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함석헌평화연구소/세상 바로 보기

중국, 그 두려운 존재

by anarchopists 2020. 1. 13.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8/03 09:08]에 발행한 글입니다.


중국, 그 두려운 존재
-외교주권을 회복함이 옳지 않겠는가-

여름휴가를 얻어, 사천성 성도(成都)을 중심으로 5일간 여행을 다녀왔다. 글쓴이가 중국 땅을 밟기 시작한 것은 중국과 외교관계를 정상화하고 난 뒤, 1993년부터이다. 북경과 동북지방, 그리고 산동ㆍ산서지방을 중심으로 역사기행을 했다. 역사기행을 통해 느끼는 게 많다. 겉으로 보기에 중국은 2008년 북경올림픽을 계기로 정신문화(사회주의)의 우월성이 사라지고 물질문화(중국은 이를 文明이라고 부른다)가 전면으로 부각된 듯이 보인다. 중국의 개혁ㆍ개방정책(사회주의식 시장경제, 이하 개방정책이라 함)이 성공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내면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그들의 무서운 국가성장의 잠재력이 느껴진다. 곧 두려움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중국여행을 통하여 느껴본 점을 “중국, 그 두려운 존재”라는 주제로 붙여 이 글을 써본다.

중국이 오늘의 중국이 된 배경에는 국가운영 방식의 전환 때문이다. 곧 개방정책의 실험이다. 개방정책으로 전환은 중국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의 실용주의(실사구시,사상해방)에토대한다.중국은1980년대마오쩌둥〔毛澤東; 1893.12~1976.9)과 4인방이주도하는프롤레타리아문화대혁명(GreatProletarianCulturalRevolution, 1966.5~76.10)을 종식시키다.(1977년 8월 중순, 중국공산당 제11기 전국대표자대회에서 문혁종결을 정식 선언한다) 그리고 중국공산당 11기 6중전회의(中全會議, 1981) 에서 마오쩌둥이 이끌었던 문화대혁명을“좌익적오류”(極左的誤謬)로평가한다. 이를 계기로 덩샤오핑이 중국공산당의 당권을 장악한다.

덩샤오핑은 낙후된 중국 사회주의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개혁개방조치를 단행한다. 개방정책의 추진 후 중국의 기본국가전략은 계급투쟁노선에서 경제건설노선으로 바뀐다. 경제건설노선의 핵심은 사회주의의 완성과 공산주의 실현을 위하여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장애가 되는 걸림돌을 제거하여 사회주의 생산력을 증대하는 데에 있었다. 개방정책은 정치ㆍ경제ㆍ사회적 측면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나타냈다. 20년 동안 평균 9%대 성장률을 기록한다. 그러나 성과이면에는 정치적으로 정치의식의 변화, 관료들의 부정부패, 경제면에서는 높은 인플레이션, 농민소득의 저하, 소득분배의 불공정, 사회적으로는 한족 내부의 계층적 분화 한족과 소수민족의 갈등과 모순 등이 내부적으로 노정되고 있다.

이렇듯 중국의 사회주의식 시장경제로 노선전환은 이면에 부정적 결과를 수반하고 있지만, 현상적으로는 괄목할만한 외형적 성장과 함께 중국인의 본질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다. 지금 한국관광객들은 그 외형적 모습만 보고 있다. 오늘의 중국사회를 사회주의사회에서 자본주의사회로 변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국민들의 무질서, 더러움, 게으름, 이기주의, 부패한 사회 등만 보고 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지금 중국은 중화민족성이 외부로 드러나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이 점을 지나쳐 보아서는 안 된다. 이제 중국민족성을 가지고 그 두려움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중국인들은 철저한 노예근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자신이 상대방을 이기기까지 상대방에게 철저하게 굴종한다. 경제적 근대화를 먼저 이룬 한국인들이 1992년 이후 중국에 가서 경제적 우월감을 표시했다. 그리자 한국을 중국의 종속국으로 생각해 왔던 중국이 이것을 인정하고 한국의 경제발전의 그들 경제발전의 모델로 제시했다. 그것은 중국인이 핏속에 흐르고 있는 노예근성 때문이다. 한국인은 중국인의 이 점을 모르고 있다. 게다가 중국인이 끈질긴 복수근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모르고 있다. 복수심이 전혀 없는 한국인과 달리 중국인들은 자신이 당한 억울함이 있다면, 대를 이어 복수하는 복수근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중국인의 노예근성은 곧 복수근성과 결합한다. 그래서 자신을 노예로 부렸거나, 굴욕감을 안겨 준 자들에게 훗날 자신이 실력을 길렀을 때, 철저하게 복수를 한다. 이것이 중국인의 본질이다.

