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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박경희 작가 칼럼

문인들도 밥 먹고 삽시다-나를 임차하시오

by anarchopists 2019. 11. 25.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2/01 06:53]에 발행한 글입니다.


가난하지만, 영혼마저 가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문인도 기초생활 보장이 필요한 때다

“이번 달에 인세 백 만원 받았어요. 오늘 밥은 제가 쏩니다.”

일 주일에 한 번씩 만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나누고, QT(quiet time,敬虔時間, 또는 영적 교류의 시간)도 하고 가끔은 맛있는 밥도 먹는 팀에서 내가 한 말이다. 그러자 일행이 손뼉을 치며 축하해 주었다. 그들은 매 달 내가 받은 인세보다 적어도 서 너 배의 월급을 받는 커리어 우먼들이다. 한 분은 해외 방송국 지국장이고 한 분은 출판사의 임원이니 적어도 내 짐작이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일 년에 한 번, 그것도 정말 운이 좋아서 책을 천 부 더 찍은 것에 대한 인세를 놓고 생색을 내는 것이다. (물론 나는 그 외 다른 인세와 강의료도 있고 문예지에 작품 발표해서 받는 원고료도 있다. 그래봤자 내 나이 또래의 중견직 임원의 한 달 월급 정도 밖에 되지 않을 만큼의 원고료지만.) 백 만원 인세 받고 이토록 유난 법석을 떠는 것은 결코 자랑이 아니라, 아픔을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 내가 받은 인세 100만원은 남편이 준 1000만원보다 더 의미가 컸다. 내 글에 대한 노동의 대가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문인의 한 달 원고료가 18만원 정도라는 것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그 기사를 보고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고 했다. 문단의 현실은 그보다 훨씬 참담하다. 한 달에 18만원 정도의 원고료조차도 못 받는 문인도 부지기수다. 굳이 원고료를 제대로 받는 문인이 1%에 머문다는 통계 자료를 인용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내 주변의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훨씬 더 이해도가 빠를 것이므로.

물론 이름 석 자만 들으면 알 수 있는 유명 작가나 베스트 셀러 작가는 예외다. 하지만

다른 문인들이 가는 길은 거의 비슷하다. 문학이 구원이라 믿고 오랜 시간 습작 기간을 지나 낙타 바늘 구멍 만한 등단의 기회를 얻었을 때의 기쁨은 잠깐일 뿐이다. 작가가 되었어도 원고 청탁이 들어 오질 않는다. 행여 원고 청탁을 받았다 해도 단편 소설 한 편에 많이 받으면 50만원이다. 어느 문예지에서는 단편소설 한 편에 30만원에서 40만원을 준다 .(시나 수필 등은 원고료가 더욱 짜다) 아무리 인정을 받은 작가라 해도 일 년에 서 너 군데의 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하기는 쉽지 않다. 그나마 이 정도의 작가는 아주 성공한 작가 군단에 속한다. 대부분 단 한 편도 발표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한 해를 보내곤 한다. 한 마디로 무늬만 문인인 셈이다. 원고료 제로인 작가.

그럼에도 해마다 문인으로 등록되는 수는 늘어가고 있다. 발표 지면이 없어 전전긍긍하는 문인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우후죽순 문예지가 생긴다. 하지만 어째 수상할 때가 많다. 작품을 발표해도 원고료는 커녕, 되려 작품을 실어 주었으니 책을 사라고 은근히 강요를 하기도 한다. 그 수법은 등단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긴 하지만. 등단작이 실린 문예지를 삼 백부 이상 사 주지 않으면 등단을 취소하겠다고 엄포성 발언을 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그렇게 등단해서 작가라는 이름을 얻었어도 책을 내 주겠다는 출판사가 없다. 그간 간간히 발표한 작품도 있고, 적어도 작품집은 내야만 이 바닥에 얼굴 내밀고 다닐 수 있을 것 같아 떠밀듯이 책을 낸다. 이른바 자비출판이다. 그 비용이 적어도 500만원은 든다.

왜 그렇게 무리하면서까지 등단을 하고, 책을 내느냐고 물을 수 있다. 나도 이 세계를 몰랐을 때는 그렇게 물었다. 그러나 지금은 쉽게 그들을 향해 돌을 던질 수 없다.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모든 예술 행위가 그렇듯 솔직히 돈 생각하고 이 길로 들어 선 사람은 드물 것이다. 글을 쓰는 그 자체를 숙명처럼 여겼기에 모든 것을 감내하고라도 펜을 잡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도 삶은 살아내야 하는 것. 먹고 자고 결혼하고 자식 낳아 키우는 최소한의 삶 말이다. 화려한 인생은 꿈조차 꾸지 않는다. 그러나 그 꿈을 꾸는 것마저 허황된 것이라는 것을 알고 다른 일을 찾는 문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물론 정부 지원금이라는 것이 있긴 하다. 그 또한 ‘그들만의 잔치’다. 오랜 무명으로 인해 가난을 밥처럼 먹고 사는 문인들에게는 지원금은 하늘의 별만큼 멀고도 높은 곳에 있다. 그럼에도 펜을 놓을 수 없는 건, 아직도 문학에 대한 순수를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뻔뻔스럽지만, 작은 목소리라도 내고 싶다.

인세 백 만원 받았다는 날, 나를 부러워 하던 작가들을 기억해 달라고. 그들은 나보다 훨씬 글을 잘 쓸 뿐 아니라 치열하게 원고지와 싸우고 있는 작가들이다. 이제 더는 얼굴이 누렇게 떠 가면서도 자기 세계를 추구해 가는 작가들이 더는 생활고에 시달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개인의 능력 부족 탓일 수도 있다.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글을 쓰려 해도 생계가 유지되지 않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문인들을 위한 기초 생활 대책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이건 구걸이 아니라, 이 땅에서 순수 문학이 사라지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방안이다. 인생은 빵으로만 살 수는 없다. 영혼을 채우는 일 또한 빵 못지 않게 중요하다. 문인들은 보이지 않는 독자에게 영혼을 채워주는 등불이 되기 위해 나름 밤잠을 설치며 원고지와 씨름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걸 바라지는 않는다. 제대로 된 원고료만이라도 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갑자기 중국 후난성 작가협회의 황후이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전적으로 공감하는 건 아니지만, 오죽하면 이런 말을 했을까? 싶다.

“내가 정신적인 독립과 완전한 자유를 추구할 수 있는 상황에서라면 신체상의 부자유를 선택할 수 있다. 나를 임차한 여성에게는 섹스 행위 등을 포함한 모든 의무를 다할 것이다. ”(2012. 2.1, 박경희)

박경희 작가님은
2006년 한국프로듀서연합회 한국방송 라디오부문 작가상을 수상했다. 전에는 극동방송에서 "김혜자와 차 한잔을" 프로의 구성 작가로 18년 간 일하다 지금은 탈북대안학교 '하늘꿈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함석헌평화포럼의 필진이다.

작품으로는 《분홍벽돌집》(다른, 2009), 《이대로 감사합니다》(두란노, 2008), 《여자 나이 마흔으로 산다는 것은》(고려문화사, 2006), 《천국을 수놓은 작은 손수건》(평단문화사, 2004)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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