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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영호 교수 칼럼

[포럼정론] 대학은 사유재산이 아니다.

by anarchopists 2020. 1. 19.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5/03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대학은 사유재산이 아니다
-상지대학 비리재단의 복귀-


원주의 상지대학교가 다시 분규의 소용돌이로 휘말리고 있다. 그것은 교육부 산하 사학분쟁 조정위원회(사분위)가 구 재단 임원의 복귀의 길을 터놓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구재단은 각종 비리를 저질러 이사장(김문기)이 입건되어 유죄판결을 받고 관선이사 체제로 잘 운영되어오다가 정식 이사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다시 비뚤어지게 된 것이다.

이렇게 악순환이 재개된 것은 두 가지 요인이 계기가 되었다. 하나는 이전에 대법원에서 새 재단을 구성할 때 구재단의 의사를 반영하도록 구 재단 측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려 복귀의 물꼬를 터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명박 정권에 들어서 교육부 사분위 위원들을 보수(수구) 성향의 인사로 채운 일이다. 상지대 문제는 단순히 한 대학의 문제가 아니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것은 하나의 시작일 뿐이다. 전국 사학이 같은 위험에 직면해 있다. 특히 관선이사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대학들이 전전긍긍하는 상황이다. 그 가운데 조선대, 영남대, 덕성여대, 오산대 등이 들어있다. 이제 줄줄이 옛 주인에게 넘겨줄 운명에 처해 있다.

대학의 ‘주인’이란 말은 대학의 성격과 걸맞지 않는 말이다, 대학은, 나아가서 모든 공교육기관은 주인 즉 소유자가 있을 수 없다. 국민의 삼대 의무에 속한 병역, 납세, 교육은 사유화될 수 없다. 대학은 의무교육에 속하지 않지 않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제도적 모순일 뿐 대학도 국가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곳이므로 국가나 사회(지방정부)가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영국 정도를 빼고는) 유럽의 국가들 대부분과 캐나다, 호주 등은 사실상 정부와 지자체, 사회가 재정을 담당한다. 등록금은 없거나 (국민 소득에 비해서) 아주 작다. 한국 대학에서 해마다 전개되는 등록금 인상 저지투쟁은 이상한 나라의 우스운 이야기이다. 일부 국공립 대학을 제외하고 우리 정부는 대학에 재정지원을 안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정책적으로 책정한 지원금을 가끔 뿌려준다고는 하나 그 액수는 대학 예산의 극히 일부에 해당한다.

대학교육에서 사립이 차지하는 비중은 85%를 넘나든다. (중고등학교도 50% 내외이다.) 세계에 유례가 없는 일이다. 그 재정은 다 어디서 오나. 재단 전입금이 책정 되어있다고는 하나 그것은 숫자의 장난일 뿐이다. 전적으로 학생들(실제로는 부모들)이 부담하는 셈이다. 일화 하나를 이야기해보자. 내가 학교에 부임하고 얼마 안 돼서 학생들과 등산을 간 적이 있었다. 하산하여 저녁을 먹을 때 내가 낸다고 하니까 어떤 학생이 미안해하는 말을 했다. 그러니까  딴 학생이 당당하게 "그건 다 우리 호주머니에서 나온 거야" 하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랐다. 그 학생이 잘못 이해한 부분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게 만든 현실을 알고 학생들에게 동정이 갔다. 그래서 나는 봉직하는 동안 내내 학생들과 회식할 때나 불시로 집으로 찾아왔을 때도 대접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하기 싫은 주례 요청도 기꺼이 응했다.

국립대학이라고 등록금 액수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니까 국립조차 국가가 전적으로 지원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면서 대학에 대해서 입학제도부터 학과편제, 커리큘럼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간섭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사학을 사유재산처럼 취급하면서 간섭하는 것은 이 정부가 금과옥조처럼 받드는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와도 어긋나는 정책이 아닌가. 이런 모순 속에서 희생당하는 것은 학생들과 학부모, 결국 (부유층을 제외한) 국민 모두이다. 교수들도 희생자다. 국가사회가 사용할 인재양성 과정에 져야할 책임을 회피하고 나서는 졸업하면 일자리도 마련해주지 않는다. 비정하고 무책임한 정부다.

