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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참으로 딱한 역사인식-5.16쿠데타가 필연이라구?

by anarchopists 2019. 11. 12.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8/14 06:00]에 발행한 글입니다.


참으로 딱한 역사인식 - 5.16쿠데타가 ‘필연’?

최근에 이 나라에서는 12월 대선(大選: 대통령선거, 12.19)을 앞두고 대선주자들이 경쟁적으로 나와 자신의 가치관을 선보이고 있다. 이중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역사인식의 문제이다. 역사인식은 곧 그 사람의 가치관이요, 우주관이다. 아직도 국가(정부)지상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 이 세상에서는 ‘대통령의 가치관’이 그 나라 사람들의 삶의 모습(색깔)을 만들어 내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예를 하나 들자.
민족생존과 인권, 그리고 자유에 대한 문제를 놓고 생각해 보자. 빈민족적 분단세력(친미적, 반공적, 파쇼적, 권력지향적)인 이승만과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이 나라는 반민족통일 논리인 반공이 일방적, 강제적으로 국시(國是: 국가 이데올로기)가 되어 반공독재가 판을 쳤다. 이에 반하는 생각(가치관과 신념)을 가진 인민(人民: 이를 국민이라고 부르지만, 국민은 일제시기 표현이므로 인민이라고 표기했다. 오해 없기 바란다.)들은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받아야 했다. 이것을 ‘인권(人權)의 유린’이라고 한다. 인권유린은 정치적 가치에 인간적 가치가 매몰(埋沒)되고 짓눌리는 것을 말한다. 이들은 권력을 사람보다 앞세웠다.

시간이 흘러 전두환·노태우·김영삼이 잠시 있었지만, 이들은 앞의 두 권력지상주의자의 가치관을 계승하였을 뿐, 대통령으로서 이렇다 하게 쓰일만한 가치관조차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이어 김대중,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 이들은 민족과 사람(한국인)에 대한 뚜렷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이 재임(1998~2008)하고 있는 동안 이 나라는 인민의 행복과 자유를 위한 진보적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민족통일을 위한 진보적 변화를 했다. 그 결과 민족에 대한 희망이 보였다. 사람에 대한 희망이 보였다. 영토통일의 길이 열렸다. 인권이 신장되었다. 심지어 북한의 인권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역사의 시계도 정의시간을 가리키게 되었다. 이 두 대통령은 국가와 권력보다 인권이 먼저라는 인식을 이 나라 사람들에게 심어주었다. 사람이 있기 때문에 정치가 있고, 사회가 존재한다는 것을 심어주었다.

그러다가 권력지향적 분단세력(뉴라이트적 역사인식을 가진)들의 사기성 꾐에 빠져 전근대적(탈근대로 가야 함에도) 역사인식을 가진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이때부터 다시 역사의 시계는 거꾸로 가도록 강제되었다. 인권이 국권에 압제 당하는 시간으로 되돌려졌다. 삶의 희망이 사라졌다. 사람은 안 보이고 권력과 국가만 보인다. 참으로 딱한 세상을 만났다. 이런 마당에 다시 뉴라이트적 역사인식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이 되겠다고 후보로 나섰다. 그리고 그 사람을 담고 있는 정치세력(정당)들이 권력을 계속 장악하고자 이 사람을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바로 반민족적 분단세력의 한 사람으로, 국권을 앞세워 이 나라 사람들의 인권을 유린해 해왔던 박정희, 그의 딸 박근혜라는 사람이다. 그런데 박근혜는 이미 거의 모든 역사학자들이 우리 역사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결론을 내리고(박근혜는 “그것을 쿠데타로 부르든, 혁명으로 부르든 5·16 자체가 있었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가 없는데, 그것을 놓고 정치권에서 싸우면 오히려 나라의 분열을 일으키는 것”이라며 “역사의 평가에 맡겨야 한다.”: 〈2012.8.8., 아시아경제〉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미 이 나라 ‘역사의 평가’는 5.16쿠데타와 유신체제는 잘못이라는 역사적 시실을 세웠다) 헌법정신에도 반영된 역사적 사실(5.16쿠데타와 유신체제)을 ‘역사의 정의’ ‘역사의 필연’으로 보고 있다. 즉, 이 사건들이 우리 역사를 바르게 이끌었다고 말한다. 역사학자의 연구업적을 깡그리 뒤엎는 언사다. 이러한 그녀의 역사가치관은 상당히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그녀의 역사인식의 오류를 지적해 보자.

