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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함석헌은 누구인가.

by anarchopists 2019. 11. 12.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9/01 06:00]에 발행한 글입니다.


‘무지개사상’을 만든 함석헌은 누구인가.

우리 시대 왜 함석헌(1901~1989)을 말해야하는가
.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함석헌을 알지 못한다. 대체로 50대 이하의 나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더 잘 모른다. 그 이후의 나이를 가진 중에서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도 수구(守舊)적인 사람들은 함석헌을 반정부적인 인사 정도로 치부한다. 또 민족통일을 지향하는 사람들 중에는 함석헌이 반공주의자라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또 도덕군자 중에는 함석헌이 여성편력이 있다하여 부도덕(不道德)한 인물로 폄하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잘난 사람일지라도, 사람 모두의 마음에 들 수는 없다. 반정부니 부도덕이니, 반공이니 하는 말들은 죄다 먼 옛날의 인간들(권력자)이 제 입맛에 맞게 정형화(form regularization, 整形化)하여 강제된 규칙들이다. 이렇게 지배권력, 종교권력, 자본권력 중심으로 법제화되고 윤리화된 약속을 가지고 반정부적이다. 반공인사다. 부도덕하다로 매도하는 것은 시대흐름에 맞지 않는다.

정의로운 사람들의 반정부적 행위는 오히려 사회발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만약 이 땅에 민주화운동(박정희와 전두환의 파쇼에 저항 한 것은 당시는 분명 반정부적이라 볼 수 있다)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 사회가 보다 민주적으로 발전될 수 있었을까. 정의로운 사람들의 자기희생을 무릅쓴 반정부운동이 없었더라면, 박정희, 전두환 같은 독재권력에 의한 인권유린이 사라질 수 있었을까. 생각만 해도 꿈직하다.

또 어떤 사람들은 함석헌을 반공적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강제된 비극의 분단 상황에서, 인민군에게 아들을 잃었다면 그 사람과 가족들은 공산주의에 대한 어떤 태도를 취할까?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 이 점도 우리는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다.

또 여성편력이라 했을 때, 색한(色漢)의 개념을 갖는 호색가와 천재적 남자들의 여성편력은 그 개념이 크게 다르다.
서양의 많은 유명철학자(사르트르:Jean Paul Sartre 1905~1980, 버트런드 러셀 Bertrand Russell 1872~1970)와 과학자(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 그리고 음악가(바그너: Richard Wagner 1813~1883)와 화가(파블로 피카소:Pablo Ruiz y Picasso 1881~1973, 폴 고갱: Eugène Henri Paul Gauguin, 1848~1903)들도 부인 이외의 여성편력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색한이라는 말이 따라다니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의 여성편력을 가지고 그가 남긴 철학과 사상, 예술을 폄하하거나 매도하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그들의 여성편력을 “창조적 행동과 혁신적 사고를 통해 기존의 낡은 우상을 파괴”하려는 행동(?)으로 인식하였기 때문은 아닐까. 그리고 저들의 여성편력은 미래의 새로운 질서창조를 위한 신선한 반란이 아닐까? 다시 역설적으로 말하자. 천재 남성에게 여성이 모이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닐까?

혹자들이 뭐라고 하더라도, 함석헌은 분명, 역사 속에서 인간의 삶을 철학적으로 규명하였던 많은 성자들의 사상을 모두 섭렵하여 하나의 ‘무지개사상’을 만들어낸 천재다. 무지개는 일곱 가지 색깔을 띠면서 하늘과 지상을 연결하는 아름답고 영롱한 희망의 다리다. 우리말의 무지개라는 말은 《용비어천가》(1447, 50장 ‘므지게’)에서 처음 보인다. 무지개는 비온 뒤에 반대쪽에 나타난다. 농경사회에서 해(太陽=지게)와 비(雨=물)는 농민들에게 희망이었다. 비가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다. 그리고 태양이 없어도 농사가 안 된다. 무지개가 뜨면 해가 뜬다는 희망을 갖는다.

무지개는 반드시 비온 뒤 맑은 하늘에만 나타난다. 비(땅)와 태양(하늘), 두 가지를 상징하는 게 무지개다. 그래서 우리의 옛 농민들은 희망을 ‘무지개’에서 찾았다. 그래서 땅에서 하늘로 연결된 무지개를 ‘무지개다리’(색동다리)라 했다. 무지개다리를 통해 하늘이 인간에게 풍요로운 먹거리를 내려준다고 믿었다. 그리고 혼인할 색시와 총각도 보내준다고 믿었다. 곧 삶의 희망이요, 결혼의 희망이다. 그래서 무지개는 우리 농민들에게 적극적 희망과 기쁨을 주는 행복이었다. 지금도 무지개는 우리의 희망이 되고 있다.

무지개는 ‘빨주노초파남보’ 색의 경계가 분명치 않다. 색의 경계를 고집하지 않는다. 그게 무지개의 본질이다. 그래서 무지개를 학문에다 대입하면 분명 ‘융합철학’(이를 무지개사상으로 표현하였다)에 해당된다. 세상이 급진적 변화를 보이고 있던 근대 시작기 18세기에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융합철학자였다면, 탈근대(脫近代: post-modernism)로 가는 이 시대의 융합철학자는 함석헌이다. 앞으로 나가고 있는 이 시대는 과거처럼 한 가지 사상만을
고집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성을 강조한다. 곧 다문화시대이다. 이게 부정할 수 없는 오늘의 시대사조이다. 함석헌은 무지개처럼 뚜렷한 한 가지 사상만을 고집하지 않았다.

함석헌은 분명 우리 시대에 ‘사상의 무지개’를 놓고 간 분이다. 다양해져 가는 열린 시대에 필요한 융합철학의 무지개를 놓고 간 사상가다. 서양의 그리스도 사상(퀘이커)을 기본으로 동양의 불교사상, 공맹사상, 노자사상, 양명사상, 그리고 다시 서양의 실존주의 사상과 아나키즘까지 융합하였다. 그래서 함석헌은 무지개사상을 만들어냈다. 함석헌의 무지개사상은 문화의 다양성 강조와 하나의 인류를 지향해 가는 곧, 미래사회의 세계주의로 귀결되었다. 그래서 그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의 귀감을 보이면서 세계주의를 실천해갔다. 세계주의는 곧 평화주의사상이다. 세계평화는 전쟁이 종식되어야만 가능하다. 전쟁종식을 위하여 합법을 가장한 국가폭력을 반대해야 한다. 곧 국가(정부)지상주의에 대한 반대이다.(2012.8.30 아침, 취래원농부)

취래원농사는
황보윤식(皇甫允植, 醉來苑農士)
학생시절부터 민족/통일운동을 하였다. 동시에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갖고 생명운동을 하였다. 나이 60을 넘기자 바람으로, 도시생활을 과감히 접고 소백산(영주) 산간에 들어와(2010) 농업에 종사하면서 글방(書堂, 반딧불이서당)을 열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를위한시민모임”,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평화연구소”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글로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2017) 등 다수의 글이 있다.(수정 2018. 10.3) /함석헌평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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