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5/24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종교는 삶의 일부이다. 물론 종교인에게 있어서 종교란 삶의 전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종교가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종교와 삶은 구분하기가 어렵다. 종교는 분명히 인간의 삶의 문화적 양식으로서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정신적 가치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종교인에게 있어 종교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종교와 삶이 분리되지 않는다면, 삶은 종교적 삶이어야 한다는 데에 있다. 종교적 가치관, 종교적 윤리, 종교적 인생관 등 종교는 삶으로 들어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 종교를 개혁한 인물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종교 혹은 종교 제도를 쇄신하자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인간의 의식과 삶 자체를 고쳐보려고 하였다.
“종교개혁가란 종교를 개혁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이 처한 전체 환경에 대한 그들의 의식과 그들의 삶을 개혁하려고 하는 존재이며, 그러한 과정 속에서 물상화(reification)된 종교는 그와 같은 의식과 삶들에 온전성이 회복되도록 하기 위해 종종 파괴되어야만 했던 것이다.”(Wilfred Cantwell Smith, 길희성 옮김, 종교의 의미와 목적, 분도출판사, 1991, 178쪽) 인간의 삶이 종교적 삶이라고 할 때 삶을 지배하는 종교가 잘못되었다면 종교 자체를 완전히 뜯어 고칠 수밖에 없음을 잘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종교가 물화(物化) 혹은 사물화되어 버린다면 인간의 삶조차도 사물화가 된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그만큼 인간의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고, 그 삶이 바로 서기 위해서는 종교적 쇄신은 필연이라 하겠다.
그런데 여기에서 좀 더 숙고해야 할 것이 있다. 종교보다 삶이 보다 더 큰 개념이라는 점이다. 스미스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삶의 하나의 가능성, 삶의 일부분으로서 종교가 있다. 종교가 있고, 삶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이 있고 종교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종교는 종교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어떠한 종교적 삶을 제공하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삶의 일부분으로서의 종교적 삶은 삶을 구성하는 고유한 영역을 가지고 있다. “어떤 종교적 공동체의 삶에서든 중요한 것은 종교적 전통이 그 공동체의 사람들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가이다... 종교적 삶이 무엇보다도 삶의 한 종교라는 사실이다.”(Wilfred Cantwell Smith, 길희성 옮김, 종교의 의미와 목적, 분도출판사, 1991, 186쪽)
다시 말하면 종교는 인간의 삶 속에서 무한 존재의 마음이나 생각, 그리고 초월적 삶의 가치를 드러내줄 수 있어야 한다. 종교의 생명은 단지 종교가 가지고 있는 교리를 수호하고, 제도나 체제를 유지하는 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종교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어떠한 삶의 내용을 서비스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경우에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불교인의 경우 부처님의 자녀로서, 이슬람의 경우 알라의 자녀로서의 행위를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한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초자연적 맥락 속에서 영위되고 있다는 점...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이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하느님의 자녀로서 한다는 사실이며, 그가 무엇을 믿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그에게 믿음의 선물을 허락해 주었다는 사실이며, 그가 교회 속에서 그리스도와 인격체적 친구로서 산 교제를 하고 있으며 동료 신자들과 단지 인간적이거나 사회적인 관계 이상의 친교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가 사랑을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인하여 사랑한다는 것이 중요하며, 그가 죄를 짓는다는 사실이 아
니라 그가 죄를 지음으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아프게 하며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를 받는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Wilfred Cantwell Smith, 길희성 옮김, 종교의 의미와 목적, 분도출판사, 1991, 187쪽)
무엇보다도 종교가 중요하다고 말하지 말라. 중요한 것은 종교인의 종교적 삶에 있다. 종교가 종교에서 교리를 넘어 초월적 존재로 나아가듯이, 종교에서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믿는 바대로의 행위와 실천이자 초월자에 대한 종교인식과 종교 감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위 이미지는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종교 그 자체보다 종교적 삶이 더 중요하다!
“종교개혁가란 종교를 개혁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이 처한 전체 환경에 대한 그들의 의식과 그들의 삶을 개혁하려고 하는 존재이며, 그러한 과정 속에서 물상화(reification)된 종교는 그와 같은 의식과 삶들에 온전성이 회복되도록 하기 위해 종종 파괴되어야만 했던 것이다.”(Wilfred Cantwell Smith, 길희성 옮김, 종교의 의미와 목적, 분도출판사, 1991, 178쪽) 인간의 삶이 종교적 삶이라고 할 때 삶을 지배하는 종교가 잘못되었다면 종교 자체를 완전히 뜯어 고칠 수밖에 없음을 잘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종교가 물화(物化) 혹은 사물화되어 버린다면 인간의 삶조차도 사물화가 된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그만큼 인간의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고, 그 삶이 바로 서기 위해서는 종교적 쇄신은 필연이라 하겠다.
그런데 여기에서 좀 더 숙고해야 할 것이 있다. 종교보다 삶이 보다 더 큰 개념이라는 점이다. 스미스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삶의 하나의 가능성, 삶의 일부분으로서 종교가 있다. 종교가 있고, 삶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이 있고 종교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종교는 종교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어떠한 종교적 삶을 제공하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삶의 일부분으로서의 종교적 삶은 삶을 구성하는 고유한 영역을 가지고 있다. “어떤 종교적 공동체의 삶에서든 중요한 것은 종교적 전통이 그 공동체의 사람들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가이다... 종교적 삶이 무엇보다도 삶의 한 종교라는 사실이다.”(Wilfred Cantwell Smith, 길희성 옮김, 종교의 의미와 목적, 분도출판사, 1991, 186쪽)
다시 말하면 종교는 인간의 삶 속에서 무한 존재의 마음이나 생각, 그리고 초월적 삶의 가치를 드러내줄 수 있어야 한다. 종교의 생명은 단지 종교가 가지고 있는 교리를 수호하고, 제도나 체제를 유지하는 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종교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어떠한 삶의 내용을 서비스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경우에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불교인의 경우 부처님의 자녀로서, 이슬람의 경우 알라의 자녀로서의 행위를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한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초자연적 맥락 속에서 영위되고 있다는 점...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이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하느님의 자녀로서 한다는 사실이며, 그가 무엇을 믿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그에게 믿음의 선물을 허락해 주었다는 사실이며, 그가 교회 속에서 그리스도와 인격체적 친구로서 산 교제를 하고 있으며 동료 신자들과 단지 인간적이거나 사회적인 관계 이상의 친교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가 사랑을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인하여 사랑한다는 것이 중요하며, 그가 죄를 짓는다는 사실이 아
무엇보다도 종교가 중요하다고 말하지 말라. 중요한 것은 종교인의 종교적 삶에 있다. 종교가 종교에서 교리를 넘어 초월적 존재로 나아가듯이, 종교에서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믿는 바대로의 행위와 실천이자 초월자에 대한 종교인식과 종교 감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위 이미지는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
김대식 선생님은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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