그녀는 ‘5.16쿠데타’[coup d'Etat] 를 ‘혁명’(革命)으로 보았다. 쿠데타와 혁명은 그 역사적 기능이 다르다. 이 기회에 개념공부를 해 보자. 쿠데타와 혁명의 개념차이다. 먼저 쿠데타의 개념부터 알아보자. 쿠데타라는 말은 영어의 ‘stroke of state’ ‘blow of state’(국가에 대한 일격 또는 강타)에 해당하지만, 프랑스어인 쿠데타를 그대로 사용한다. 그 이유는 쿠데타의 전형적인 예가 프랑스적 기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쿠데타는 은밀하게 계획되어 기습적으로 감행되는 것이 보통이고, 반대파의 체포·탄압, 정부요인의 불법납치·감금·암살, 군사력의 강압 등을 배경으로 한다. 민중기의(民衆起義: 시민봉기, 지배층 중심의 역사에서는 기의나 봉기를 민난 또는 반난 등으로 표현한다)와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의회를 강점하고 주요정부기관이나 언론기관을 탈취·점령하는 등 갖가지 방법이 동원된다. 따라서 비합법적이다. 불법이다. 때문에 역사발전에 부정적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역사발전에 부정적으로 기능한 쿠데타의 대표적인 것인 대한민국의 5.16쿠데타다. 곧 후진국형 권력교체 방법이 쿠데타다.

그러나 혁명이 일어나는 배경은 당시의 사회구조가 더 이상의 역사발전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기존의 지배적 권력층이 부패하고 타락하였다는 사회조건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방법에 있어서도 기존의 사회체제와 구조를 변혁시키려는 피지배계층의 민중기의가 수반되어야 한다. 그래서 혁명의 주체(민중)가 국가권력을 인수하는 권력교체가 있어야 한다. 때문에 지배층의 입장에서는 피지배층의 권력인수를 비합법적으로 해석할지 몰라도, 피지배층 입장에서는 합법적 권력 장악수단이 된다. 따라서 혁명은 선진국형 권력교체 방법으로 역사발전에 긍정적 기능을 한다. 그 예가 근대국가에서 성공한 4개의 혁명, 즉 영국의 청교도혁명, 미국의 독립혁명, 프랑스혁명, 러시아의 공산주의혁명 등이다.

그렇다면, 글쓴이의 입장에서 5.16쿠데타를 정리해 보자. 5.16쿠데타는 분명 우리 역사에 와서는 안 될 친일행각을 해왔던 못된 군인들이 저질은 정치권력의 도적질이었다. 5.16쿠데타는 분명 우리 역사발전에 부정적으로 기능하였다. 곧, 민주주의의 후퇴, 자유주의(인권)의 후퇴, 영토통일의 지연, 민족분단의 고착화, 부패·타락한 자본주의로 이행과 이에 따른 정경유착, 자본집중, 빈부격차의 심화 등이 만연되었다. 그리고 인격을 갖추고 교양을 지닌 사람다운 사람이 푸대접 받고 비교육적이고 물질만능의 천박한 재능들이 능력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대접받는 사회가 되었다.

이렇듯, 5.16쿠데타는 민주적이고 자유적인 그리고 인간중심적이면서 경제발전적인 ‘4.19사회체제’를 무너트리고 비민주적이고 부자유적인 그리고 권력중심적인 5.16사회체제를 만들어냈다. 지금도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잠시 있었지만, 5.16체제가 지속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5.16쿠데타는 인간의 행복과 자유를 유린하는 ‘국가지상주의’가 이 나라의 역사시간으로 자리를 잡게 해 준 잘못된 역사적 사실(Fact)이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말하지 말자. 우리가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박정희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자본주의 세계경제질서의 흐름 속에서 당연한 결과였다. 박정희 때문에 잘 먹고 잘 살게 되었다는 발상은 영웅주의적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이야기를 마무리하자.

