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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박병상 박사 환경칼럼

개발독재가 인간까지 잡는다.

by anarchopists 2019. 12. 23.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5/09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오늘부터 환경운동가 박병상 박사님의 환경파괴에 경종을 울리는 고발글을 싣습니다.- 운영자]


보호대상종은 개발의 걸림돌이 아니다

꽃놀이 버스들이 영동고속도로를 메울 때 지리산 댐이 예정된 경상남도 함양군 용유담을 다녀왔다. 10미터가 넘는 대형 보로 강의 흐름을 가로막는 4대강 사업 덕분에 물그릇이 커져 가뭄과 식수난을 해결하겠다고 호언하던 정부였다. 그런데 왜 지리산에 댐을 만들려는 걸까. 분명 운하로 전용할 4대강 사업은 배가 다닐 폭과 깊이를 위해 6미터 이상 모래를 연실 퍼내고 있으니 대형 보 안에 고인 물은 썩을 수밖에 없다는 걸 정부는 예상했고, 하는 수 없이 400만에 가까운 부산시민들을 위한 상수원을 따로 확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란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사라질 위기에 몰린 지리산 용유담은 벚꽃과 막 잎눈이 벌어진 연초록에 물들어 수려하기만 했다.

용유담으로 가기 전, 일행은 잠시 지리산의 계단식 논을 답사했다. 모자로 덮을 만한 땅뙈기까지 모를 심었다는 계단식 논은 노을을 받아 아름답기 그지없는데, 한나라당 단독으로 체결된 한EU FTA와 곧 여당 단독으로 체결할 한미 FTA, 그리고 서두르려는 한중 FTA가 체결된 이후에도 이 계단식 논에 모를 심으려는 농민이 있을지 알 수 없었다. 한데, 생태학자가 본 문제의 하나는 맑은 물이 스며드는 심심산골의 계단식 논에도 개구리와 도롱뇽이 통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북방산개구리와 도롱뇽의 올챙이들이 바글거려야 할 계절인데, 웬일일까. 요즘 세상에 농약은 그리 많지 않을 터. 한 때 환경부가 멸종위기종으로 보호하던 두 종에 무슨 변고라도 생긴 걸까.

이맘 때 산간계곡이나 물이 고인 논에 알을 낳는 북방산개구리와 도롱뇽은 어디서나 흔하디흔했지만 지금은 적막할 정도로 드물다. 얼음이 단단한 계곡을 굴삭기로 뒤집으며 쓸어 잡아들여 몬도가네 족들에게 팔아넘기는 기업형 사냥꾼들이 겨울부터 극성이지만 그런 행위가 북방산개구리가 사라지는 원인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지구온난화에 의한 생태환경의 변화도 의심스럽고 여전한 농약 사용도 걱정을 덜게 하지 않지만 산기슭까지 치고 올라가는 개발로 논에 공급되는 물이 불안정해진 것도 봄의 전령인 북방산개구리와 도롱뇽이 사라지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 틀림없겠다.

환경부가 보호대상종으로 한사코 인정하지 않는 북방산개구리와 도롱뇽도 줄어들고 있지만 최근까지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었던 꼬리치레도롱뇽은 더욱 희귀해졌다. “학술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거나 멸종위기에 처할 우려가 있는 야생동식물로서 자연생태계의 균형유지와 그 종이 멸종위기에 처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환경부장관이 관계중앙행정기관의 장과 협의하여 지정한 꼬리치레도롱뇽이 멸종위기종에서 취소된 건 학술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줄었거나 개체수가 늘어 멸종위기에서 벗어난 까닭은 분명히 아니었다. 지정되어도 계속 줄어들기만 했건만 멸종위기종에서 해제된 것은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구간을 개발하려는 정부의 의지 때문이라고 당시 환경단체는 의심했다. 갈라진 바위틈에서 차가운 물이 사시사철 흘러내리는 천성산에 꼬리치레도롱뇽이 적지 않았으므로.

