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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박병상 박사 환경칼럼

구제역의 원죄, 인간의 탐욕이다.

by anarchopists 2019. 12. 29.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2/02 06:33]에 발행한 글입니다.


이번 구제역의 원죄

4대강 사업으로 예산이 모자라 그랬을까. 담당 부서에 백신 처방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진 청와대는 “나부터 검역을 받겠다.”고 선언한 수장의 발언을 언론에 홍보했다. 솔선수범을 약속했다는 건데, 안동의 축산업자를 염두에 두고 꺼낸 발언일지 모르지만, 원죄는 지금 두문불출하고 있을 그 축산업자에 없다. 대통령이 자진해서 검역을 받아야 옳은 것인지 여부는 예서 논하지 말자. 축산업자, 지역 수의사, 사료업자, 축산분뇨 수송 운전자, 현장 공무원과 지방 정부 관계자, 그리고 허술한 축산 방역 체제를 방기한 정부보다 이번 사태로 가장 고통스런 존재는 다름 아니라 살처분 대상이 된 돼지와 소다. 가축도 고통과 공포를 느끼고 회피하려 드는 생명이다. 사람과 처지를 바꿔 생각한다면 바로 짐작할 수 있는 노릇이 아닌가.

축산농민을 전과자로 만드는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안에 문제의식을 갖는 한 전문가는 구제역 발생을 예방할 대책이 진작 허술했던 정부의 책임을 강조하면서, 좁은 땅덩어리에서 밀집해 사육할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의 축산업의 한계를 감안할 때, 농장 단위의 상시 방역을 실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한다고 제안한다. 아울러 구제역이 발생한 해외에 다녀올 경우, 검역은 물론이고 15일 이상 다른 농장의 출입을 자제하게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소비되는 고기의 양을 상정한 뒤, 수요를 충당할 만큼 축산업을 유지해야한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좁은 국토에서 그 정도의 고기를 생산하려면 소와 돼지를 밀집해 사육할 수밖에 없다는 걸 감안했을 것이다. 그런 과밀 축산업은 축사에서 태어난 송아지와 새끼 돼지를 받아 사육하기보다 종돈이나 한우 종축농장에서 태어난 우수 품종의 송아지나 새끼 돼지들을 일괄 구입해 사육하는 편을 선호한다. 한데 지난 12월 24일 경북 영천군의 한 종돈장에서 구제역이 발생했다. 방역당국은 허겁지겁 계열 농장에 납품된 돼지 1만 7700마리와 반경 3킬로미터 내의 돼지까지 살처분했지만 다른 종동장이나 종축장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게다.

한우개량사업소와 같이 우수 한우 수천마리와 그 암소에 정액을 공급할 우수 황소를 보살피고 그 황소의 정액을 냉동해 보관하는 기관은 안전한 지역으로 관리하던 우수 가축의 일부와 보관된 정액을 분산시키고 오가는 사람과 차량을 철저하게 소독하며 직원의 출퇴근을 잠정 금지했다고 한다. 한국 축산업의 미래가 달려 있기 때문이라는데, 왜 우리 축산의 미래를 몇 군데 안 되는 사업소에 맡겨야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생략되었다. 그런 종돈이나 종축사업소에서 전국의 농가로 공급하는 우수 한우나 우수 돼지는 조상이 물려준 다양한 유전자를 충분히 보전하지 않는다.

육질이나 경제성을 고려해 최선의 품종으로 육종하는 과정에서 많은 유전자를 잃었다. 그렇게 유전자가 단순해진 품종을 사육하는 축사는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시켜야 소기의 상과를 올릴 수 있는 까닭에 개선된 시설로 수시로 교체해야 하는 건 물론이다. 엄선된 사료를 그때그때 제공하고 적시에 항생제와 호르몬을 처방해야 한다. 그를 위해 들어가는 비용이 적지 않으므로 시장에서 인기 있는 우수 품종만 고집해야 한다. 한데 그런 품종일수록 환경변화에 취약하다. 조상과 달리 구제역에 약해질 수밖에 없다.


구제역뿐이 아니다. 구제역과 시방 동시해 창궐하는 조류독감도 마찬가지다.
최근 고병원성 조류독감이 검출된 전북 익산시의 닭과 역시 고병원성인 조류독감이 검출된 충남 천안시의 오리가 그렇다. 안전반경 3킬로미터 이내의 닭과 오리와 메추리를 살처분했고 경남 사천시에서 고병원성 조류독감이 검출된 청둥오리가 발견되자 그 안전반경의 닭과 오리와 메추리를 예방 차원에서 살처분했다. 죽은 닭과 오리와 메추리는 대부분 조류독감에 감염되지 않았지만 죽어야 했다.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생매장 되었을 것이다. 조류독감이 돌 때마다 저병원성이면 300미터 안전반경, 고병원성이면 그 10배인 3킬로미터 안전반경 내의 닭과 오리와 메추리가 반드시 살처분되어야 한다는 이유도 가축이 제공하지 않았다. 극단적인 품종개량으로 유전적 다양성을 잃자 질병에 가축들이 아주 취약해진 데 있다. 결국 사람의 탐욕이 이끈 현상이다. 미국산 유전자 조작 옥수수로 가공한 사료를 우리나라에 막대하게 팔면서 동시에 미국의 닭고기와 돼지고기와 쇠고기 수입을 동시에 요구하는 미국계 다국적기업의 횡포도 가진 자의 잔혹한 탐욕이다. 광우병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2011.1, 박병상, 내일 계속)

박병상 선생님은
박병상 선생님은
생물학박사. 근본생태주의 입장에서 도시와 생태계 문제를 고민하며 살아가는 생물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이다. 대학에서 ‘환경과 인간’을 주제로 강의를 하면서 생태주의 시각을 지닌 환경활동가를 키우고 싶어 한다. 환경단체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에서 대표로 활동했고 ‘전태일을 기리는 사이버 노동대학’ 부설 문화교육원 원장과 <인천생태ㆍ환경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굴뚝새 한 마리가 GNP에 미치는 영향》(1999, 다인아트), 《파우스트의 선택》(2000, 녹색출판사),《내일을 거세하는 생명공학》(2008, 책세상),《생태학자 박병상의 우리 동물 이야기》(2002, 복갤럽),《참여로 여는 생태공동체》(2003, 아르케),《녹색의 상상력》(2006, 달팽이),《이것은 사라질 생명의 목록이 아니다》(2007, 알마)등이 있다. 또한,《녹색평론》과 《환경과 생명》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 본문 내용 중 사진은 인터넷 네이버와 연합뉴스에서 따온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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