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함석헌평화연구소/주명철 신부 칼럼

촛불로 드리는 기도

by anarchopists 2019. 10. 30.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4/05/28 06:00]에 발행한 글입니다.


촛불로 드리는 기도



나라 곳곳에서 작은 불빛들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세월호 침몰로 안타깝게 희생된 자들을 위로하고 다시는 이런 아픔이 반복되지 않기 위하여 너도나도 촛불을 들고 있다.
전국적으로 150군데가 넘는 장소에서, 서너 명부터 시작하여 수만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자발적 참여자들이 모여들고 있다. 여수에서도 시청과 송원백화점 그리고 이순신 광장에서 오후 7시가 되면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그렇게 같은 마음으로 매일 촛불이 밝히고 있다. 필자도 그동안 세월호 참사의 아픔으로 심한 무력감에 빠져 글도 못쓰고, 말도 아끼며 힘겨워했지만 함께 울고자 하는 마음으로 매일 촛불을 손에 들고 거리로 나간 지도 벌써 한 달이 가까워오고 있다.


우리는 왜 촛불을 들어야 하는가? 어떤 이들은 잊게 만들려고 하는 자와 잊지 않으려는 자들의 싸움이라고 묘사했고, 또 다른 이들은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표현이라고도 했다. 필자에게는 조용히 추모의 촛불을 들며 함께 우는 시간이 기도이고 하늘에 드리는 하소연이다. 누군가에게는 촛불이 위협이 된다고 하지만 추모의 촛불도, 잊지 않으려는 몸부림도 그저 자기 몸을 희생하며 어두움을 조용히 밝혀주는 작은 평화의 빛일 뿐이다.


수요일에는 교회에서 드리던 저녁기도를 교인들과 함께 나와 촛불기도로 드린다. 때로는 침묵하며 애통해하고, 때로는 구슬픈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흘린다. 삼삼오오 모여 함께 울다가 답답한 마음을 억제하지 못해 촛불을 보며 깊이 탄식하기도 한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야 했던 부모님의 마음을 생각하며 어버이날 시청 앞에서 함께 울었고, 눈앞에서 제자들을 잃어야 했던 선생님의 아픔을 생각하며 스승의 날 이순신 광장에서 한마음으로 울부짖었다. 여수에서만 5월 8일에 150명, 5월 15일에 300명이 모여 촛불로 기도를 드렸다. 비록 그 자리에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모든 시민들이 한마음으로 있는 곳에서 마음의 촛불을 들고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그렇게 눈물로 추모하였고, 울고 또 울었지만 아직도 눈물이 많이 남아있다. 우리에게는 계속 붙여야 할 촛불이, 하늘로 올려야 할 기도들이 너무나 많다. 자식을 잃은 유가족들은 평생 그 아픔을 지니고 살아야만 한다. 한 달이 지났다고, 일 년이 지난다고 어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시간이 지나면 잊고 마는 우를 다시금 반복할 수 없다. 제2, 제3의 세월호를 만들 수 있는 잔재들을 그냥 남겨둔다면 우리는 언젠가 또 다른 아픔을 겪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때는 내가 그 아픔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무엇부터 바꿔야 할지 깨닫지 못할 정도로 모든 것이 잘못된 세상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그저 조용히 촛불을 들고 기도한다. 탐욕스러운 권력은, 권력에 결탁한 더러운 자본은, 인간의 끝없는 이기심은 아프지만 소중한 교훈을 그저 지우려고만 한다. 잊지 않겠습니다! 시민들은 작은 힘이지만 조용히 그리고 평화롭게 외치고 있다. 촛불로 드리는 기도이다. 위협을 받을 필요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한마음으로 드리는 촛불의 기도, 우리들을 일깨우는 그 가르침에 감사하며 고통스러운 아픔을 성찰하고 뼈저린 잘못을 하나씩 고쳐서 다시는 그런 과오를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후손들에게 똑같은 아픔을 겪지 않도록 더 좋은 나라를 물려주어야 한다. 필자는 이런 마음으로 오늘도 조용히 촛불을 들어본다. 하나의 촛불이 모여 희망의 들불이 되기를. 누군가의 말이 기억난다.

“우리가 침묵하면 세월호는 계속됩니다!”


*위 이미지는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


주명철 어거스틴 신부
주명철 어거스틴 신부는 대한성공회 대전교구 여수 성필립보성당 주임사제로 있다. 성공회대학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후 같은 대학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석사학위(Th.M.)를 받았다. 본당사목뿐만 아니라 시국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참여, 성공회의 선교 불모지인 여수지역에서 활발한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