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5/15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스승은 스스로 몸으로 보여주고 말과 생각에서 이어지는 행동으로 교육한다. 거기에 스승이 스승으로서의 위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스승은 아무나 스승이라 일컬을 수가 없다. 그런데 민족의 교사요, 현재의 좌표요, 미래의 스승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을 꼽으라 하면 함석헌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말에는 힘이 있고 생동력이 있어서 호소력을 더하면 사람들은 그의 말이 행동인 줄 알아 움직이는 운동이 되기 때문이다.
말은 생각을 낳도록 만들어야 한다. 말은 소리로 그친다면 소용이 없다. 함석헌의 말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생각이 생각을 낳고 반성을 낳으며 행동을 낳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말은 곧 행동이다. 언어가 사람을 밝고 맑게 만들어 지혜롭게 하며 끊임없이 자신과 자신을 포함하고 있는 세계에 대해서 배우려고 하는 자세는 사람들로 하여금 철학하는 삶을 살도록 추동시킨다. 스승의 말은 모름지기 한마디 속에 세계를 바라보는 지혜로운 이치가 담겨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 말로써 세계로 나아가는 발판으로 삼고 세계를 변혁시키는 데 두려움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를 보면, 사람들의 말은 가볍고 생각은 값싼 시대를 살고 있다. 말을 내뱉을 때는 온몸 전체를 내던지는 책임 있는 말을 하지 않으며, 생각은 흐리멍덩하여 사익을 좇느라 자신의 생각을 읽어내지 못하고 만다. 머리와 마음에는 한 사람의 스승, 그 스승의 말씀도 기억하거나 간직하지 못하니 온몸의 몸짓은 가볍고 진지할 수가 없는 게 당연하다. 이제부터라도 참 스승을 찾아 참말과 참 생각을 익혀야 할 것이다.
표피만 핥고 지나가는 자신의 말과 생각을 반추하고 함석헌과 같은 민족의 스승이요, 사유의 스승을 만나야 한다. 깊이를 상실한 세대일수록 그 깊이를 지금보다 더 깊게 파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텐데, 그러기 위해서는 사유를 안내해 줄 스승을 찾아야 한다. 함석헌이 적격이 아니겠는가. 동서양의 많은 철학자와 인류의 스승들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들이 우리의 스승이 될 수 없다는 말이 아니다. 필자는 함석헌과 같은 스승을 그들과 같은 스승의 반열에 놓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동서양을 통틀어서 철학자, 종교가, 사상가, 교육자로서 함석헌과 같은 인물도 드물 것이다. 그러기에 그가 더 위대해 보인다.
우리는 말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많은 말로써, 많은 사람들과 소통을 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갈수록 궁핍함과 공허함은 더해가고 자신의 존재 가치는 더 쓸모가 없어지는 것 같다. 함석헌은 들으라고 명령한다. 상대방의 마음을 들어줄 뿐만 아니라 존중해 주는 사회, 단지 자기의 말이 권위가 있기를 바라는 사회가 아니라 모두의 말이 있어야 할 곳에, 들려야 할 곳에 들릴 수 있도록 해주는 사회가 되려면 제대로 된 스승부터 만나야 한다. 학교에서 스승의 말이 강제, 폭력, 위협, 협박처럼 들린다면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종교에서 지도자의 말이 사기, 불신, 조작처럼 들린다면 역시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함석헌은 말이 없었다. 말로 다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의 말은 몸으로 하는 말이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진정성이 있는 움직이는 말로 다가왔던 것이다.
말이 무성한 시대. 그러나 스승의 말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일 만한 말은 많지가 않다. 그러하기에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그 목소리가 듣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해지는 것 같다.
*위 이미지는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
스승은 말이 없다
이 시대의 진정한 스승은 말이 없다. 말이 없다 해서 소리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소리는 질러대야만 나오는 육체의 언어가 아니다. 소리는 마음의 언어이다.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소리를 듣는 것. 그러한 소리는 듣는 이로 하여금 마음으로 듣게 하기 때문에 마음으로 들으려고 하지 않으면 들을 수가 없는 소리다. 그래서 스승은 말이 없다. 말로써 사람을 교훈하자면 정작 깨우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스승의 권위가 말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더불어 스승의 노릇 또한 말에 있지 않다.