현재 맹꽁이와 금개구리는 우리나라 양서류의 유일한 2급 보호대상종이다.
멸종이 우려되고 학술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높기 때문인데, 들리는 소문은 흉흉하다. 맹꽁이는 곧 제외할 예정이라는 게 아닌가. 그린벨트에 아파트와 체육시설을 지으려하니 맹꽁이가 나타났다고 환경단체가 현수막을 펼치고 반대하니 막막하기 짝이 없었던 모양인데, 해제 목록에 수달과 삵도 포함된다는 소문이 돈다. 마찬가지로 산간을 개발하려는데 걸림돌인 까닭이라고 한다. 하긴 부산 기장군 고리에 핵발전소를 증설하는데 방해된다고 지정을 외면한 것으로 의심하는 고리도롱뇽, 계룡산 관통도로를 개설하는데 발목을 잡을 거라 걱정해 지정 요구를 거들떠보지 않았을 것으로 의심되는 이끼도롱뇽도 개발의 걸림돌이었을 게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환경부는 개발 관련부서의 친절한 동반자인 셈이다.

맹꽁이는 진정 많아졌는가. 할일 많은 장마철이면 농촌의 애환을 달래주던 맹꽁이가 농약 과다 살포와 분별없는 개발로 일제히 자취를 감췄다 최근 여기저기에서 나타나는 건 여건이 조금 개선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생태환경이 안정되었다고 판단하기 아직 이르다. 서식지가 전에 없이 위축되지 않았던가. 한 때 멸종위기종으로 보호되던 두꺼비가 번식기를 맞은 호수에 잠시 바글거리다 이후 자취를 감추는 건, 주위의 서식환경이 위축되기 때문이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 어두운 산간계곡마다 꾸물거리는 모습이 쉽게 눈에 띄던 무당개구리가 어쩌다 보일 정도로 드물어진 것도 순전히 사람 때문이다. 임도(林道)가 산허리를 감돌고 계곡을 개발하자 약속이나 한 듯, 꼬리치레도롱뇽과 더불어 일제히 사라지고 말았다. 맹꽁이도 앞으로 그리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잠시 농약이 줄어 퍼졌지만 이내 사라질 수 있는 불안전한 처지인데 개발 일변도의 정부는 얼씨구나 보호대상종에서 빼려는 모양이다.

강 호안을 돌망태와 철근콘크리트로 싸바른 이후 자취를 감춘 수달이 한국에 많다는 걸 부러워하는 일본은 우리나라에서 수달을 보호대상종에서 제외하려는 움직임이 이는데 아쉬움이 클 것 같다. 자국의 하천 생태계가 회복되면 우리나라에서 도입하고 싶을 것이기 때문인데, 우리 농가를 괴롭히는 ‘유해조수’(有害鳥獸)의 대명사로 지탄받는 고라니도 사실 우리나라 이외에서 거의 발견되지 않는 희귀종이다. 세계 생태자원의 보전을 위해 고라니를 보호대상종으로 묶자고 다른 국가나 환경단체가 제안한다면 우리 개발 동반자 행정당국은 뭐라고 답할까. 고라니가 먹는 농작물을 돈으로 환산한다면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고라니가 인간의 방해를 받지 않고 편안하게 살 환경을 보장한다면 굳이 인간 주변을 배회하지 않아도 무방하리라. 도시를 어른거리다 총 맞고 죽고 마는 멧돼지도 마찬가지겠지.

조망권을 사전에 평가할 때 앞으로 지어질 모든 건물의 위치와 규모를 빠짐없이 상정해야 한다. 여러 건물을 나란히 세울 거면서 건물 한 채 씩 평가한다면 기만이 된다. 같은 맥락으로, 난립하는 골프장으로 백두대간에서 정맥으로 이어지는 녹지가 차단되는데 한 골프장의 생태계만 조사한다면 생태계 연결이 차단되면 사라질 수 있는 동식물을 보전할 수 없는 건 당연한 노릇이다, 하지만 실상은 하나의 골프장만 검토한다. 그래서 보호대상종인 강원도의 하늘다람쥐는 위기를 맞았다. 현재 40개의 골프장이 운영되고 있는 강원도에 다시 40여 개의 골프장이 신축을 준비하고 20여 곳이 계획하고 있다. 한데 환경영향평가서는 하늘다람쥐가 다른 곳으로 터전을 옮길 테니 걱정 없다고 천편일률적으로 장담한다. 떠날 수밖에 없는 동물의 눈높이는 전혀 환경영향평가의 고려 대상이 아니다.

