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강좌

인간은 인격이다!

by anarchopists 2019. 11. 15.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5/29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둔스 스코투스, 인간은 인격이다!




  요한 둔스 스코투스(Johannes Duns Scotus, 1265/1266?-1308)는 많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었던 부유한 스코틀랜드 가문의 둔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프란치스코 수도회 사제로서 파리대학에서 문법, 수사학, 논리학, 산술, 음악, 기하학, 천문학을 비롯하여 훌륭한 철학적 교육을 받았다. 또한 그는 아우구스티누스와 프란치스칸의 전통을 잇고 있는 학자이면서 아랍 철학자 아비첸나(Avicenna)의 영향을 받기도 하였다. 마르틴 하이데거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 그는, 훗날 명민한 박사(Doctor subtilis)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얻었다. 둔스 스코투스는 1307년 쾰른으로부터 교수로 초빙된 지 얼마 안 있다가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쾰른에 있는 돌무덤에는 “Scotia me genuit-Anglia me suscepit, Gallia me docuit-Collonia me tenet.”(“스코틀랜드는 나를 낳고, 영국은 나를 받아들이고, 프랑스는 나를 가르쳤으며, 쾰른은 나를 품고 있다”)라고 새겨져 있다고 한다. 그의 인생 족적을 남긴 말이라 할 것이다.


  둔스 스코투스의 철학은 스콜라 철학의 바탕이 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는 전적으로 다르다. 그에 따르면 세계의 제일 원동자 혹은 부동의 원동자인 신개념은 적합한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신을 물리적 영역 안에 가두어두기 때문이며 모든 유한한 사물들이 본질적으로 종속되어 있는 무한유인 초월 존재를 결코 이끌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신은 모든 물리적 세계를 넘어서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신은 목적이자 인과에 있어서 원인들의 원인(causam causarum), 즉 제일 원인(prima causa)이다. 따라서 신은 무한하고, 유한한 존재에 의해서 파악될 수 없는 제일 진리이다(Tu solus es veritas prima).


  인간 존재는 신에게 그 기원을 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신에게 개방되어야 하는 인격(person)이다. 다시 말해 인격의 근원은 형이상학적 한계 안에서(ultima solitudo: 궁극적 고독) 신(ens totum: 전 존재)에게로의 개방성이다. 인간은 신에 의해서, 신과 더불어 있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신에게 향해 있어야 한다. 신을 향해 자신을 열어 놓아야 하는 신과 닮은 존재이다. 이러한 개별자의 존재 양식을 ‘개성’(haecceitas)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이것(haec)이라는 말에서 유래하는데, 이를 달리 ‘이것성’으로도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한 존재는 인격으로 하여금 궁극적 고독안에 내포된 개인주의와 허무주의의 위험을 극복하도록 한다. 인
격은 자기반성의 과정을 통하여 다른 유들과의 질적 차이성을 발견하며, 그의 존재가 고유하게 자기 것이라는 인식, 다시 말해 자기 원인이 아니라 타자에 의해 주어진 존재라는 의미에서 존재론적으로 제한된 존재이다. 따라서 무한 존재와의 근본적인 차이성인 인간은 절대적 타자에 의해서 근본적으로 종속되어 있음이다. 인간의 자기 존재는 자기 원인일 수가 없다. 원인의 원인인 절대 타자로부터 존재를 증여 받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절대적 타자를 향해 개방되어 있고, 인격은 우주적 관계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와 묶여 있고 더불어 모든 존재는 인간을 향해 있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고유한 주관성을 확인하게 되면서 자신은 폐쇄될 수 없고 개방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한다.


  절대 타자인 신은 존재론적 차이에 의해서 인간을 자신에게 종속된 존재로 삼게 되지만 신 안에서의 선물을 통하여 인간에게 자유를 갖게 한다. 그 자유는 의지의 절대 조건이다. 인간은 완전한 자유를 누리기 위해 비인간적 조건인 종속성을 극복하고 타협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 더 나아가 인간의 의지는 자유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가 곧 자유인 것이다. 그 의지(=자유)는 신 앞에서도 본질적으로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기능이다.


  둔스 스코투스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과는 달리 영혼과 육체를 나란히 놓고 보고 있다. 육체적 형상은 영혼을 위해 필요한 성질이면서 동시에 영혼이 도달할 때 사라지면 안 된다. 육체는 영혼과 함께 복합적인 삶을 건설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육체는 영혼의 현존과는 상관없이 고유한 존재론적 가치와 목적론적 의미를 지닌다.


  인간은 신 안에서 선물로서 부여받은 의지이며 자유를 가지고 있다. 비록 신에게 종속되어 있는 존재라고는 하나 그 종속성은 신과 세계를 향해 개방되기 위한 조건에 지나지 않는다. 유약한 인간의 개별적 존재인 ‘이것성’을 몸으로 표출하려는 현대인에게 의지, 곧 자유는 방종을 의미하지 않는다. 몸에 대한 가치가 높아지고 그에 대한 담론이 많아지고 있는 이때에 몸은 인간의 정신과 조화를 이루며 그 고유의 성격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하고, 정신은 육체를 통해서 공통본성(natura communis)으로 세계의 진리, 세계의 원리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한쪽으로 치우친 인식과 관찰은 항상 문제를 낳는다.










*위 이미지는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