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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올해는 평화운동을 일으키자

by anarchopists 2019. 11. 26.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1/09 06:32]에 발행한 글입니다.


올해는 평화운동을 일으키자

함석헌은 평화에 대하여 다음과 인식하였다. 평화는 “인류의 자유의지를 통한 윤리행동”이다.(《함석헌저작집》12, 한길사, 2009, 17쪽)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 평화운동이 없었던 이유로, 역대 대한민국 권력들이 북의 공산주의와 대결의식 때문이라고 하였다.

함석헌은 어느 나라, 어느 민족보다도 “세계평화를 부르짖어야 할 이 나라에 평화운동이 도무지 없는 것은 놀랄 일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이유로 역대 반공독재 권력들이 “공산진영이 속으로 침략주의를 숨기고 평화주의를 선전하기 때문에 남한이 공산진영의 평화전략에 넘어가지 않으려고 평화운동을 못”(앞의 책17쪽)하겠다는 어리석은 짓을 하였다고 비판하였다. 즉 함석헌은 “共存만이 生存”이고 “평화만이 유일한 공존”이다.(앞의 책, 17쪽)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평화공존은 “자연현상이 아니고 인류의 자유의지를 통해 오는 윤리행동”이라고 그 나름의 ‘평화론 핵심’을 말하고 있다.

함석헌은 계속하여 이제까지 인류사회가 평화가 안 되어왔던 이유에 대하여 “국가는 도덕적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평화를 지향하는 국제회의가 많이 있었으면서도 인류의 평화를 만들어내 지 못하는 이유는 어디 있는가. 그것은 강대국의 이익 때문이었다.(앞의 책, 18쪽)라고 한다. 강대국은 늘 그리해왔듯이 국제회의에서 자국의 이익과 상충할 때 인도주의니, 세계평화니 하는 것을 결코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함석헌은 도덕론을 거론하면서 국가주의를 다음과 같이 부정한다. “남에 대한 믿음이 인격이고, 양보는 미덕이다. 믿고 양보하는 것은 양심이다. 양심은 인격의 본질로 도덕적 존재만이 갖는다. 그런데 개인은 도덕적 존재이지만, 국가는 도덕적 존재가 아니다”(앞의 책, 18쪽)

함석헌의 말을 빌려 말해보자. 국가는 도덕적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국가는 서로 간에 양보도 믿음도 없다. 오로지 자국의 이익을 위한 ‘세력균형주의’만 있을 뿐이다. 세력균형은 결국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힘에 의존하는 국가는 무력국가다. 강대국은 저들끼리 세력균형을 유지하려면 필히 무력국가로 가야 한다. 결국 무력국가는 필연적으로 평화보다는 전쟁을 수반하게 된다. 그것이 세계 1차 대전이었고 세계 2차 대전이었다.

그래서 함석헌은 ‘인류의 평화’는 무력국가의 폐기에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는 국가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1950년대를 기준으로 국가를 ‘과거의 국가’와 ‘현재의 국가’로 나눈다. 과거의 국가는 “피의 신성, 전통의 신성이 강조되고 이를 통해 국가가 국민을 단속하였다”(앞의 책, 22쪽) 다시 말하면, 과거국가는, 국가가 국가구성원(인민이라고 하자) 위에 군림하였다. 그리고 사회제도와 문화의 발달도 국가가 주도하였다. 곧 과거 국가사회에서는 문화발달에 의한 인류발전과 향상은 국가가 주도하였다. 이 때문에 국가가 꼭 필요하다는 ‘국가지상주의’가 나왔다. 즉, "국가가 목적이고 정의였다. 개인은 국가를 위해 존재했다. 국가가 전쟁을 하면 그게 당연하였다. 즉 무력국가 정당시 되었다"(앞의 책, 20쪽)

그러나 현재는 국가보다 개인의 가치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따라서 오늘의 국가사회는 국가이익보다는 개인의 가치추구에 더 충실해야 한다. 인류가 존재하는 그때부터 “인간의 본질은 평화적이고 자유로운 존재이다”(앞의 책, 20쪽) 따라서 “인간의 처음 사회는 평화로운 공동체였다. 힘의 강제가 필요 없었다. 전쟁이 필요 없는 시대였다.”(앞의 책, 20쪽) 이러한 인간의 본질이 국가라는 기구에 의하여 억눌러 왔었다.

그 동안, 국가는 저들의 인민지배라는 필요에 의하여 교통과 통신을 발달시키고 문자와 문화를 보급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의 노력은 이제 국가로 볼 때는 역작용으로 나타났다. 즉, “문명의 발달, 교통·통신의 발달로, 그 동안 절대적이었던 국가와 민족의 개념이 희박해졌다. 여기에 민권의 신장으로 ‘세계시민’이라는 개념도 생겨났다. 게다가 정치, 경제가 국제간 협력 없이는 불가능하게 되었다. 여기에 문화와 풍습까지도 경계가 무너지고 세계화되고 있다”(앞의 책, 22쪽) 이러한 오늘날의 세계사회의 흐름으로 국가개념은 희박해지고 개인의 가치가 더 소중한 시대로 가고 있다.

국가의 이익보다, 개인의 가치가 더 소중하게 된 이 시대에 필요한 노력은 개인의 가치를 최대로 이끌어 내는 일이다. 바로 국가지상주의=정부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지역자치주의=자치공동체주의로 가야 한다. 그리고 분열주의=분파주의에서 벗어나 통합주의=통일주의로 가야 한다. 또 있다. 물질적 이기주의=능력제일주의=경쟁타살주의에서 벗어나, 정신적 이타주의=인류공존주의로 나가야 한다.

국가지상주의, 분열주의, 이기주의, 경쟁주의에서는 평화가 깃들 수 없다. 평화는 공동체주의, 통합주의, 이타주의, 공존주의에서만 깃들 수 있다.(2012.1.9., 취래원농부)

취래원농사는
황보윤식(皇甫允植, 醉來苑農士)
학생시절부터 민족/통일운동을 하였다. 동시에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갖고 생명운동을 하였다. 나이 60을 넘기자 바람으로, 도시생활을 과감히 접고 소백산(영주) 산간에 들어와(2010) 농업에 종사하면서 글방(書堂, 반딧불이서당)을 열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를위한시민모임”,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평화연구소”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글로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2017) 등 다수의 글이 있다.(수정 2018. 10.3) /함석헌평화연구소

* 본문 내용 중 사진(아래)는 뉴스죠이(2011.12.15일자)에서 따온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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