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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주명철 신부 칼럼

팽목항에서 광화문까지-‘길’은 결코 잊지 않는다!

by anarchopists 2019. 10. 27.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4/10/22 06:00]에 발행한 글입니다.


팽목항에서 광화문까지-‘길’은 결코 잊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특별법이 어찌어찌 통과되었지만 이 법은 유가족들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괜히 시간만 오래 끈 여론몰이용 꼼수로 보인다.
그토록 처참했던 사고에 대한 반성은 전혀 없어 보이고 무엇이 두려운지 자꾸 숨기려고 할 뿐만 아니라 덮고자 한다는 인상을 지을 수 없다. 아직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도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이제 좀 그만하자, 잊자 하는 목소리가 높고, 사실로 규명되지 않은 거짓된 내용들이 SNS를 통해 퍼져서 유가족들을 더욱 힘들게 만들고 있다. 본질이 아닌 지엽적인 문제들을 과장하여 유가족들을 공격하는 정부에 오히려 언론은 손발이 되어 하수 노릇하고 있으니 세월호 참사로 자녀들을 잃은 커다란 아픔을 겪은 이들을 두 번 죽이는 가슴 아픈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한 번 묻고 싶다.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이제 그만하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의 소중한 자녀가 원인 모를 사고로 죽임을 당했다면, 누군가 자꾸 사건을 잊게 하기 위해서 은폐시키려고 한다면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아마 우리가 사고의 당사자라면 그 무엇으로도 위안 받을 수 없을 것이요, 어떤 보상도 소용없다 할 것이다. 단지 우리 자녀의 죽음과 관련된 원인 및 책임을 분명하게 밝혀 억울한 죽음을 달래고 싶을 뿐이리라. 또한 또 다른 참사가 일어나지 않는 안전한 나라를 만들고자 노력할 뿐이리라. 더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벌써 반년이 가까워 오지만 아직까지 해결된 것이 하나 없고, 깜깜한 바다에 있는 10명의
실종자는 여전히 가족의 품을 기다리고 있다. 허나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라고는 전혀 없는 정부와 국회의 모습은 답답하기 짝이 없고, 오히려 언론을 이용하여 잊혀서 가만히 있게 만들고자 할 의지만으로 우리를 분노케 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매주 여서동 수협광장에서 올바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을 받아오다 성공회 사제들과 같이 굳은 의지로 일어났다. 팽목항에서 광화문까지 557km에 이르는 길을 순례하며 ‘미안합니다, 기억하겠습니다. 변하겠습니다’하고 외치기로 한 것이다. 이는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로마 12:15)는 성서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한 한 방법이요, ‘가만히 있지 않겠다’, ‘잊지 않겠다’는 분노와 항거의 외침인 것이다.


이런 마음으로 지난 9월 29일 팽목항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 304명을 일일이 호명하며 눈물로 감사성찬례를 드렸다. 팽목항의 거센 바람과 파도는 처절한 굉음을 내며 우리와 함께 울부짖었다. 진도 체육관에서 유가족들을 만나면서도, 진도대교를 통과하여 해남, 나주, 광주일대를 지나면서도, 발걸음을 내딛는 곳곳마다 계속 희생자들을 부르며 울며 걷는 여정이었다. 557km를 완주하는 분들은 4명이지만 곳곳에서 성공회 사제들과 교인들이 합류하여 힘을 실어 주었고, 지나가는 시민들도 함께 호응하며 기도해 주고 있다. 지치고 힘든 여정이지만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며 걷는 생명평화 도보순례’는 아픔을 겪는 이들과 함께 하는 마음으로, 어둠을 이기는 희망의 빛이 되고자 한 걸음 또 한 걸음 지금도 걸어가고 있다.


생명을 경시하고 잘못된 폭력이 넘쳐나는 세상, 물적 가치가 가장 우선시되고 강자가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세상, 구조적인 모순 덩어리인 세상에서 더 이상 살아가기 힘들다. 때로는 조용히 침묵하고, 때로는 기도하며 걸으면서 지금 망각하고 있는 것들, 지금 잊으면 안 되는 것들, 지금 가장 소중한 것들을 기억하고, 지금 잘못된 것들을 바꾸겠다고 처절하게 몸부림쳐 본다.
부르튼 발, 갈라진 입술, 고단한 다리 때문에 힘들지만 하루 끝의 휴식을 통해 이겨낸다. 그 힘으로 상식이 통하는 사회, 생명평화의 사회를 꿈꾸며, 모든 시민들이 함께 동참하여 한 목소리로 불의를 심판하는 나라를 상상해본다. 우리는 단원고를 지나 광화문에 이르기까지, 아픔이 해결되는 그날까지, 아니 그 이후에도 우리 앞에 놓인 이 험난한 길을 모든 이들과 함께 멈추지 않고 걸어갈 것이다.


* 위 이미지는 경향신문, 인디고고 홈페이지에서 퍼온 것임.


주명철 어거스틴 신부
주명철 어거스틴 신부는 대한성공회 대전교구 여수 성필립보성당 주임사제로 있다. 성공회대학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후 같은 대학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석사학위(Th.M.)를 받았다. 본당사목뿐만 아니라 시국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참여, 성공회의 선교 불모지인 여수지역에서 활발한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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