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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진보와 보수의 개념, 그리고 분류기준

by anarchopists 2019. 11. 26.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1/19 07:43]에 발행한 글입니다.


진보와 보수의 개념, 그리고 분류기준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람의 성향을 평가할 때 하는 말이 있다. “저 친구는 보수야. 저 사람은 진보야. 그 놈은 수구야. 저 치는 수구골통이야.” 그러나 사실 우리나라 사회구성원 중, 사회변화와 발전에 대한 관심을 갖는 인구수는 대략 20%(이 수치는 필자의 일방적 견해임. 곧 각종 보궐선거 등에서 나타나는 투표율을 감안한 것임) 정도에 그친다. 그 나머지 사람들은 사회변화와 나라발전에 대한 관심을 거의 접고 산다고 본다. 그저 나라가 가는대로, 정치권이 이끌어 가는대로 살고 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이 나라는 전체 인구의 20%가 끌고 간다고 말 할 수 있다.

사회변화와 나라발전에 관심을 보이는 20%는 대략 대학졸업(한 해 대학졸업자는 대략 전체인구의 34% 정도임)과 무관하게 개인적 지적수준을 가지고 있는 지식인 계층에 속한다. 이른바 서울의 서초, 압구정 등에서 노는 부유층 자제와 같은 비지식인들은 사회변화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 부류다.

곧, 사회학이라는 학문적 차원을 떠나, ‘사회변화와 발전에 대한 관심’은 다시 그 성향을 분류해 볼 수 있다. 크게, 자신의 이익보다 사회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개혁에 관심을 보이는 계층(이를 개혁세력이라 함)과 사회발전보다는 자신의 이익추구에만 관심을 갖는 계층(이를 수구세력이라 함)으로 나누어 불 수 있다.

먼저 수구세력은 어떤 자들인지를 보자. 수구세력을 우리는 흔히 기득권층이라고 한다. 이들은 대개 정치권력과 지본권력을 가진, 이른바 가진 자들이다. 여기에 이들로부터 빵부스러기를 받아먹는 기업과 회사의 간부급, 그리고 국가기관의 고위관료들이 대체로 이에 포한된다. 이들 기득권층은 사회변화와 발전을 싫어하는 부류들이다. 이들이 사회변화를 바란다면, 자신들의 권력수호와 지본축적에 이익이 되는 쪽으로 일거다. 이들이 표면적으로 사회변화와 개혁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두루미에게 접시에다 물을 주는 꼴일 게다

개혁세력은 사회전체가 보다 발전적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계층이다. 이들은 자신의 이익보다는 사회 전체의 이익을 더 생각하는 부류다. 다른 말로 말하면, 인간의 행복과 자유, 그리고 사회의 평화와 평등을 지향하는 계층이다. 그리고 사회 전체 이익에 무엇이 도움이 되느냐 등에 관심을 보이는 부류다. 그래서 사회 전체이익을 위해 민족과 동포, 그리고 통일문제에도 관심을 갖는다.

한편, 사회변화를 추구하는 이들 개혁세력은 다시 ‘개혁의 속도문제’와 ‘누구이익이냐’를 놓고 의견이 갈린다. 곧 진보와 보수다. 빠른 속도로 개혁을 할 것이냐, 아니면 천천히 할 것이냐는 문제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집단이익이 먼저냐 아니면 사회전체의 이익이 먼저냐의 문제이다. 그래서 나라와 사회전체 이익을 위해 빠른 속도로 목적을 달성해 보려는 세력은 진보세력이 된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사회전체의 이익을 나중에 생각하면서 조금 천천히 개혁해 보자는 집단이 보수집단이다. 그래서 개혁을 추구한다는 면에서 보수집단도 개혁세력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뜻이다.

이제까지 이야기를 정리하면, 나라사람 중, 전체이익보다는 자기이익에만 충실한 사람들은 수구세력이고 사회전체의 이익에 보다 관심을 갖는 부류는 개혁세력이다. 그리고 개혁세력 중에서도 이익의 성질과 개혁의 속도를 놓고, 진보세력과 보수집단으로 나뉜다.


다시 수구세력이란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를 보자. 이들은 남과 더불어 살고 말고를 생각조차 안 하는 사람들이다. 나라에 변고가 생기고 전쟁이 나면, 나라와 이웃들을 버리고 도망갈 사람들이다. 그리고 다시 나라가 조용해지면 들어와서 권력을 잡고 돈을 벌 사람들이다. 조국이니, 나라니, 동포니, 평화니, 자유니, 평등이니, 평균이니, 환경이니, 생태니, 인권이니, 민족이니, 민족의 아픔이니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세력들이다.