지금 중국은 경제적 근대화실험에서 성공하고 있다. 다른 말로 말하면, 경제적 노예시대를 마감하고 있다는 말이다. 곧, 자신들을 노예처럼 여겨온 자들에게 그 굴욕을 몇 배로 갚아주는 복수시대로 접어들었다는 말이 된다. 자신들을 경제적 노예로 여겨왔던 나라는 미국과 일본과 한국이다. 그 중 한국은 중국과 깊은 역사적 관계를 가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중국은 한국에 대한 우월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근대에 들어 경제적 근대화를 한국이 먼저 이루었다. 그 중 못난 한국의 졸부(猝富)들이 중국에 가서 ‘돈을 흔들어댔다’ 이제 이것이 화근이 되는 날이 올 차례다. 그런데도 아직도 한국관광객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중국인의 무질서, 더러움, 게으름, 이기주의, 부패함만 보고 있다. 이것은 시간이 가면 사라질 것들이다.

또 중국인은 만만디(漫漫的: 느린)기질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인구가 많고 국가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오지가 많아서 무교육자가 많다. 교육문맹률이 높은 까닭에 이들은 민주주의 수행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이런 탓으로, 중국인은 수구적 성질도 많이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들의 수구적 기질은 변화의 추구를 느리게 만들어 왔다. 이런 점들이 공산당 권력에 의한 국가통치를 필연적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그러나 중국은 변하고 있다. 아주 많이 변하고 있다.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중국공산당은 개방정책을 통하여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대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미래의 인간사회모습까지 그리고 있으리라 본다. 곧 미래인류의 바른 삶의 모습에 대한 새로운 대안이다. 자본주의도 아닌, 그리고 사회주의사회나 공산주의사회도 아닌.

이 점을 가장 우려하고 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은 늘 패권주의를 지향한다. 그래서 21세기에 들어와 미국은 동북아질서의 재편을 강제하고 있다. 곧, 이제까지의 일본 중심의 안일한 동북아질서를 미국 중심의 강력한 동북아질서로 재편이다. 여기서 한국의 처지가 새삼 문제가 된다. 미국은 한국에 대해 늘 자국의 이용가치로만 이용해 왔다. 냉전시기에는 한국을 이념의 방파제로 삼았다. 냉전시대, 자본주의 경제가치가 없다고 판단되자, 일본을 핵우산으로 삼고, 한국을 헌신짝처럼 버렸다.(Acheson Line에서 제외) 이결과 자본주의 연합과 사회주의 연합의 대리전이 한국에서 벌어진다. 곧 6.25 한국전쟁이다. 이 결과로, 한국은 막대한 인적ㆍ물적 피해를 보았다. 21세기에 들어와서, 중국이 정치ㆍ경제ㆍ군사 면에서 크게 부상되자, 이번에는 미국이 한국을 중국의 총알받이로 삼으려 하고 있다. 곧 군사적 이용가치요, 동북아질서 재편의 희생양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미군기지의 평택이전이다. 그리고 대북군사압박을 핑계로 벌이는 한미연합훈련(7.25~28)이다. 한미연합훈련은 북한보다 중국에 대한 군사압박이다. 그래서 이 훈련에 일본도 참여했다. 이에 대해 중국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미연합훈련을 벌이는 같은 시기에 중국도 육·해·공을 모두 동원해 대규모 군사훈련을 벌였다. 중국육군은 서해장악을 군사목적으로 두고 신형 로켓의 실탄 발사훈련을 벌였다.(7.25) 또 이튼 날 중국공군은 산둥성(山東)에서 전투기 100여 기가 대규모 가동 훈련을 실시했다. 이어 중국해군도 남중국해에서 북해, 동해, 남해의 3대 함대가 모여 실탄사격훈련을 했다.(7.26) 중국의 노예기질이 복수기질로 넘어가는 모습이다.

이런 마당에 아직도 한국 권력자들이 친미외교를 하고 있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이제는 주체적 외교와 군사주권을 회복할 때임을 자각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 나라가 전시군사작전권 회수 연기를 한 것은 어리석음의 극치다. 이제 깨달아야 한다. 미국과 중국, 이들과 등거리외교를 유지해 나가면서 점차 종속적 친미주의 외교를 지양하고 외교주권과 군사주권을 동시에 회복할 때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본다. (2010. 8.2일 아침, 취래원농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