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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박병상 박사 환경칼럼

차례상, 조상들이 고기를 먹을까.

by anarchopists 2019. 12. 29.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1/31 07:16]에 발행한 글입니다.


차례상에 어떤 고기를 올려놓을까

작년 말 50만 마리의 소와 돼지를 살처분하게 만든 구제역은 설을 눈앞에 둔 1월 31일 현재 300만 마리를 땅 속에 매몰할 태세다. 한달 만에 250만 마리의 소와 돼지가 구제역에 감염된 축사와 가까운 데 있었다는 이유로 추가로 죽어야 했다. 그래도 대부분의 가정은 차례상에 쇠고기를 올릴 것이다. 모처럼 모인 친척과 삼겹살도 구울 것이다. 전국에 사육하는 소의 95퍼센트와 돼지의 85퍼센트는 아직 안전지대에 있어 수급에 큰 문제는 없다고 한다.

우리의 한 시인은 소를 ‘숨 쉬는 햄버거’라 했는데 마이클 폴란이라는 미국의 작가는 옥수수라고 했다. 전적으로 옥수수 사료로 사육했기 때문인데, 나아가 그는 미국인을 ‘움직이는 콘칩’이라고 했다. 옥수수 사료에서 변형된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칠면조고기 들을 배불리 먹는 미국인의 몸에 옥수수가 갖는 탄소원소가 유난히 많다는 뜻으로, 그 정도는 옥수수가 주식인 멕시코 인을 가볍게 넘어선다고 한다. 그런 옥수수는 석유 없이 생산할 수 없다. 옥수수에서 얻는 칼로리의 10배 이상의 석유 에너지를 투입해야 한다. 구제역과 조류독감으로 650만 마리의 가축들을 죽인 우리는 사료용 옥수수를 미국에서 막대하게 수입한다.

계란 하나 올려놓은 도시락을 부러워하던 시절, 우리는 고기를 차례상이나 식구의 생일상에서 맛보아야 했지만 역대 어느 황재 부럽지 않은 밥상을 받는 요즘 고기는 도처에 넘친다. 구이와 볶음, 찌개와 국은 물론이고 이제 나물에도 고기를 넣으려 한다. 미국인처럼 먹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상에 올린 그 고기들 한결같이 옥수수고 석유다. 그런 고기를 조상은 맛본 적 없다. 아무리 상에 올린 음식을 식구들이 먹는다 해도, 지역의 오랜 음식문화를 반영하는 차례상에 조상이 구경조차 하지 않은 고기를 올려놓는 건 결례가 아닐까.

건강보험공단 정책연구원은 최근 7년 동안 치매환자가 4.5배 증가했다고 지난 1월 30일에 발표했다. 2002년 4만8천명에서 2009년 21만6천명으로 증가해 치료비도 11배나 급증했다는 건데, 고령화와 적극적인 건강진단에 원인이 있다고 덧붙였다. 한데 의문이 남는다. 건강검진이 요즘처럼 보편화되기 이전에 치매가 없지 않았을 것이다. 굳이 병원에 입원 치료하지 않거나 모르고 지나갔을 수 있다. 연구원은 보험료를 청구한 병원기록을 조사해 기록된 환자가 늘었다고 해석일 텐데, 그렇다고 5년 만에 4.5배가 늘어날 수 있는 겐가. 증세가 가벼운 환자까지 포함하게 된 결과라고 분석한다지만 증가세가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65세 이후 치매에 걸릴 확률이 5년마다 2배로 증가하고 85세가 넘은 노인의 30퍼센트가 치매라지만 그렇다고 5년 만에 급작스레 늘어난 사실은 연장되는 평균수명 이외의 요인이 있을 것 같다. 2009년의 7년 뒤인 2015년에 조사했을 때 다시 4.5배 늘어났다는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는데, 콤 켈러허라는 미국 의사는 소에 소 도축 부산물을 먹인 이후 미국에서 치매로 사망한 환자가 8900퍼센트 늘어났다고 주장했다. 24년 동안 89배 늘어난 미국의 치매 추세는 의미심장하다. 치매예방을 위해 독서와 편지쓰기와 같은 대뇌운동을 권하는 전문가는 걷기와 수영과 같은 유산소운동의 유용성을 강조하면서 기름기 많은 음식을 줄이고 술과 담배를 멀리하는 노력을 당부했는데, 우리가 먹는 요즘의 음식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도축부산물을 소에 먹이지 않는다. 광우병으로 시민이 희생되는 일이 발생한 이후 미국도 소 도축부산물을 직접 소에 주는 일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소 도축부산물을 돼지와 닭 사료에 넣고 돼지와 닭 도축부산물을 소에 먹이는 일은 계속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산 쇠고기에서 교차오염이 발생할 가능성을 걱정한다. 소 도축부산물에 있는 광우병 유발물질이 돼지와 닭에 옮겨갔다 다시 소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광우병으로 가장 많은 시민이 사망하고 수십만 마리의 소를 소각한 영국을 비롯한 유럽은 소에 어떤 도축부산물도 주지 않자 비로소 광우병 걸리는 소가 사라지는 결과를 얻었는데, 미국은 여전히 초식동물인 소에 도축부산물을 먹인다. 그 미국산 쇠고기를 우리가 먹었다. 최근 더 많이 먹는다.

