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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주명철 신부 칼럼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by anarchopists 2019. 10. 28.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4/07/03 06:00]에 발행한 글입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아내가 일을 한 지도 벌써 4개월이 되었다. 24개월 된 아이와만 시간을 보내느라 고생인 아내는 전에 하던 일을 이어 하고 가사에도 보탬이 되기 위해 일을 시작했다.
아이를 보느라 고생했는데 돈까지 벌어오라니 참 몰인정한 남편이지만 집에만 있는 아내에게 다른 사람을 만나게 하고, 경험도 쌓게 하기 위한 배려라고 내심 생각했다. 아내를 일터로 보내니 집에 있는 내가 자연스레 전업주부가 되었다. 지금은 전보다 아이를 더 잘 보게 되었지만 돌아보면 참 쉽지 않은 시간들이었다. 누구보다 애를 잘 볼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겪어보니 아내 없이 혼자 애를 키우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깨달았고, 그동안 그녀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하며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어느 정도 아내를 공감하고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내의 입장에 서니 그동안 몰랐던 그녀의 많은 고민과 아픔들 그리고 나에 대한 사랑과 배려의 마음을 알게 되었고 감사할 수 있었다. 전에는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일들도 아내의 처지에서 보니 내 모습이 얼마나 편협하고 이기적이었는지 돌아보며 반성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주장만이 옳다고 생각하고 말하며,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 기울여 듣고자 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처지에 서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있다. 상대편과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라는 사자성어로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보고 이해하라는 뜻이다. 상대방과 처지를 바꾸어 생각할 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그러지 못했을 때 오해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상대방의 입장을 잘 헤아리지 못했다면 즉각적인 비난이나 분쟁을 피해야 잘못을 면할 수 있다. 판단유보이다.


지난 번 교회 월례회의에서 입장이 달라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기에 서로 감정이 상하지 않게 자신의 주장이 아닌 다른 사람의 주장을 대신 하는 연습을 하였다. 본래 의도한 방향대로 잘 되진 않았지만 그렇게 주장을 굽히지 못하던 사람들이 상대방의 입장에서 의견을 개진하니 참 재미있었다. 잠시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으며, 내 입장만을 내세울 때 몰랐던 잘못을 발견하고 의견차를 좁혀 나갈 수 있기에 도움이 되었다.


우리는 때때로 내 생각이 전부인양, 옳은 양 착각을 하기도 한다. 물론 다른 사람이 틀린 말을 할 수 있고 내 의견이 전적으로 옳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상대방의 의견을 그 사람의 입장에서 존중하고 들을 수 있다면 어느 정도 긴장이 해결되고, 잘 풀리지 않던 문제의 실마리가 생길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한 사람을 세워주고 사랑으로 감싸줄 수 있다. 이는 결국 그 사람을 이해시킬 수 있는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열린 사람이란 말로는 어떤 엄청난 일도 포용할 수 있다고 큰 소리를 치지만 행동은 그러지 못하면서 오히려 상대방을 마음이 좁다 판단하고 비난하는 자가 아니라 옳다고 생각하는 내 의견을 잠시 내려놓고 그 사람의 입장에 서고, 듣고 이해하며 함께 가고자 노력하는 자이다.


분열과 대립, 서로에 대한 판단과 비난으로 신경이 날카로워 어느 한 쪽에 서기를 강요하는 우리 사회의 아픔을 치료하고 해결할 수 있는 힘은 많은 부분 이렇게 상대방의 입장에 서고자 할 때, 다른 이들의 처지를 이해하고자 할 때 나온다. 필자는 우리 사회에 이런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를,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감싸주며 대화할 수 있기를, 갈라진 이 땅을 치유하는 희망의 빛이 비추기를 간절히 기도드린다. 또한 나부터 먼저 상대방의 입장에 서기 위한 노력을 계속 하고자 마음을 다잡아본다.


*위 이미지는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


주명철 어거스틴 신부
주명철 어거스틴 신부는 대한성공회 대전교구 여수 성필립보성당 주임사제로 있다. 성공회대학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후 같은 대학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석사학위(Th.M.)를 받았다. 본당사목뿐만 아니라 시국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참여, 성공회의 선교 불모지인 여수지역에서 활발한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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