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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박병상 박사 환경칼럼

구제역 백신은 정부의 마지막 수단인가.

by anarchopists 2019. 12. 29.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2/01 06:43]에 발행한 글입니다.


구제역 백신은 정부의 마지막 수단인가

우리에게 낯선 구제역, 하루가 멀다 하고 구제역과 조류독감이 퍼져나간다. 동쪽은 구제역, 서북쪽은 조류독감이라지만 겹치는 지역이 나타났고 서남쪽이라고 안전한 곳도 아니다.

구제역은 그 증상이 성경에도 기록될 정도로 오래되었다지만 축산업이 요즘처럼 활성화되기 전에는 문제를 심각하게 일으키지 않은 것 같다. 유럽이나 중남미의 대규모 축산국가들을 제외한다면 2000년 이전 우리나라는 구제역 때문에 전국의 축산업이 일시에 흔들린 적은 없었다. 전파력이 아주 빠르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일 텐데, 요즘 문제가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성체는 시름시름 앓다가도 대부분 회복된다는데 왜 발생 농가는 물론이고 발생 농가에서 반경 500미터로 정한 안전반경 안의 가축을 모조리 살처분해야 하는 걸까. 안전반경을 사수하면 더는 퍼지지 않는다는 과학적 합리성이라도 확보한 걸까. 그런데 이번의 구제역 바이러스는 안전반경을 간단히 넘고 말았다. 지나가는 차량에 분무하는 거리의 소독약이 이번의 큰 추위에 얼어붙었기 때문일까.

살처분, 중립적 용어임에 틀림없지만, 왠지 거부감이 든다. 멀쩡한 생명을 죽이는 조치가 아닌가. 이번 살처분 때문에 동물보호 단체들이 발끈했다.
가축의 생명을 지나치게 많이 죽인다는 점에 아연해 하면서도 그 방법이 무자비하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살처분은 안락사로 수행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시간과 물량에 치이는 현장은 규정을 지키기 어려워한다. 아니 불가항력을 내세워 잔혹한 살해에 이어 매립하거나 생매장까지 자행된다고 동물보호 단체들은 분노한다. 덩치가 큰 소는 주사로 죽이지만 다른 가축과 격리하지 않은 채 수행하고, 돼지는 구덩이에 몰아넣고 굴삭기 삽날로 제압해 죽인다는 게 아닌가. 그 경우 패닉 상태가 되는 돼지의 공포는 극에 달할 테고, 돼지의 저항으로 바닥에 깔아놓은 비닐이 찢어져 구제역 바이러스를 포함하는 침출수가 지하수를 오염시킬 수 있다고 전문가는 지적한다.

많은 자본을 들여서 대규모로 사육하는 기업형 축산업은 대체로 살처분을 묵묵히 받아들이지만 소 한두 마리를 정붙여 사육하는 농가는 불만이 많다. 사망률이 높지 않은 질병인데 불문곡직 안전반경 이내의 멀쩡한 가축까지 모조리 죽이는 행위는 비록 도축을 목적으로 키우는 가축이라 해도 잔인하다고 강변한다. 소 한두 마리 입식해 농사짓는 농부는 살처분하러 나온 공무원을 경계하고 살처분을 회피하려다 포기하고서, 소가 사라진 외양간을 식구를 잃은 듯 바라보며 식음을 전폐하기도 한다. 하지만 당국이 보기에도 안락사는 번잡하다. 돈도 힘도 인력도 많이 들어간다. 과로사 당하는 공무원이 발생할 정도였지만 이번 구제역의 경우, 전파속도를 미처 따라잡지 못했다. 그래서 정부는 마지막 수단을 내놓았다. 백신이다.

백신은 치료제가 아니다. 예방을 위한 처방이다
. 정부는 ‘링 백신’을 투여한다고 발표했는데, 링 백신은 처방의 방법이지 백신의 종류를 뜻하는 건 아니다. 발생 지역의 둘레 10킬로미터 외곽에 성곽을 쌓듯, 주사를 놓아 더 퍼지는 걸 막겠다는 고육지책인데, 전문가들은 완벽한 대책이라고 평가하지 않는다. 처방된 백신의 역가가 최고일 경우, 가축 중 85에서 95퍼센트에 항체가 생길 것으로 예측하지만, 항체가 형성되지 않은 개체가 바이러스를 퍼뜨릴 수 있다. 이미 감염되었지만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가축은 백신 처방 후 미미한 증상을 보여 자칫 경시할 수 있는데, 그로 인한 전파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 또한 백신 처방 이후 항체가 형성될 때까지 이차 감염을 반드시 막아야 하고, 그때까지 감옥처럼 철두철미하게 인적 물적 통제가 시행되어야 하는데, 경험상 쉽지 않다고 걱정한다.

