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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강좌

종교 개념 대신 신앙과 축적적 전통

by anarchopists 2019. 11. 15.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5/27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신앙과 축적적 전통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는 종교라는 개념 대신에 ‘신앙’(faith)과 ‘축적적 전통’(cumulative tradition)으로 대체, 설명할 것을 제안한다. “신앙이란... 개인 인격체적 신앙을 뜻한다.” 반면에 “‘축적적 전통’이란 연구 대상이 되는 공동체의 과거 종교적 삶의 역사적 축적물을 구성하는 외적․객관적 자료의 전체 덩어리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사원, 경전, 신학적 체계, 무용 양식, 법적 혹은 그 밖의 사회제도, 관습, 도덕적 규범, 신화 등을 가리킨다. 즉, 한 인격체나 한 세대로부터 다른 인격체와 다른 세대로 전수되는 것으로서, 역사가가 관찰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Wilfred Cantwell Smith, 길희성 옮김, 종교의 의미와 목적, 분도출판사, 1991, 212쪽) 인간은 모두가 신 앞에 선 개별적 존재이지 어떤 특정한 종교에 속해 있으면서 그 종교의 교리적 삶을 추구하거나 그 종교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또한 개별 종교 공동체 속해 있다고 해서 그 종교적 삶을 강요하거나 종교를 통해서 삶을 지배해서도 안 된다. 신앙은 언제나 개인적이며 개별적이고 자유로운 것이다.


  더 나아가서 종교는 축적적 전통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종교는 다양한 인간의 삶의 요소들이 축적된 것이 모여서 이루어진 전통의 산물이다. 종교의 원시적 형태에서는 지금처럼 인간의 제도적 성격을 갖는다거나 체계적인 교리를 갖춘 것이 아니었다. 점차 종교 공동체가 성숙하고 발전함에 따라 그에 걸맞은 여러 제도, 관습, 신학 등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종교에 대한 소박한 태도나 단순한 접근은 금물이다. 오히려 그러한 형식들 이면의 인격체적인 전통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스미스가 다른 글에서 “종교의 참된 역사는 더욱 깊이 인격적인 것이어야 한다”(Wilfred Cantwell Smith, 김승혜 편역, “성사적 상징으로서의 종교”, 종교학의 이해, 분도출판사 1989, 346쪽)고 말한 것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종교가 세대에서 세대로 전달한 것은 제도나 교리, 그리고 신학 등의 축적적 전통 속에 나타난 인격체적 전달, 인격체적 만남이라는 것이다.

“축적적 전통은 과거 인간들의 신앙의 속된 결과이며 현재 인간들의 신앙의 속된 원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그것은 항상 변하며 항상 축적되며 항상 신선하다. 모든 종교적 인격체는 아마도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축적적 전통과의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장소이다.”(Wilfred Cantwell Smith, 길희성 옮김, 종교의 의미와 목적, 분도출판사, 1991, 248쪽)

  인간의 종교가 인격체적 만남과 전수라면, 그것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과정 중에 있는 종교, 생성 중에 있는 종교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종교는 항상 축적적 전통 이면의 인격체적 흐름들과 만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세대에서 종교는 또 다른 축적적 전통을 만들어 내고 후세대에게 전수하면서 새로운 종교로서 탈바꿈하려고 하는 것이다. 전통이라는 것은 자신의 세대의 모든 인격체들과 만나고 해석하며 살았던 산물의 것이다. 그렇게 형성된 것은 다시 다음 세대에서 형성될 준비를 갖추고 새로운 세대에게 의미를 전수하면서 종교적 생명력을 잃지 않게 된다.

“그리스도교적 신앙 일반, ‘불교 신앙’, ‘힌두교 신앙’, ‘유대교 신앙’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나의 신앙, 너의 신앙, 그리고 나의 신도(神道) 친구의 신앙과 나의 한 유대인 이웃의 신앙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모두 개인 인격체들이다... 내가 지녀야만 하는 이상적 신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보아야 하는 하느님이 존재하고, 내가 사랑해야만 하는 이웃이 존재할 뿐이다... 내가 추구해가는 이상이란 나 자신의 신앙의 이상이 아니라 하느님 자신이요 나의 이웃 자신이다.”(Wilfred Cantwell Smith, 길희성 옮김, 종교의 의미와 목적, 분도출판사, 1991, 254쪽)

그리스도교,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등 개별적인 종교적 신앙이 아니라 나와 너의 신앙만이 존재할 뿐이다.
초월적 존재를 신앙함이 있을 뿐인데, 우리는 종교라는 개념으로 구분하고 차별하면서 타자를 재단한다.-종교라는 용어가 갖는 부적합성을 문제 삼아야 한다. 그 용어는 갈등지향적인 가치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언어로 탈바꿈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정진홍, 정직한 인식과 열린 상상력, 청년사, 2010, 147쪽)-그러나 타자 일반은 모두 서로 이웃이다. 인격체로서 살아간다. 어쩌면 신앙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웃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다. 우리는 종교를 숭배하고 종교의 장치에 매여 살면서 구속된 존재가 아니라 이웃과 사랑을 나누며 하느님이라는 무한 존재를 섬겨야 한다.



*위 이미지는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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