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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박병상 박사 환경칼럼

아~ 대한민국, 구제역 파동의 죄인은 누구인가.

by anarchopists 2019. 12. 29.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2/03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이게 축산농민이 책임질 일인가
사상 최악의 살처분에도 불구하고 구제역 전파가 걷잡을 수 없이 전국으로 확산되자 정부는 구제역 위기 대응 단계를 최고 수준인 ‘심각’으로 높이고 행정안전부 내에 ‘중앙 재난안전 대책본부’를 구성했다. 담당 장관은 “총괄 상황 관리와 부처 간 협조체계 구축, 지자체 방역활동 지원 등 범정부적 노력을 집중”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가축 전염병 때문에 중앙 재난안전 대책본부까지 가동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보도한 언론들은 정부의 뒷북 대응을 지적하고 나섰다. 허둥대다 초동대응과 차단방역에 실패했고, 링 백신 접종도 때를 놓치면서 감시 대상 지역을 추가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지적을 아는지 모르는지, 예의 정부는 “어떤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소비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에 안심”해도 된다면서 “예방을 위해 축산 농가의 외부 모임이나 이동, 그리고 지역 축제도 자제”할 것을 농부에게 거듭 요구했다.

담당 장관이 구제역에 감염된 돼지나 소의 살코기를 먹으라고 권한 건 물론 아니다. 안전반경 내의 가축은 시장에 나올 수 없으니 안심해도 좋고, 살처분된 4퍼센트를 제외한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예전처럼 소비해 축산농가의 시름을 덜어달라는 당부였다. 하지만 인접하지 않은 지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하는 까닭에 증상이 드러나기 전에 도축된 가축이 없다고 단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연말연시에 고기를 자주 먹은 이는 꺼림칙할 것 같다. 왜 이번 구제역은 지역을 건너뛰며 전파되는 걸까.

예전처럼 꼴을 베거나 여물을 쑤어 한두 마리 외양간에서 키우거나 마을에 마련된 목초와 건초를 주며 여남은 마리를 사육했다면 구제역이 지금처럼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 전파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몇 군데 안 되는 가공공장에서 생산한 사료를 전국으로 출하하는 이때, 농부가 사전에 예방할 수단은 거의 없다. 그러니 농부도, 사료업자도, 어쩌면 식당의 고객 역시, 자신도 모르게 구제역을 전파했을지 모른다.

지난해 12월 22일,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는 2010년 5월 강화 일원에서 구제역이 발생하자 발의된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안’을 발 빠르게 의결해 구설수에 올라야 했다. 여야 대치국면에서 연내 처리는 물 건너 간 것으로 치부하다 전격적으로 합의한 개정안의 내용은 축산농가를 다그치고 있다는데 특이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해외에서 입국하는 축산인의 신고와 소독을 의무로 하고 외국인 노동자의 고용에 앞서 까다로운 절차를 수행하도록 규정한 대목은 수긍할 수 있다. 하지만 고의든 아니든 구제역을 전파한 농가에 벌금을 매기는 것으로 개정했고, 그 정도로 부족했는지 1년 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벌칙을 강화한 대목이 예사롭지 않다.

축산을 면허제로 바꾸면서 농장 폐쇄까지 명령할 수 있도록 정부의 통제 권한도 한층 강화했는데,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결과적으로 큰 피해의 원인을 제공한 농가는 엄벌에 처하겠다고 신설한 처사는 아무래도 지나치다 아니 할 수 없다. 축산농가를 억압하자는데 여야가 서둘러 의기투합하다니.

이번 구제역 파동의 죄인은 누구인가. 해외여행을 다녀오며 소독을 자청하지 않은 안동의 축산인인가. 가운은 갈아입었지만 같은 넥타이를 매고 다른 농장에 갔다는 수의사인가. 최초로 의심 신고가 있었던 안동에서 간이 검사로 음성이 나와 방심하다 사태를 키운 지방 공무원인가. 가축 분변을 싣고 여기저기 돌아다닌 트럭 운전기사인가. 농부와 그 식구의 마을 밖 이동을 철저히 차단했어도 개와 고양이를 제멋대로 돌아다니게 한 현장 공무원인가. 소독약을 얼어붙게 만든 이번 겨울의 혹독한 추위인가. 아니면 심화되는 구제역 확산에도 설비와 인원을 확충하지 않고 방역 행정까지 일원화하지 않아 서로 허둥대며 비협조와 책임전가가 난무하게 이끈 정부인가.

과연 누가 으뜸 책임자가. 작년 말에 개정한 ‘가축전염병예방법’은 축산업 방역 체계를 여전히 방기하는 정부를 놔두고 가장 손쉬운 농민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자식 같은 가축을 파묻고 심신이 지친 전국의 농부들은 FTA 체결로 곧 쏟아져들어올 “값 싸고 질 좋은” 미국과 유럽의 고기를 바라보느니 차라리 축산업을 포기할지 모른다. 대한민국의 정부와 국회의원들은 대체 무슨 생각에 젖었나.

농부들이 애처롭지만 맡은 임무를 밤낮없이 수행해야하는 살처분 현장의 공무원들은 시방 지칠 대로 지쳤다. 자신도 구제역 바이러스를 전파할지 모르기에 현장을 떠나지 못하며 살처분을 강행하다 쇠뿔에 받혀 갈비뼈가 부러지거나 소독액이 얼어붙은 바닥에서 뒤로 미끄러지던 트럭에 치어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기계에 손가락이 절단되거나 임산부가 유산하기도 했다. 수천 마리의 사체를 매립하기 전에 배를 가를 때마다 터져나오는 내장과 핏물을 보아야 했다.

달아나는 돼지를 잡아 구덩이에 내던져야 하는 일은 힘겨울 뿐 아니라 정신적 고통을 안긴다. 멀쩡히 살아있던 생명을 죽이는 일 못지않게 죽은 소 앞에서 눈물짓는 나이 든 농부를 바라보는 일도 현장 공무원들을 고통스럽게 한다. 악몽과 수면장애, 우울증이나 환청과 같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고 정신과 전문의는 진단한다. 대부분 하위직인 현장 공무원들이 이번 구제역 파동에 책임질 일도 물론 아니다.
(2011.1. 박병상, 내일계속)

박병상 선생님은
박병상 선생님은
생물학박사. 근본생태주의 입장에서 도시와 생태계 문제를 고민하며 살아가는 생물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이다. 대학에서 ‘환경과 인간’을 주제로 강의를 하면서 생태주의 시각을 지닌 환경활동가를 키우고 싶어 한다. 환경단체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에서 대표로 활동했고 ‘전태일을 기리는 사이버 노동대학’ 부설 문화교육원 원장과 <인천생태ㆍ환경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굴뚝새 한 마리가 GNP에 미치는 영향》(1999, 다인아트), 《파우스트의 선택》(2000, 녹색출판사),《내일을 거세하는 생명공학》(2008, 책세상),《생태학자 박병상의 우리 동물 이야기》(2002, 복갤럽),《참여로 여는 생태공동체》(2003, 아르케),《녹색의 상상력》(2006, 달팽이),《이것은 사라질 생명의 목록이 아니다》(2007, 알마)등이 있다. 또한,《녹색평론》과 《환경과 생명》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 본분 내용에서 사진은 인터넷 네이버와 부산일보에서 따온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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