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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주명철 신부 칼럼

“천천히 함께 갑시다!”

by anarchopists 2019. 10. 31.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4/04/14 02:03]에 발행한 글입니다.


“천천히 함께 갑시다!”



아프리카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빨리 가려면 혼자 하고, 멀리 가려면 함께 하라.”

지난 번 우리 교인들과 함께 거리를 행진할 기회가 있었는데 기타 반주에 맞춰 걸어가려니 반주자의 걸음속도를 따라 천천히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계획한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서 교인들에게 이렇게 얘기하였다. “비록 천천히 왔지만 결국은 목적지에 다다랐습니다. 우리가 가는 길이 비록 더디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이렇게 손을 잡고 함께 갈 수 있다면 필경 우리의 목적지까지 무사히 도달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주위의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고 눈앞의 이익을 위해 이기적으로 살고자 하는 욕심이 가득한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더 빨리 가기 위해 나보다 느리게 가는 동료를 나 몰라라 하다못해 짓밟고,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달려가야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다는 큰 착각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경쟁사회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는 사이 그보다 더 소중한 것들을 하나둘 자꾸 잃어간다.


중요한 마라톤에서 페이스 조절도 못 하고 이내 지쳐버려 이제는 어디를 달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가쁜 숨을 헉헉 몰아쉬며 하나둘 주저앉고 있다. 잠깐 쉬어가며 차 한 잔 할 수 있는 여유,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고 함께 얘기할 수 있는 여유조차도 없다.


필자도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며 회의를 하고, 작은 의견까지 귀담아 듣고 반영하고자 노력하다보니 많이 힘들고 진행이 더딘 경험을 종종 하곤 한다. 물론 사안에 따라 빠른 결정이 필요한 경우도 있겠지만 느리더라도 함께 하는 과정들이 더 소중하고 뒤탈도 없는 것을 본다. 또한 그 과정을 통해 서로를 더 잘 알아가고 나만 옳다는 독선과 고집도 내려놓게 된다.


분명히 우리의 머리로 생각하기에는 직진해야 더 빨리 갈 것 같지만 때로는 돌아가는 길이 필요할 때가 있다. 눈앞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길이 비록 늦게 가더라도 소외되고 낙오하는 사람들을 격려하며, 그들의 손과 손을 마주 잡고 함께 갈 수 있다면 그 길은 희망의 길, 행복의 길, 진정한 지름길이 될 것이다.



아무리 빨리 달려 일등을 한다고 해도 그 자리에 함께 하는 동료들이 없다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세상에서 부와 명예를 다 가졌다고 해도 내 몸이 다 망가져 버렸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니 한치 앞도 모를 이 세상에서 우리는 좀 더 겸손해져야 한다.


주위를 둘러보고 소외된 자들을 찾아 그들과 함께 웃을 수 있다면 우리가 가는 이 길이 더 행복하고, 더 가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길을 가되 천천히 그리고 함께 달려가자. 필자는 확신한다. 더불어 가는 길은 결단코 외롭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위 이미지는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


주명철 어거스틴 신부
주명철 어거스틴 신부는 대한성공회 대전교구 여수 성필립보성당 주임사제로 있다. 성공회대학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후 같은 대학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석사학위(Th.M.)를 받았다. 본당사목뿐만 아니라 시국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참여, 성공회의 선교 불모지인 여수지역에서 활발한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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