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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강좌

보나벤투라, 빛이신 신 안에 거하라!

by anarchopists 2019. 11. 15.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6/04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보나벤투라, 빛이신 신 안에 거하라!



  보나벤투라(Bonaventura, 1217-1274)는 플라톤과 아우구스티누스의 노선을 취했던 프란치스칸 학파의 이탈리아 학자였다. 당시 주지주의(主知主義, intellectualism)의 대표자인 토마스 아퀴나스와 쌍벽을 이루면서 파리대학에서 강의를 하였지만, 그와는 달리 인간의 의지나 감정이 지성보다 우위에 있다는 주의주의(主意主義, voluntarism)의 입장을 내세웠다.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7대 총장으로 선출되어 타계할 때까지 그 소임을 다했는데, 나중에 세라핌 박사(Doctor Seraphicus)라는 호칭을 부여받았다.


  그의 중요한 신학 사상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빛의 형이상학”에 대한 저술을 남겼는데, 매우 논리적이고 정교한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헬레니즘에서는 빛을 존재나 인식의 근거, 선의 이데아, 일자를 비유할 때 사용하는 개념이었지만, 그리스도교에서는 하느님 자신이 참된 빛(vera lumen)이라고 생각했다. 보나벤투라는 여기서 lux와 lumen을 구별하면서, 전자는 광원으로 볼 수 없는 빛 그 자체이신 신(Deus)으로, 후자는 볼 수 있는 광선, 가시적인 빛, 조명된 빛으로 보았다. 달리 말하면 그에게 있어 신은 원형이고 피조물은 그의 모형이며, 신은 광원이고 피조물은 빛의 단위이다. 나아가 빛은 신이며, 어두움은 선의 결핍으로서 죄라고 말했다. “죄는 오직 선의 타락이며, 죄는 선 안에 있다. 선의 결핍, 즉 죄는 나쁜 것의 추구가 아니라 좋은 것의 포기이다.”(Peccatum non est appetitio malarum, sed desertio meliorum) 따라서 죄는 빛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정화가 필요하다.


  그는 “빛 없이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인식하지 못한다.”(Sine lumine corporali et spirituali non est videre)고 말하면서, “우리의 인식은 가변적이며, 우리의 정신은 빛나는 빛, 변함없는 빛을 통해서만 불변의 진리를 인식할 수 있다.”는 빛을 통한 인식론을 주장하였다. 이는 아래로부터가 아닌 위로부터의 빛의 조명을 통해 지식과 인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물을 안다는 것은 사랑을 통해 최후 목표인 신과 연관시키는 것이었기 때문
에 인간이 신에게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이를 통해 보나벤투라는 인간의 인식을 3단계로 나누어서 설명을 한다. 첫째, 우리 외부에 있는(extra nos) 육체적인 눈(oculus carnis)을 통해서는 가변적인 인식을, 둘째, 우리 내부에 있는(intra nos) 이성의 눈(oculus rationis)을 통해서는 자기 자신과 신의 인식을, 셋째, 우리를 초월하여(supra nos) 관조의 눈(oculus contemplationis)을 통해서는 최고의 존재를 안다는 것이다.


  그러나 빛을 통한 인식의 차원은 단순히 최고의 존재를 아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어떤 삶의 질서 속에 살아가야 하는 실천적 행위로 나아간다. “모든 무질서는 태만과 탐욕과 교만에서 유래되기 때문에(Omnis enim inordinatio aut venit ex negligentia, aut ex concupiscientia aut ex superbia)... 삶의 질서 속에 산다는 것은 신중함과 절제 순종이다.”(Ille enim ordinate vivi, qui vivit prudentur, temperantur et optemperntur) 이러한 삶의 질서가 완성되려면 신 안에 거하게 될 때 가능한 일이다. 그의 말을 길게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신적인 지혜는... 이성철학의 조명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의 중요한 의도는 말을 겨냥하고 있다. 그 안에서는 말의 세 가지 요소에 상응하여 세 가지 것, 즉 말하는 자의 인격과 말의 내용과 말을 듣는 자 또는 말의 목표를 고찰할 수가 있다... 우리가 말 그 자체에 관하여 고찰하면, 그 안에서 우리는 삶의 질서를 발견하게 된다. 말이 완전하려면 세 가지 계기가 부합되어야 한다. 즉 적절함(congruitas), 진리(veritas) 및 아름다움(ornatus)이 그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의 모든 행위는 세 가지 속성을 가져야 한다. 즉 절도(modum)와 미(speciem)와 질서(ordinem)를 가져야 한다. 그것은 외면적 행위에 있어서 신중함으로 말미암아 절도가 있어야 하고, 감정이 순결하여 아름다워야 하며, 바른 뜻에 의해 질서 있고 장식되어 있어야 한다. 즉 사람은 그 뜻이 바르고 감정이 순결하며 행위가 신중할 때 바르고 질서 있게 살 수 있다.”


  프란치스코의 신학과 영성에 기반을 둔 프란치스칸은 다른 수도회와는 달리 헌신(unctio)을 먼저 보여주고 그 다음 관조(speculatio)에 들어간다. 그들에게 학문과 지식이란 인격을 형성하는 도구이자 사랑을 통해서 신에 대한 경험적인 지식을 형성하는 도구이다. 무엇보다도 신에 대한 경험, 혹은 체험, 곧 신을 맛보는 것, 신을 맛들이는 것(sapore)은 관상(觀想)의 극치로 표현된다. 사람들은 마음 한 구석에서 참된 것을 찾으려고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의 모든 가변적인 것을 넘어서야 한다. 그리고 빛의 광원을 만나기 위해 최고의 존재인 신을 보고 맛들이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한 법이다. 특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종교인이라면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위 이미지는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김병규, 'Space Eye'. 500x500x650mm, 스테인레스, 대리석, 2012. ⓒ2012 CNB뉴스).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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