호는 한국인에게 개종(conversion)은 없고 가종(加宗 addversion)만이 있을 뿐이라고 명쾌한 해석을 내렸다. 그렇다면 한국인의 종교의식은 4중 내지 5중의 층으로 형성되어 있는 셈이다. (중국인, 인도인, 일본인도 엇비슷하다.)

지금 서구학계에서는 특히 기독교-불교의 관계 설정에 열심이다. (불교-기독교 학회도 진직 설립되었다.) 두 종교는 동서 종교를 대표한다. 불교는 인도에서 기원하여 중국, 한국, 일본을 거치면서 그 문화 형성에 큰 역할을 해왔다. 두 종교는 또한 종교의 두 유형 즉 계시종교와 자각종교를 대표한다. (최수운의 대각체험은 양면성을 지닌다.) 함석헌은 노상, 이 글에서와 같이, ‘예수 석가’를 병치시키고 불교를 원용한다. 서구 기준에서도 선구적이다. 그만이 아니다. 우리 민족, 민중이 원래 그랬다. 연개소문은 종교의 3자 정립(鼎立)을 위해서 도교의 도입을 보장왕에게 요청하여 그렇게 했다. 최치원, 김시습 등 걸출한 사상가들은 3교를 넘나들었다. 할머니들은 “한울님, 용왕님, 삼신 할머니, 부처님, 보살님, 신령님...”하면서 빌었다. 그것을 통치자들과 기득권 세력이 막았을 뿐이다. 오늘날도 그런 측면이 없지 않다.)

함석헌이 불교-기독교의 관계를 상호보완적, 다원주의적으로 잘 설정하는 하나의 철학적 분석은 이 글 속에 있는 ‘나’(自我)의 해석에서 잘 나타난다.(49) 그는 ‘나’를 ‘민’(民)과 ‘나라’와 일치시킨다. 그러므로 성서의 “하늘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는 말씀이 성립한다. 한 발 더 나아가 “나(自我)를 본 자가 아버지[민족, 세계, 하늘)를 본 것이다.” ‘나’를 ‘아버지[全體]’와 동일시하기까지 한다. 신은 ‘전체’라는 것도 주목할 점이다. 시대를 앞선 말씀이다. 함석헌의 신관은 이미 좁은 인격신관을 넘어섰다. 서구 학자들도 이제 부지런히 뒤따라가고 있다.

다른 글에서 함석헌은 “나를 통하지 않고는 천국에 이를 수 없다”의 ‘나’를 예수자신이 아닌 나 자신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 또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에도 해당한다. 바로 같은 문단에서 함석헌도 이 표현을 인용하고 있지만, 불교의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도 새롭게 해석된다. 이 나(我)는 석가가 아니고, 자기(자아)라는 해석이다. 다른 해석이 없지는 않았지만(혜암, 대행), 동서의 종교사를 뒤집는 독창적인 해석이다. 반 세기 전에 이런 해석이 나왔는데도 아직 주목을 받지 못했다면 종교가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이 해석은 불교가 아니고 기독교성서를 자료로 한다는 점에서 크리스천에게 혁명적, 틀(paradigm) 전환에 해당한다. 이 한 가지만으로도 그가 누구보다 기독교의 토착화에 크게 공헌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메시지는 전달된 것 같지 않다. 이단시되었을 것이다. 그만큼 아직도 토착화가 덜 된 셈이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특히 보수주의 서구 종파의 영향으로 원시적 단계에 머물고 있다. 발전, 진화된 종교관이 대학의 교과목에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 종교에 대한 무방비 상태로 사회에 진출하고 있다. 평생 맹신자가 될 위험을 안고 있는 셈이다. 종교계 자체는 어떤가. 종교 간의 대화는 거의 없다. 모두 사익화, 이익집단화하고 있다. 함석헌은 1950년대 후반부터 종교조직에 대한 포문을 열었다. 지금 서구에서는 종교는 원래 운동에서 출발했다는 서양학자(Smith 1981)의 주장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모든 존재와 현상의 부단한 변화와 진화(하느님까지도)를 강조한 함석헌도 환호했을 주장이다. 주역 사상도 그 근거가 된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종교들은 원래의 지향과는 크게 다른 형태이다. 예수나 석가가 와서 보면 기겁을 할 것이다.

함석헌은 또한 이렇게 갈파했다. “정신운동 중에 가장 높은 것인 종교는 조직 중에 가장 높은 조직, 강제가 전혀 없는 조직, 조직 아닌 조직이다.”(40) (그래서 조직 종교는 인간 구원의 길로 이끌지 못한다는 강력한 메시지가 인도출신 성자 크리슈나무르티에서 나왔다.) 함석헌은 제도화, 권력화한 조직에 반대한다. 여기에 제3의 종교개혁이 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족성 개조에도 그런 조직이 아닌 최소한의 조직이 필요하다.) .

그런데 오늘 그 메시지의 여파는 어디까지 미쳤는가. 극히 일부 신학자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석가를 ‘태어나지 않았어야 할 사람’으로 공격하는 목사가 있다. 곳곳의 불상이 훼손되고 단군상이 목잘리고 장승이 설자리를 잃고 있다. 불교 쪽에서는 ‘종교편향’ 대책 마련에 바쁘다. 종교배타주의로 싸우고 있는 중동 국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남북대결도 그 극한성에서 종교적인 차원의 성격이 짙은 것이다.

함석헌의 다원주의적인 입장은 그의 명저로 치는『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를 『뜻으로 본 한국역사』(1961)로 개칭한 데서 잘 들어난다. “내게는 이제는 기독교가 유일의 참 종교도 아니요, 성경만 완전한 진리도 아니다.”(서문) 그가 깨달은 대로, 어떤 종교도 부분적 진리일 뿐 진리전체를 대표할 수 없다. “하나만 알면 아무것도 모른다.”(궤테, 막스 뮬러) 그것을 서구에서도 근대에 깨달았다. 이제는 실천 단계이다. 절에서 성서를 읽고, 교회에서 불경을 읽는 때가 와야 하고 아마 그럴 것이다. 그래야 종교적 진리가 더 잘 파악되고 종교 간의 갈등이 완화될 수 있다. 켄 윌버같은 서구학자들은 다원주의 시대를 거쳐 종교 통합의 시대가 와야 한다고 역설한다. 함석헌은 미래의 종교에 대해서 통합까지는 말하지 않고 민중이 앞으로 결정해갈 일이라고 함으로서 그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선지자 함석헌의 이야기를 좀 더 경청했더라면 종교 간의 소통부재와 갈등, 잠재적인 종교전쟁을 극복할 환경을 좀 더 일찍 구축할 수 있지 않았을가.(2010. 7.10, 김영호, 내일 계속)

김영호 선생님은
인문학의 몇 분야를 방황하면서 가로질러 수학, 연구(스톡홀름대, 하버드대 펠로우), 강사(연세대 숭실대), 교수(인하대, 현재 명예교수)로 일했다. 전공은 종교철학(원효사상)으로, 그의 세계관의 큰 틀(패러다임)은 다원주의다. 다원주의를 통해 민족분단. 사회 및 지역 갈등, 종교간 갈등 등 한국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극복하기위한 방법론을 모색하고 있다. 그의 사상적 준거는 함석헌과 크리슈나무르티이다. 그 동안, 해외 민주화운동의 도구인 민중신문』(캐나다) 창간(1079)에 관여,『씨알의 소리』편집위원, 함석헌기념사업회 씨알사상연구원장을 맡기도 했다. 지금은 함석헌평화포럼 공동대표와 함석헌학회 학회장직을 맡고 있다.(2015년 12월 현재)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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