선진국 대학은 어떤가. 유럽은 말할 것도 없고 자본주의의 첨병 미국의 경우에도 등록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작다. 가장 비싼 사립에 속하는 하버드의 경우 등록금 비중은 전체 예산의 25%를 밑돈다. 자격 있는 학생이 돈이 없어서 학교를 못 다닐 수 없다는 원칙을 갖고 학부모의 수입에 따라서 부족한 액수만큼 보조금을 지급한다. 성적보다 학생의 필요를 기초로 보조한다. 미국에서도 사립은 한 개인의 소유물이 될 수 없다. 개인 아닌 공공 교육재단이 운영한다. 개인이 기부할 수 있지만 기부자나 창립자로 기록될 뿐 자신이나 후손이 운영에 관여하지 않는다. 모든 지표에서 가장 바람직한 국가모델이 된 핀란드가 무상교육이 세계1등의 비결이라고 말한다. 우리 사회는 이제 자정능력을 상실한 국가가 되었다. 핀란드 같은 선진국을 벤취마킹 하는 길 밖에 다른 방법이 없을지 모른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왜 대학을 소유하려고들 하는가. 이유는 뻔하다. 경제적 소득원에다 이사장이나 총장, 이사 등 특권 까지 누릴 수 있다. 재산투자로 삼아서 대대로 물려줄 수 있다. 실제로 아들이나 딸이 이사장이나 총장을 하는 대학이 많다. 게다가 상지대, 조선대, 게명대, 영남대, 강남대처럼 스스로 창설자라고 내세우지만 그 역사를 캐 보면, 원래 다른 사람/집단의 소유였거나 공공성을 띤 자금을 사유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학이 전 정권에서 고심 끝에 정한 삼불정책을 뒤엎고, 언젠가는 그 한 가지인 기여입학제를 도입하려고 획책하고 있다. 국립대 총장 출신인 국무총리까지 그걸 들먹거리고 있는 현실이다. 검찰 스폰서 사건에서 보듯이 사회 곳곳이 썩어가고 있다. 부패와 양극화로 나라가 가라앉고 있다. 가라앉은 것은 천안함 만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일 뿐이다. 나라가 두 갈래, 세 갈래로, 갈래갈래 쪼개져서 가라앉고 있다. 사회 혁명, 씨알혁명이 필요하다.

그런 검사, 그런 정치인, 대통령, (중앙대 소유주나 삼성 같은) 재벌을 내놓지 않기 위해서라도 무엇보다 당장 교육혁명이 필요하다. 나라 전체가 대학입학을 위해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사회, 참 부끄러운 나라다. 아이들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죽어가고 있다. 사교육을 공교육으로 수렴해야 한다. 이순신이나 김구 처럼 함석헌도 평생 공인으로 살면서 대공무사(大公無私), 선공후사(先公後私)를 강조했다. 공인정신은 올바른 공교육 속에서 길러진다.

교육혁명은 학교의 사유화를 공유화로 바꾸는 데서 출발한다. 학교는 사유재산이 아니다. 소유자가 있는 사학을 지자체나 사회단체에서 공유하도록 바꾸는 중장기 계획이 세워져야 한다. (다음 총선이나 대선에서 중도, 진보 정당에서 공약으로 내세울 필요가 있다.) 문제가 된 비리사학들이 관선이사 체제로 바뀐 이후에 재정적으로나 교육환경에서 하나같이 크게 발전되어왔다. 조선대, 영남대, 상지대가 대표적이다. 이제 그 상태를 후퇴시키고 되돌려놓자는 것인가. 우리가 가만히 바라볼 수만은 없는 중차대한 사회적 문제다.(김영호)

김영호 선생님은
인문학의 몇 분야를 방황하면서 가로질러 수학, 연구(스톡홀름대, 하버드대 펠로우), 강사(연세대 숭실대), 교수(인하대, 현재 명예교수)로 일했다. 전공은 종교철학(원효사상)으로, 그의 세계관의 큰 틀(패러다임)은 다원주의다. 다원주의를 통해 민족분단. 사회 및 지역 갈등, 종교간 갈등 등 한국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극복하기위한 방법론을 모색하고 있다. 그의 사상적 준거는 함석헌과 크리슈나무르티이다. 그 동안, 해외 민주화운동의 도구인 민중신문』(캐나다) 창간(1079)에 관여,『씨알의 소리』편집위원, 함석헌기념사업회 씨알사상연구원장을 맡기도 했다. 지금은 함석헌평화포럼 공동대표와 함석헌학회 학회장직을 맡고 있다.(2015년 12월 현재)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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