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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강좌

하느님(초월자)의 관심사는 종교가 아닌 인간의 인격체

by anarchopists 2019. 11. 15.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5/21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하느님(초월자)의 관심사는 종교가 아닌 인간의 인격체




  종교는 종교의 지양(止揚, Aufhebung)이어야 한다. 여기서 지양은 ‘부정하다’, ‘보존하다’, ‘높이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종교의 종교 지양은 종교라는 개념에 종교가 제한되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 나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는 바로 이러한 논조의 종교 관념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신앙은 깊은 개인 인격체적인 것이며 역동적이고 궁극적인 것으로서 고뇌나 탈아적 상태, 혹은 지적 양심이나 단순히 일상적인 가사들 속에서 한 인간을 온 우주의 하느님과 연결시켜 주며 또 그의 고통 받는 이웃과 연결시켜 주는 직접적인 만남이다. 즉 그 이웃이 자신의 제도화된 종교 공동체 밖의 존재라 하더라도 개의치 않고 인격체들을 인격체들로서 연결시켜 주는 만남인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이 생동적인 사람은 추상적 개념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있을 수 없고 제도에 대해서는 기껏해야 부차적 관심만을 지닐 뿐이다.”(Wilfred Cantwell Smith, 길희성 옮김, 종교의 의미와 목적, 분도출판사, 1991, 176쪽)

그는 종교라는 말 대신에 ‘신앙’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를 선호한다. 신앙이란 인간이 온 우주와 만나는 것이며 자신의 종교와 동일한 존재가 아니더라도 모든 사람들을 이웃으로 간주하고 그들과 만나는 것임을 명확히 한다. 종교는 사람을 가리고 타종교를 구분하고 배제하지만 신앙은 모든 것을 포괄하고 포함하려고 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종교를 지양해야 종교 너머의 세계, 초월적 존재를 만나게 된다. 종교 안에 갇히게 되면 종교라는 개별 정체성 때문에 이웃을 이웃으로 환대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종교는 자신의 종교를 지양하고 초월적 존재를 지향해야 한다.

“하느님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느님은 그리스도교에 관해서는 별 관심도 없다는 것을 모름지기 인식해야 한다. 하느님은 인간에 관심이 있는 것이지 사물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아들을 주셨다는 말을 듣고 있지만 하느님이 그리스도교를 사랑했다는 말은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Wilfred Cantwell Smith, 길희성 옮김, 종교의 의미와 목적, 분도출판사, 1991, 176-177쪽)

이러한 말은 모든 종교인들에게 매우 설득력이 있는 논변이다. 실제로 그리스도교의 경우 자신의 종교와 하느님의
그리스도인에 대한 사랑을 등치시켜서 생각해 왔다. 그러나 스미스가 말했다시피 하느님은 그리스도교에 관심조차도 없다. 하느님은 그리스도교라는 종교를 뛰어 넘어 인간 그 자체, 인간 인격체에 관심을 갖고 계실 뿐이다. 하느님은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그것과 상관없이 세계의 모든 인간에 대해서 관심과 사랑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유교,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등 다른 종교를 갖고 있는 타종교인에게까지 이르는 초월자의 사랑의 범위는 무한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스미스의 말을 더 들어보자. “하느님은 종교들을 계시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을 계시한다. 이것이 진정으로 종교적인 사람들이 주장하는 바이다... 종교라는 개념이 자신의 종교적 전통의 궁극적 목적을 충분히 가리킨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종교적 전통의 핵심을 보지 못한 사람이다. 한 종교 운동의 참여자가 된다는 것은 그 운동이 그 자체를 넘어선 어떤 것 혹은 어떤 분을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Wilfred Cantwell Smith, 길희성 옮김, 종교의 의미와 목적, 분도출판사, 1991, 177-179쪽) 종교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자신의 종교적 전통이 아니다. 그것은 종교 개념이 넘어선 자리 곧 초월적 존재에 있다. 스미스는 종교의 참여자와 관찰자를 구분한다. 종교의 참여자는 종교라는 개념에 의식이 고정되어 있거나 묶여 있지 않은 열린 사람을, 관찰자는 그와는 반대로 철저하게 자신의 종교에 국한된 사고와 행위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사람을 일컫는다. 따라서 종교 참여자는 자신의 종교에도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신앙인으로서 종교 개념 혹은 자신의 종교를 넘어서 사유함으로써 진정한 초월자와의 만남을 추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종교적 체계에 이름을 붙이는 일을 하는 사람은 근본적으로 외부자들이다. 종교를 어떤 표시할 수 있는 존재로서 생각하는 사람은 관찰자들이다... 참여자는 하느님에 관심이 있고, 관찰자는 ‘종교’에 관심을 가진다.”(Wilfred Cantwell Smith, 길희성 옮김, 종교의 의미와 목적, 분도출판사, 1991, 179-181쪽) 학자들이건 종교인들이건 그들은 종교 체계에 이름을 붙이고 개념을 고정시키려고 한다. 그것이 더 편할 수 있다. 규정되지 않은 존재, 교리화되지 않은 신앙은 사람으로 하여금 확신을 심어주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사람들은 비체계적인 것보다 체계적인 것을 좋아한다. 무정형적인 것보다 정형화된 것을 선호한다. 그러니 종교라고 하는 영적인 공동체가 추구하는 삶과 신학적 체계는 정교화되기를 바랄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종교는 영적인 자유를 지향한다. 깊이 있는 신앙을 가질수록 인간은 자신을 얽어매는 모든 체계나 제도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원한다. 오히려 체계는 신앙을 좀 더 순수하고 근원적으로 드러나게 하는 것에 장애가 될 수가 있다. 그래서 진정한 신앙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은 직접적으로 신과 합일하려고 한다. 다시 말해서 모든 조직화되고 교리화되고 체계화된 것, 이름으로 명명한 것을 넘어서 참 실재와 만나려고 하는 것이다.


  이미 종교라고 하는 것도 이름을 붙인 것이니 종교적인 것이라 말한 것, 종교적인 어떤 형식을 타파하고 오로지 하느님이라는 궁극적인 실재를 자신의 직접적인 관심사로 삼아야 한다. 이것이 종교의 참여자와 관찰자의 중요한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위 이미지는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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