이른바. 친일세력과 친미세력이 그들이다. 또 이들은 권력을 민권보다 위에 두는 세력이다. 나라이익보다 자기가족 이익을, 나라사람보다 개인의 이익을 더 앞세우는 사람이다. 이들은 나라도, 사회도, 이웃도 다 무의미하게 생각한다. 독점자본가, 신자유주의자 등 대기업의 자본권력과 이들과 결탁한 정치권력이 여기에 속한다. 그리고 이들을 맹목적적으로 추중하는 권력의 하수인과 자본의 하수인, 그리고 무지랭이 6070세대가 여기에 속한다. 이렇게 보면, 이 나라 정치의 한 축인 한나라당도 보수집단이 아닌 수구집단으로 분류해 볼 수 있다.

보수집단은 개혁을 추구하되 보다 집단적이면서, 소극적이고 점진적 태도를 보이는 세력이다. 그래서 보수세력이라고 하지 않고 보수집단이라고 부른다. 이런 점에서 수구세력과 가까운 듯 보이면서도 구분이 된다. 이들이 수구세력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집단의 이익을 쫒든 말든, 어쨌든 개혁과 변화를 정면에 내세운다는 점이다. 그래서 수구세력이 개인과 가족의 이익에 충실한 데 비하여 보수집단은 개인과 집단을 포함한 사회이익에도 관심을 보인다.

보수집단은 집단과 개인의 이익을 위해 권력장악과 선거승리에만 몰두한다. 그래서 집단이기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인권, 자유, 민주, 평등, 환경에 대하여 인간의 이성적 자유의지, 도덕적 본질, 윤리적 양심에 따라 관심을 갖는 게 아니라, 자신과 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타의적으로, 계산적으로, 의도적으로 변화를 지향한다. 여기에는 정부지상주주의, 국가지상주의를 포함하는 이른바 권력지상주의자가 있다. 반공독재권력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대부분 집권여당과 이를 추중하는 하수인들이 이에 속한다. 이와 부하뇌동(附和雷同)하는 특정지역의 시민들도 이에 속한다. 또 민주화운동, 생명운동 등 시민사회운동을 하다가 ‘좋은 사회’를 만들어보겠다는 핑계를 대고 정치권에 뛰어든 변절자들도 이에 속한다.

개혁세력 중, 진보세력은 자신의 이익과 집단의 이익을 초월한다. 이들은 전체 사회변화와 나라발전에 대하여 보다 적극적이고 급진적인 태도를 보이는 계층이다.
이들은 인간의 본질에 충실한 집단이다. 인간의 천부적 인권을 수호하려는 데 관심을 갖는다. 정치적 압력과 경제적 착취, 사회적 편파, 문화적 불이익에 의하여 인간의 천부인권이 유린되는 것을 시정하거나 폐지하려는 세력이다. 이들의 기본정신은 자연생태계가 그대로 유지되는 환경, 자연과 더불어 사는 인간사회, 평등과 평균이 실현되는 사회, 자유와 행복이 추구되는 사회를 지향한다. 또 정치권력과 사회제도에 의하여 인간의 지유의지가 압력을 받고 통제되는 사회를 반대한다. 또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불균형의 타파를 주장한다. 집단적 이기주의 때문에 그 반대에 서 있는 인민이 불이익을 받는 것을 반대한다. 그래서 이들은 자유주의를 축구한다. 인도주의를 지향한다. 평화주의를 합창한다. 평등주의와 평균주의를 주장한다. 인격주의를 창달한다. 이에는 이른바 민주화운동, 생명운동 등 시민사회운동을 끝까지 지향하거나, 이를 지지하고 정치적으로 변절하지 않은 무리들이 이에 속한다.

이제 20년 만에 찾아오는 선거혁명의 해가 왔다. 총선과 대선이 동시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 유권자는 누구를 위해 ‘종’을 칠 것인지를 잘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전체가 변화하고 발전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오늘날 세계조류는 중앙집권적 통제사회가 아닌, 지역자치적 공동체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을 알았으면 한다.(2012. 1.19 아침, 취래원농부)

취래원농사는
황보윤식(皇甫允植, 醉來苑農士)
학생시절부터 민족/통일운동을 하였다. 동시에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갖고 생명운동을 하였다. 나이 60을 넘기자 바람으로, 도시생활을 과감히 접고 소백산(영주) 산간에 들어와(2010) 농업에 종사하면서 글방(書堂, 반딧불이서당)을 열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를위한시민모임”,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평화연구소”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글로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2017) 등 다수의 글이 있다.(수정 2018. 10.3) /함석헌평화연구소
* 사진 위는 뉴시스에서, 가운데는 네이버 블로그에서 따온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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