하늘다람쥐나 맹꽁이도 사람처럼 함부로 자신의 터전을 옮기지 않건만 사람은 대체서식지를 제공하겠다며 거룩한 포정을 짓는다
. 대체서식지로 옮겨진 동물은 생존율이 터무니없이 낮다. 적응된 서식지와 조건이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의 알량한 눈으로 복원된 생태계가 동물의 눈높이와 맞을 리 없지 않은가. 개발할 때 잠시 대체서식지로 옮긴 뒤 개발 뒤 생태계가 복원되면 다시 데려오겠다는 선언도 동물의 처지에서 위험천만한 건 마찬가지다. 복원된 생태계가 전과 동일할 리 없다. 더 좋은 환경으로 옮겨준다는 주장은 동물의 처지에서 어처구니없을 텐데, 한강 노들섬의 맹꽁이, ‘은평 뉴타운’의 맹꽁이, 4대강 사업 현장에 분포하는 수많은 보호대상종들의 극히 일부만이 더 좋은 대체서식지로 옮겨질 것이다. 보호대상종이 떠난 자리에 사람만이 들끓겠지.

몇 마리 명맥을 유지한다고 믿은 이의 적극적인 보전운동이 있었기에 이제 조금씩 늘어나는 수달과 맹꽁이는 우리 하천 생태계의 카나리아나 마찬가지다. 그들이 아직 누비고 있으니 우리 하천은 안정된 상태라는 걸 우리는 알건만 우리 카나리아의 운명은 앞으로 장담할 수 없다. 편안한 4대강 사업을 위해 보호대상종의 목록에서 제거할 경우 수달도 강도, 그리고 우리 후손의 생태적 안위도 위기에 빠질지 모른다. 맹꽁이가 사라진 농촌과 도시 근교에 아파트와 공장이 들어선다고 우리는 행복할 것 같지 않다. 하늘다람쥐를 볼 수 없는 백두대간, 꼬리치레도롱뇽이 사라진 산간계곡은 더 없이 쓸쓸할 것이다. 그러다 사람도 대체서식지를 찾아야 하는 건 아닐까.

보호대상종이 나타나도 대체서식지 운운하거나 아랑곳하지 않고 공사를 강행하는 현 정권에서 다시 검토하는 보호대상종의 목록은 누가 작성하는지 몹시 궁금한데, 수도권 일원의 낮은 평지에 주로 서식하는 금개구리와 수원청개구리는 온전히 보존될 수 있을까. 생태조건이 아주 까다로운 그들이야말로 대체서식지에 가면 사라질 가능성이 높은데 수도권의 개발압력은 하천이나 산간계곡과 차원이 다르다. 눈앞의 돈을 위해 후손의 안위 따위는 거들떠보지 않는다. 새로운 목록에 오르거나 남을 보호대상종은 안녕할 수 있을까. 아니 적막강산이 된 생태계에서 홀로 남는 인간은 안녕할 수 있을까. 우리는 스스로 만든 보호대상종이라는 카나리아마저 내버리고 있는데. (2011. 5.2, 박병상)

박병상 선생님은
박병상 선생님은
생물학박사. 근본생태주의 입장에서 도시와 생태계 문제를 고민하며 살아가는 생물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이다. 대학에서 ‘환경과 인간’을 주제로 강의를 하면서 생태주의 시각을 지닌 환경활동가를 키우고 싶어 한다. 환경단체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에서 대표로 활동했고 ‘전태일을 기리는 사이버 노동대학’ 부설 문화교육원 원장과 <인천생태ㆍ환경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굴뚝새 한 마리가 GNP에 미치는 영향》(1999, 다인아트), 《파우스트의 선택》(2000, 녹색출판사),《내일을 거세하는 생명공학》(2008, 책세상),《생태학자 박병상의 우리 동물 이야기》(2002, 복갤럽),《참여로 여는 생태공동체》(2003, 아르케),《녹색의 상상력》(2006, 달팽이),《이것은 사라질 생명의 목록이 아니다》(2007, 알마)등이 있다. 또한,《녹색평론》과 《환경과 생명》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 본문 내용 중, 사진은 연합뉴스와 인터넷 다움에서 떠온 것임
* 위글은 daum 블로그 박병상의 <내일을 사는 환경이야기>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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