문제는 백신의 효과가 완벽한지 확신하기 어렵다는 것이고, 또한 이번에 바이러스를 죽여 희석한 사백신이라고 주장하지만 바이러스 특성 상 죽은 바이러스도 유전자 교환으로 생명력을 다시 갖게 되는 경우도 많다는 걸 염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생백신의 효과를 가질 텐데, 생백신은 가축에게 구제역 바이러스를 직접 넣는 행위이므로 아무리 희석해도 면역력이 약한 가축에게 전파될 수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산 바이러스든 죽은 바이러스든, 백신이 처방된 가축은 두 차례 주사 뒤 두 주 이상 혈청에 이상이 없으면 도축이 가능하고 한 달 이상 문제가 없어야 이동이 가능하지만, 자유로운 수출을 위한 청정 지위를 얻으려면 많은 시간이 경과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살처분한 뒤 3개월, 백신 투여한 뒤 최소 1년이 지나야 수출이 가능하니 손실이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축산업 전문가들은 백신 처방이 몰고올 다른 측면의 후폭풍을 걱정한다. 시장에서 소화할 물량이 모자라면 수입업자는 당연히 국제시장을 노크할 텐데, 구제역 발생 국가의 수입을 지금처럼 거부한다면 수출국이 세계무역기구에 우리 정부를 제소할 수 있다는 게 아닌가. 그 경우 구제역에 오염된 살코기와 내장이나 가죽과 같은 도축 부산물이 들어올 수 있고, 이후 어디에서 터질지 모르는 구제역의 발생과 전파를 신속하게 차단할 수단마저 잃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 백신 투여 결정을 해당 부서는 꺼려했다는 후문이 돈다. 하지만 살처분에 들어가는 비용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자 청와대에서 강력히 백신 처방을 요구했다는 건데, 이미 주사하기 시작한 백신은 돼지에게는 아직까지 예외다. 내수를 목적으로 사육하는 한우와 달리 돼지는 수출까지 염두에 두기 때문일 것이다. 전파 능력이 소보다 3000배나 강한 돼지를 예외로 한 농림수산식품부의 고충을 축산농가들은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 돼지의 죽음을 방치하는 정부의 방침에 동물보호 단체들은 저항하고 있다. 돼지에 구제역 예방을 위한 백신 투여를 요구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번 기회에 동물의 복지 차원에서 무자비한 살처분 규정을 다시 검토하라고 성명서를 발표했다. (박병상, 2011. 2, 내일계속)

박병상 선생님은
박병상 선생님은
생물학박사. 근본생태주의 입장에서 도시와 생태계 문제를 고민하며 살아가는 생물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이다. 대학에서 ‘환경과 인간’을 주제로 강의를 하면서 생태주의 시각을 지닌 환경활동가를 키우고 싶어 한다. 환경단체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에서 대표로 활동했고 ‘전태일을 기리는 사이버 노동대학’ 부설 문화교육원 원장과 <인천생태ㆍ환경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굴뚝새 한 마리가 GNP에 미치는 영향》(1999, 다인아트), 《파우스트의 선택》(2000, 녹색출판사),《내일을 거세하는 생명공학》(2008, 책세상),《생태학자 박병상의 우리 동물 이야기》(2002, 복갤럽),《참여로 여는 생태공동체》(2003, 아르케),《녹색의 상상력》(2006, 달팽이),《이것은 사라질 생명의 목록이 아니다》(2007, 알마)등이 있다. 또한,《녹색평론》과 《환경과 생명》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박병상박사의 이 글은 논문형식인데  포럼에 필요한 내용만을 따서 게재하고 있음. 양지바랍니다.
* 본문 내용 중 사진은 인터넷 니이버에서 따온 것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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