스승은 스스로 몸으로 보여주고 말과 생각에서 이어지는 행동으로 교육한다. 거기에 스승이 스승으로서의 위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스승은 아무나 스승이라 일컬을 수가 없다. 그런데 민족의 교사요, 현재의 좌표요, 미래의 스승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을 꼽으라 하면 함석헌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말에는 힘이 있고 생동력이 있어서 호소력을 더하면 사람들은 그의 말이 행동인 줄 알아 움직이는 운동이 되기 때문이다.
말은 생각을 낳도록 만들어야 한다. 말은 소리로 그친다면 소용이 없다. 함석헌의 말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생각이 생각을 낳고 반성을 낳으며 행동을 낳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말은 곧 행동이다. 언어가 사람을 밝고 맑게 만들어 지혜롭게 하며 끊임없이 자신과 자신을 포함하고 있는 세계에 대해서 배우려고 하는 자세는 사람들로 하여금 철학하는 삶을 살도록 추동시킨다. 스승의 말은 모름지기 한마디 속에 세계를 바라보는 지혜로운 이치가 담겨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 말로써 세계로 나아가는 발판으로 삼고 세계를 변혁시키는 데 두려움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를 보면, 사람들의 말은 가볍고 생각은 값싼 시대를 살고 있다. 말을 내뱉을 때는 온몸 전체를 내던지는 책임 있는 말을 하지 않으며, 생각은 흐리멍덩하여 사익을 좇느라 자신의 생각을 읽어내지 못하고 만다. 머리와 마음에는 한 사람의 스승, 그 스승의 말씀도 기억하거나 간직하지 못하니 온몸의 몸짓은 가볍고 진지할 수가 없는 게 당연하다. 이제부터라도 참 스승을 찾아 참말과 참 생각을 익혀야 할 것이다.
표피만 핥고 지나가는 자신의 말과 생각을 반추하고 함석헌과 같은 민족의 스승이요, 사유의 스승을 만나야 한다. 깊이를 상실한 세대일수록 그 깊이를 지금보다 더 깊게 파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텐데, 그러기 위해서는 사유를 안내해 줄 스승을 찾아야 한다. 함석헌이 적격이 아니겠는가. 동서양의 많은 철학자와 인류의 스승들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들이 우리의 스승이 될 수 없다는 말이 아니다. 필자는 함석헌과 같은 스승을 그들과 같은 스승의 반열에 놓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동서양을 통틀어서 철학자, 종교가, 사상가, 교육자로서 함석헌과 같은 인물도 드물 것이다. 그러기에 그가 더 위대해 보인다.
우리는 말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많은 말로써, 많은 사람들과 소통을 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갈수록 궁핍함과 공허함은 더해가고 자신의 존재 가치는 더 쓸모가 없어지는 것 같다. 함석헌은 들으라고 명령한다. 상대방의 마음을 들어줄 뿐만 아니라 존중해 주는 사회, 단지 자기의 말이 권위가 있기를 바라는 사회가 아니라 모두의 말이 있어야 할 곳에, 들려야 할 곳에 들릴 수 있도록 해주는 사회가 되려면 제대로 된 스승부터 만나야 한다. 학교에서 스승의 말이 강제, 폭력, 위협, 협박처럼 들린다면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종교에서 지도자의 말이 사기, 불신, 조작처럼 들린다면 역시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함석헌은 말이 없었다. 말로 다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의 말은 몸으로 하는 말이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진정성이 있는 움직이는 말로 다가왔던 것이다.
말이 무성한 시대. 그러나 스승의 말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일 만한 말은 많지가 않다. 그러하기에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그 목소리가 듣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해지는 것 같다.
*위 이미지는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평화연구소 > 김대식 박사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종교는 사회의식과 역사정신을 혁명하라! (0) | 2019.11.18 |
---|---|
종교는 뜻을 찾자는 (생명)운동이다! (1) | 2019.11.18 |
돈, 동그랗지만 날카로움으로 감 (0) | 2019.11.15 |
속도에 굶주림과 속도의 무의미 (0) | 2019.11.15 |
몸적 주체성의 회복 (0) | 2019.11.1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