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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칼럼

종교는 사회의식과 역사정신을 혁명하라!

by anarchopists 2019. 11. 18.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5/11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3. 종교는 사회의식과 역사정신을 혁명하라!



  종교 경험과 종교 의례는 각 종교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특수한 지표가 된다. 무엇을 경험했는가에 대한 묘사와 그에 따른 경험의 형식적 차원의 행위들이 함께 이루어지면서 종교경험 자체의 독특함을 드러낸다. 더 나아가서 그것과 더불어 초월자에 대한 경험은 윤리적 숙고와 행위를 통한 종교적 삶의 구체적 실현을 요구한다. 이에 대해 함석헌은 『대학』에서 말하고자 하는 공부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1. 밝은 속알[德] 밝힘에 있으며(明明德), 2. 씨알[民] 사랑함(새롭게 함)에 있으며(親民), 3. 다시 더없는 잘함[至善]에 머무름에 있다(止於至善).” 그러면서 “하나님 섬김은 실지로는 이웃 사랑에 있다. 하나님은 이웃에 와 계시다.”(인간혁명의 철학2, 한길사, 1983, 223-224쪽)고 말한다. 그는 종교적 삶을 하나의 이웃 사랑이라는 윤리적 행위로 규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초월적 경험은 곧 구체적인 실존은 이웃에게서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것은 도덕과 종교가 한데 만난다는 입장으로 확대되며 “도덕 없이 종교 없고, 종교 없이 도덕 없다.”는 말에서도 거듭 확인할 수가 있다.


  따라서 종교와 도덕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종교는 도덕이라는 사유와 행위를 통해서 종교적 경험의 현실성과 당위성을 확증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종교 서술을 보아도 긍정할 수가 있다.

“수행(修行)이라고 하는 항용 일컬어지는 광범위한 종교적 삶은 실은 종교경험의 행태적 표상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수행은 윤리적 실천으로 기술된다. 결국 종교경험의 행태적 표상은 제의와 윤리적 실천을 그 두 축으로 지닌다... 보편적 불성(佛性)을 열망하여 이루어지는 자비의 실천은 종교경험에서 비롯하는 불가피한 의무의 실천이며,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신을 즐겁게 하기 위한 또 다른 의무의 구체화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든 종교경험의 현실적 행태는 윤리라고 하는 일상적 행위를 통해 비로소 완성된다고 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종교경험이 비록 초월이나 신성 혹은 궁극성이나 절대성이라는 비현실적 사실과의 만남에서 비롯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 경험의 현실성 자체가 일상 안에서 전개되고 일상성을 그 기반으로 지니고 이루어지는 것임을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정진홍, 종교문화의 이해, 서당, 1992, 147-148쪽)

  종교적 삶이란 수행, 곧 단순히 개인 혹은 집단의 종교 경험이 일상과는 낯선 행위나 언표로서만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삶에서 윤리적 실천과 맞닿아 있어야 한다는 것을 진술하는 것이다.
종교는 종교 경험의 산물이지만 그것을 몸짓으로 어떻게 이야기할 것이냐 하는 문제와도 관계가 있다. 종교경험은 종교적 체험을 한 개인과 집단에게 의무와도 같은 실천을 하도록 만든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윤리적 실천을 통해서 종교경험의 추상성 혹은 비언표성이 비로소 현실성을 담보하게 됨을 뜻한다.


  그러면 그 일상성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인간의 역사와 사회이다. 오늘날 과학이나 경제적 진보는 인간의 정신문화를 훨씬 앞질러 나아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을 함석헌은 이렇게 비판한다. “오늘날 세계의 고민은... 정치․경제․과학 등등 현실의 실리(實利)적인 면은 벌써 긴 다리가 됐는데[長足進步], 정신문화라는 다리는 아직 무지개 타고 내려오는 선녀 만나 살기를 꿈꾸던 시대의 그 어린이 다리를 면하지 못한 데서 나오는 절름발이의 고민이지 별 것 없다... 혁명이라니 다른 것 아니요, 깨지 못하는 감정의 잠을 깨우기 위해 주는 하나의 기합이다. 고집쟁이는 때려야 한다. 제발 그 자리엔 가지 말고 깨닫기를!”(인간혁명의 철학2, 한길사, 1983, 229쪽)


정신문화를 일깨우고 깨우치는 과업을 수행하는 일이 종교가 해야 할 일이다. 종교는 모름지기 역사정신과 사회의식을 바로 잡는 일, 자고 있는 것을 깨우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종교가 여전히 도그마로 싸우고 있다. 도그마를 지키기에 급급하다. 그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쓸 뿐이다. “종교 단체 속에 복잡하게 얽히어 있는 감정적인 전통 때문이다.”(인간혁명의 철학2, 한길사, 1983, 229쪽) 도그마가 아무리 세련되었다고 하나, 전통이 아무리 길고 오래되었다고는 하나 그것들이 기능하는 자리, 즉 역사와 사회에서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쓸모가 없다. 함석헌은 그것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 눈앞에 보이는 문제는 역사정신과 사회의식을 새롭게 일으키는 데 있다. 그것을 위해서는 먼저 나를 새롭게 해야 하고, 다음으로 씨알을 새롭게 하는 것이고, 마지막으로 종교를 새롭게 해야 하는 것이다.(인간혁명의 철학2, 한길사, 1983, 229-230쪽)


  새로운 사명을 가진 종교가 무엇보다도 먼저 개인의 의식을 승화시켜서 역사의 진보를 가지고 와야 함에도 불구하고 종교 간에 서로 도그마 전쟁을 한다거나 전통과 전통이 대립되는 상황으로 치달아 우열을 가리자고 하는 싸움으로 번진다면 낡은 종교일 수밖에 없다. 혁명의 가능성은 사라지고 만다. 거기에는 희망이 없다. 인류 역사에 관심을 갖고 사회의식을 성숙시키는 데 일조하려는 종교의 노력이 요구되는 이때에 종교 본연의 모습을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또한 종교는 비일상적인 종교경험을 윤리와 도덕적 실천으로 일상화시켜서 인간 자신의 삶을 완성의 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도록 수행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조계사 스님들이 호텔방에 앉아서 13시간이 넘도록 도박을 했다는 것을 수행으로 볼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금 처해 있는 국가의 현실, 씨알의 정신문화, 그리고 이 사회의 윤리와 도덕적 상황을 부처의 안목으로 보았다면 그런 일이 생길 수가 있었을까. 모든 종교는 자성을 하고 인류의 시대정신과 사회의식, 그리고 인간의 도덕이성을 되살펴야 할 일이다.



*위 이미지는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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