미국의 소나 우리의 한우나 아주 어린 나이에 도축한다. 사람으로 치면 7살에 불과할 때 도축하므로 치매 유발물질로 인한 증상이 나타나기 이전일 가능성이 높다. 콤 켈러허는 그 점을 지적했다. 면역이 강하고 체력이 커 웬만한 병에 쉽게 회복하는 젊은이를 희생시키는 광우병이야 의료진의 눈에 띄고 언론에 노출되지만, 어디 노인에게 나타나는 치매를 주목하겠는가. 그런데 24년 만에 치매가 8900퍼센트 증가한 미국의 결과는 가볍게 넘어갈 남의 현상이 아니다. 수명연장이나 일상화된 건강검진으로 해석할 수 없지 않은가. 7년 만에 치매가 4.5배 늘어난 우리의 현상도 마찬가지다. 도축부산물 제공 여부에서 그칠 수 없다. 미국이나 우리나 고기의 양을 늘리기 위해 몸에 맞지 않는 옥수수 사료를 주고, 그것도 모자라 육질 사료와 항생제와 호르몬을 마구 주입하는 공장식 축산을 포기할 생각이 없지 않은가.

가축에게 자연스럽지 않은 삶을 강요하는 공장식 축산업이 계속되는 한. 살처분으로 구제역을 통제할 수 없다. 빠른 시간에 많은 가축을 성장시키려는 공장식 축산은 가축의 면역력을 떨어뜨렸을 뿐 아니라 환경변화에 이겨낼 힘을 갖게 하는 유전적 다양성의 폭을 극도로 좁혔다. 컴퓨터로 제어하며 고기나 우유나 계란을 생산하는 공장처럼 면역력이 약하고 유전자가 단순한 가축을 밀집시켜 사육하는 한, 내 나라든 남의 나라든, 가축들은 구제역이나 조류독감, 그보다 더욱 무서워질 질병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 고기들을 게걸스레 먹는 사람도 안전할 수 없다. 지구는 더욱 뜨거워지고 식량 위기는 앞당겨질 수밖에 없다. 조상의 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공장식 축산과 관계없는 고기가 없는 건 아니다. 생활협동조합에 가입해 주문하거나 가까운 매장에 가면 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조상이 상상도 할 수 없는 고기는 차례상에 놓지 않을 수 있다. 차례상은 그렇다 치고, 평소에 먹는 고기의 질과 양도 돌이킬 필요가 있다. 시골 외양간에서 한두 마리 키우는 가축으로 많은 고기를 먹을 수 없다면 밥상에 올려놓는 고기의 양을 대폭 줄이면 좋다. 고기를 아예 끊어도 좋다. 치매에 걸릴 가능성이 크게 줄어들 게 틀림없다. 구제역 때문에 뒤숭숭한 설을 맞았으니, 모처럼 모인 식구들이 이제까지 별 생각 없이 먹어온 고기를 다시 살펴보는 계기를 마련하면 어떨까. (2011.1.31.박병상)

박병상 선생님은
박병상 선생님은
생물학박사. 근본생태주의 입장에서 도시와 생태계 문제를 고민하며 살아가는 생물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이다. 대학에서 ‘환경과 인간’을 주제로 강의를 하면서 생태주의 시각을 지닌 환경활동가를 키우고 싶어 한다. 환경단체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에서 대표로 활동했고 ‘전태일을 기리는 사이버 노동대학’ 부설 문화교육원 원장과 <인천생태ㆍ환경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굴뚝새 한 마리가 GNP에 미치는 영향》(1999, 다인아트), 《파우스트의 선택》(2000, 녹색출판사),《내일을 거세하는 생명공학》(2008, 책세상),《생태학자 박병상의 우리 동물 이야기》(2002, 복갤럽),《참여로 여는 생태공동체》(2003, 아르케),《녹색의 상상력》(2006, 달팽이),《이것은 사라질 생명의 목록이 아니다》(2007, 알마)등이 있다. 또한,《녹색평론》과 《환경과 생명》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 본문에서 사진은 인터넷 다음에서 따온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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