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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칼럼

한국인의 정신을 개조하자

by anarchopists 2020. 1. 4.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12/21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정신을 탈구축하자!

지금 우리 사회의 병폐는 정신의 황폐화이다. 정신이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성의 날카로움이 무뎌져서 사회적 현상의 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눈이 실명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철학적으로는 독사(doxa) 즉 억견에 사로 잡혀 있으면서 그것을 진리의 참 인식인 에피스테메(episteme)로 착각하고 있는 현상이다. 그로인해 이미 길들여져 버린 이성은 자신을 혁명하고 사회를 개혁하는 능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을 미리 예언이라도 한 것처럼, 함석헌은 언젠가 ‘민중, 씨알의 마음을 갈아엎는 것을 혁명’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가 말한 것처럼, 세계의 혁명, 사회의 혁명, 우주의 혁명, 생명의 혁명은 곧 인간의 마음 밭갈이, 정신의 밭갈이가 선행되어야만 한다.


다시 말해서 인간 정신의 탈구축 혹은 탈구성은 정신의 에피스테메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의 생명 진화 즉 인격적 진화를 멈춰서는 안 된다. 현대의 과학기술문명이 인간 이성의 진보나 진화의 결과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또한 물질의 풍요로움이 인간의 이성적 욕구의 산물인 것처럼 단정지어서도 안 된다. 인간의 역사에서 과학기술과 의학, 그리고 물질적 풍요라는 것은 인간의 부질없는 욕망의 잔재이지 순수이성과 정신이 낳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어쩌면 인간의 이성은 역사적 진보에서 가장 더디게 진화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동물적 본능과 욕망이라는 1차원적 존재 상태에서 조금도 진화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다.

함석헌은 인격(사람틀) 또한 생명적 진화의 현상으로 본다. 왜냐하면 사람이 틀을 갖춘다는 것은 현실에 안주하거나 체제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저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틀을 갖고 있는 존재는 스스로 나아가려는 속성을 갖고 있다. 그것이 생명이 갖고 있는 본래적인 힘이라는 사실을 함석헌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진화론적 사상은 분명히 떼이야르 드 샤르댕(Pierre Teilhard de Chardin)에게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별적인 존재로 이루어진 사회는 이성적 진화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사람의 꼴을 갖추고 있는 인격적 존재는 이성의 최종적 모습을 완성하기 위하여 부단히 나아가는 생명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생명진화가 인격이요, 진화하는 것이 생명’이다. 그런데 생명을 지닌 인간은 그 진화의 정점에 서기도 전에 막을 내리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그 이유는 생명이 ‘스스로 나아가려고 하는 그 항거정신’ 혹은 자각 정신을 꺾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은 이제 마음을 갈아엎어야 할 때가 되었다. 정신을 개조할 때가 된 것이다.


우리 사회의 우울증과 조울증의 양극을 선회하는 병리적 현상을 넘어설 수 있는 대안은 인간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려는 초인(Übermensch)이 되는 데에 있다. 그것은 만능 수퍼맨이 아니다. 우울증이나 조울증에 빠져서 현실을 긍정만 하고 부정할 줄 모르거나 반대로 현실을 부정만 하고 긍정할 줄 모르는 이데올로기에 매몰된 인간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무한히 초극하는 인간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대지 위에다 새로운 가치나 새로운 체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인간이 초인이다. 그것은 무엇에 기대거나 의존하는 무비판적, 무반성적인 수동적인 인간이 아니라 자신 안에 초극하는 힘을 가진 존재로서 체제와 지배에 대해서 저항하고 대항하면서 반항할 수 있는 성숙한 인간이다.

사회와 국가, 그리고 세계가 발작을 하고 있고, 염증이 생기고 경련을 일으키는 이때에 반물질, 반계급, 반소외, 반지배 등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다시 인간의 정신을 개조하는 일뿐이다. 순수한 정신과 이성으로 낭비하지 않는 인간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탈구축이란 이성의 날개를 달고 저항의 날개짓을 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쓸모없는 깃털을 버려야(de, 脫) 할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은 결국 새로운 깃털로 힘차게 날아오르는 일(construction, 構成)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2010/12/21; 김대식)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 본문 중에 나오는 사진은 인터넷 네이버에서 따온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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