1. 박근혜가 5.16쿠데타에 대한 역사인식을 “그르다. 맞다”라는 식으로 바라보는 것은 위험한 논리다. 역사의 오류로 인식되고 있는 5.16쿠데타의 주역 박정희가 그녀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그가 한 행동까지 미화시켜 보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아버지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사람이 역사인식마저 사적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는 말이다. 그의 아버지 때문(긴급조치 발동, 국가보안법 확대 적용, 반공법의 남발 등)에 오늘날까지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것은 분명 국권이 인권을 짓밟은 전형적 사례다. 이들의 아픔도 헤아릴 줄 알아야 대통령이 될 자격이 있다. 그녀 아버지의 권력욕 때문에 이 땅에서 짓밟히는 희생을 당하고 고통 속에 사는 많은 사람들을 외면(대선 표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보는, 정치적 논리로만 보려고 하는)하면서 대통령이 되겠다는 속내를 가진다면 그가 대통령이 되어 잡은 권력의 본질은 곧 파쇼로 갈 수밖에 없다. 즉 역사시간이 다시 거꾸로 돌 수밖에 없다.

2. 박근혜는 한나라당 시절에도 “5·16은 구국의 혁명이었다. 과연 5·16과 유신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겠나?”(1989년 <문화방송> 인터뷰)라는 반역사적 발언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대선후보자로 나선 요즈음에도 계속하여 “아버지로서는 불가피하게 최선의 선택을 하신 것”, “5.16이 오늘의 한국이 있기까지 초석을 만들었다고 본다.”(2012.7.16.,프레스센터, 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는 발언을 함으로써 그녀의 역사인식에 변함이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저같이 생각하는 국민도 많이 계시고 달리 생각하는 분들도 있다”(7.18)고 말했다. 이는 곧 5.16쿠데타를 혁명으로 인식하는 사람은 많고, 쿠데타로 보는 사람은 적다는 의미다. 곧, 궤변이다. 이는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사람으로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 뉴라이트들이 박근혜를 옹호하기 위해 “5.16은 시작은 쿠데타였지만 결론적으로는 혁명이었다.”2012.7.18., 서울대 박효종 교수)는 발언 또한 역사적 사실을 호도하는 궤변이다. 기회주의적 발상이다. 권력욕에 혈안이 된 거머리 같은 단말마적 발언이다.

3. 그리고 그가 몸담고 있는 정치세력들이 “표를 의식하여 유연하게 대응해 달라”(새누리당 심재철, 2012. 08.09 연합뉴스)는 주문이 있자. 이후 박근혜는 “그게 어떤 정상적인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2012.08.08., 연합뉴스)이었다는 식으로 표현을 바꾸었다. 이는 그녀의 역사인식이 바꾼 게 아니다. 어쩌면, 권력욕에 혈안이 되어 기회주의자가 되었던 박정희의 유전인자를 물려받지는 않았나 하는 인상을 지울 수 없게 만든다. 지금 역사의 시간은 통일의 시대, 화합의 시대, 인류평화의 시대로 가고 있다. 이러한 역사시간에 아직도 국가지상주의, 권력우월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면 이는, 이 나라가 세계가 지향해 가고 있는 평화주의 기류를 타지 못할까 하는 우려를 해본다.(2012. 8.13 아침, 취래원농부)

취래원농사는
황보윤식(皇甫允植, 醉來苑農士)
학생시절부터 민족/통일운동을 하였다. 동시에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갖고 생명운동을 하였다. 나이 60을 넘기자 바람으로, 도시생활을 과감히 접고 소백산(영주) 산간에 들어와(2010) 농업에 종사하면서 글방(書堂, 반딧불이서당)을 열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를위한시민모임”,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평화연구소”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글로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2017) 등 다수의 글이 있다.(수정 2018. 10.3) /함석헌평화연구소

* 본문 내용 중 사진은 네이버 이미지에서 따온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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