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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영호 교수 칼럼

[말씀과 명상] 민족통일의 길, 함석헌의 말씀 속에 있다.

by anarchopists 2020. 1. 15.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7/02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말씀과 명상]


혁명은 민족적 성격의 개조에 있다.

〈함석헌 말씀〉
“그것[계급]이 그의 인간으로서의 운명을 결정하는 마지막 조건은 아니다. 지배, 피지배, 착취, 피착취의 관계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들이 같은 한국 사람, 영국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 데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우리가 2천년 전부터 유교, 불교를 받아들였어도 그것이 우리의 한국 사람인 것을 변동시키지 못했다. 한사군이 우리나라 중부에 들어와 백여 년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민족인 데 변함이 없었다. 우리를 몇천 년 파란에도 불구하고 하나라는 의식을 가지고 뚫고 내려오게 하는 이 성격적인 그것은 무엇인가? 그 무엇을 민족적 성격이라, 민족적 자아라 하는 것이요, 그것이 역사의 주체다. 그러므로 혁명의 주체도 당연히 그것이다. 역사상의 모든 죄악은 결국 민족적 성격의 결함이다. 그러므로 혁명은 민족적 성격의 개조에까지 미쳐야 한다
.”(함석헌저작집2권 46쪽)

〈오늘의 명상〉
앞 ‘말씀’에서 민족 문제를 꺼냈으니 내친김에 이 중요한 주제를 더 이야기해보자.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도 우리가 아직도 민족공동체에 목을 매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면 왜 그러는가. 함석헌도 어쩔 수 없는 양면성을 보여주었다. 두 가지 모습은 이상과 현실로 공존한다. 대답은 간단하다. 역사요 현실이기 때문이다. 두 가지는 함석헌이 중시한 요소이다. 우리는 역사와 현실(사회)이 가로세로 마주치는 십자가 위에 서있는 존재들이다. (월드 컵 응원 때 표출된 집단적인 에너지와 에스프리도 달리 설명하기 힘들다.)

위 글은 계급사관을 비판하는 앞 문단을 연이은 문단의 뒤 부분이다. 함석헌은 민족의 원초성과 민족문화의 독특성을 전제한다. 그것을 ‘한’으로 말하기도 한다. 종교에서만 봐도 그렇다. 불교나 유교나 다 외래 종교이다. 종교라면 어떤 다른 요인이나 제도보다 인간성을 변질시킬 수 있는 도구라 할 만한데, 한국인 됨(민족정체성)을 바꾸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불교와 유교는 4세기에야 고구려와 한반도에 도래했다. 그때까지는 삼국은 나라로서 기반을 다지고 민족의 황금시대를 열어가고 있었다. 그것이 나중에 불교를 통해서 일부 표출되었을 뿐이다. 그 바탕에는 나름의 고유한 전통이 받히고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외래문화와 종교가 없어도 가능했다. 학자들은 한국인에게 고유한 종교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것을 ‘신교’(神敎)라 부르거나 무교(샤머니즘)라고 한다. 무속이나 사이비 종교라 깔보는 것은 일제의 통치전략에서 나온 역사왜곡을 그대로 수용한 데 연유한다.

한국불교에서 가장 탁월한 승려로 꼽히는 원효가 인도불교, 중국불교와는 다른 차원의 불교를 내세운 것도 정신의 바탕에 뭔가 깊은 고유한 정신의 유전자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다만 불교에 의탁해서 표출했을 뿐이다. 이광수의 소설(원효대사)에서도 그것을 암시한 대목이 있다. 의천, 최치원, 김시습 같은 다른 걸출한 사상가들도 무언가 외래종교 이전의 정신적 수원지, 천지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고 봐야한다. 하물며 기독교는 어떠랴. 불과 2백년도 안된 외래종교이다. 수적으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한국교회들의 지도자들은 그 카리스마를 일종의 무교적인 에너지로 볼 수 있다. 그것은 이 시대의 대표적인 신학자 하비 콕스 같은 학자도 지적한 사실이다.

함석헌 자신의 종교도 기독교라 하지만 그것은 이스라엘에서 연원하여 그리스문화를 거쳐 서구에서 제조한 수입된 기독교는 아니다. 그의 하느님은 여호와 하나님과 다르다. “우주를 지으신 어느 분, 보통 우리말로 하느님이라 하는데, 기독교 도래 전부터 〔있어 오던〕하느님이에요. 기독교 사람이 만들어낸 줄 알지 마시오.”(『끝나지 않은 강연』226)

한 신학자는 함석헌이 결국 다시 (기독교로) ‘귀향’했다고 해석하지만, 꼭 그렇다고 할 수 없다. 그가 인생의 말미에 “나의 주님”으로 (강요된 듯한) 고백한 그 예수조차, 동양사람, 한국사람으로서 그가 조합하여 다시 구성한 초상이다. 그것은 마치 석가상이나 예수상이 문화와 지역에 따라 모습이 다른 것과 같다. 알고 보면 개인마다 다른 석가나 예수의 심상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하느님을 그려보라면 모두 다를 것처럼 개인의 신관도 구구각각이다. 함석헌의 하느님은 서구에서 형성된 제도의 틀에 갇힌 완성된 신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정신진화와 더불어 들어나는 미완성의 역동적인 신이다.


귀향을 말한다면 함석헌이 기독교로는 구태여 귀향할 필요가 없었다. 기독교는 그가 신앙으로 채택한 이후 떠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청년시대에 빠졌던 무교회 신앙이나 나중에 몸을 의탁한 퀘이커신앙도 탈향으로 볼 수 없다. 함석헌이 귀향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외래종교보다는 본래 그가 태어난 정신의 본향일 것이다. 어찌 보면 함석헌은, 그리고 우리 모두도, 역사 속에서 일실된 고구려 정신, 더 나아가 그 이전부터 형성되어온 민족의 얼과 씨알의 담지자인지도 모른다.

지금의 끝나지 않은 남북 대립과 동서의 갈등도 삼국 대립의 연장으로 보인다. 그 밖에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진정한 삼국통일이 이제 다시 와야 한다. 그 통합의 길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우리의 정신을 대표한 사상가들, 그리고 함석헌이 가리킨 대로 ‘한’이 표상하는 민족정신의 백두대간이 아닐까. 여태까지 밖에서만 찾아 왔던 걸음을 멈추고, 잃어버린 민족의 얼을 이제는 안으로 찾아 나서야할 때이다. 왜 통일, 통합을, 어떤 의미로든, 이루어야 하는가, 함석헌의 말씀 속에 철학적, 종교적 근거가 제시되어있다. (2010.6.30, 김영호)

김영호 선생님은
인문학의 몇 분야를 방황하면서 가로질러 수학, 연구(스톡홀름대, 하버드대 펠로우), 강사(연세대 숭실대), 교수(인하대, 현재 명예교수)로 일했다. 전공은 종교철학(원효사상)으로, 그의 세계관의 큰 틀(패러다임)은 다원주의다. 다원주의를 통해 민족분단. 사회 및 지역 갈등, 종교간 갈등 등 한국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극복하기위한 방법론을 모색하고 있다. 그의 사상적 준거는 함석헌과 크리슈나무르티이다. 그 동안, 해외 민주화운동의 도구인 민중신문』(캐나다) 창간(1079)에 관여,『씨알의 소리』편집위원, 함석헌기념사업회 씨알사상연구원장을 맡기도 했다. 지금은 함석헌평화포럼 공동대표와 함석헌학회 학회장직을 맡고 있다.(2015년 12월 현재)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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