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5/10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인간 존재가 사는 둘레 혹은 지경[세계]은 시간 속에서 늘 변한다. 그래서 세계는 낡음의 세계요 상대의 세계이다. 그 세계를 극복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오로지 세계를 초월한 자만이 그것을 새롭게 할 수 있다. 낡음을 넘어설 수가 있는 것이다. 초월자는 그것을 새롭게 하려고 한다. 상대에 대해서 자신의 절대를 주장하려 함이다. 초월자는 새로운 것이 나도록 만드는 존재이다. 새로운 것은 그를 통해서만이 날 수가 있다. 나게 하는 이는 “나는 나다”(Ich bin der Ich bin)이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이다. 이른바 자존적 존재의 자기 언표성은 자기 선언을 넘어 곧 자기 주체성을 기반으로 한 낳음이라는 사건을 발생시킨다. 그 낳음과 새로움의 성격은 무엇인가? “새로움은 낳음이다. 상한 것, 고장난 것을 고치는 동시에 또 자기 속에서 자기를 벗고 자기 이상 것으로 새로 남이다. 새는 낳음이요, 낳음은 새로움이다. 새로움은 자람이다. 핌이다. 완성함이다. 생은 자기완성을 위하여 자기 부정을 하는 것이다. 죽지 않기 위해서 죽어서 아들을 낳는 것이다. 하나님이 영원, 무한한 생명이라면 하나님은 늘 새롭게 하는 이다. 그래서 생명을 약진이라 하고 불연속의 연속이라 한다.”(인간혁명의 철학2, 한길사, 1983, 219-220쪽)
새로움은 자기 존재 속에서 낳음이다. 초월자 속에서 낳아야 새로울 수가 있다. 초월자가 아니라면 낳을 수가 없는 것이다. 초월자만이 자기 자신을 낮출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버리고 새로운 존재로서의 아들을 낳을 수가 있다. 여기에 자기 부정이 있다. 초월의 자기 부정을 통하여 새로운 존재의 탄생을 가져오는 사건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도 초월을 지향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인간도 초월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통해서 새로운 탄생, 새로운 아들을 낳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무한자와 유한자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이다. 낳음의 절대적 주체로서의 초월자는 동시에 무한자이지만, 인간의 낳음은 초월자에 대한 인식과 경험을 통하여 낳음으로써 유한자인 것이다. 따라서 낳음의 연속성은 곧 인류가 새로워질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무한히 낳을 수 없다면 인류는 새로워질 수가 없다. 낳아야 새로울 수가 있다. 그래서 유한자인 인간 안에서 계
속 낳고 또 낳아야 한다. 이에 대해 함석헌은 “새롭지 못한 순간 죽음이 보이고, 죽음이 보이면 불안이다.”(인간혁명의 철학2, 한길사, 1983, 220쪽)고 말한다. 낳음으로써 새로운 존재의 삶과 역사를 창조하지 못한다면 이미 죽은 것이다. 낳음의 연속은 논리적인 것이 아니라 실존적인 차원이다. 그래서 낳지 못한다면 새로울 것도 없으니 실존은 죽음의 한계 상황을 내다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될 때 즉각적으로 부닥치는 것은 인간의 실존적인 불안인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한계에 직면한 인간의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게 된다. 그것은 절대와 상대를 다 살리는 일이다. 절대는 단지 절대 그 자체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 안에서도 존재한다. 상대를 통하여 절대가 드러남으로써 초월자를 알게 된다. 인간이 마주 보고 있는 사물, 인간이 마주 서 있는 세계에 절대가 드러난다. 거기에 초월자의 영원이 살아 숨 쉰다.(인간혁명의 철학2, 한길사, 1983, 220-221쪽) 초월자는 상대에서 낳아야 살 수가 있다. 낳음은 생명이고 생명은 낳아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존재가 상대에서 낳을 수 있다면 절대는 영원하다. 상대는 초월자의 씨앗을 갖고 있으니 더불어 영원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말을 빌리면, 우리 안에서 신의 탄생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신의 거처인 우리 안에서 절대가 드러나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 안에서 신이 드러날 수 없으면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죽음의 실존으로 살아가는 인간은 불안에 휩싸이게 된다. 우리 안에 신이 없기 때문이다. 신학자 발터 카스퍼(W. Kasper)는 “인간의 완전한 실현으로 제공하는 신비”가 곧 “하느님”(W. Kasper, 박상래 옮김, 예수 그리스도, 분도출판사, 1991, 79쪽)이라고 했는데, 우리는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불완전성을 완전성으로 바꾸게 하는 존재는 초월자이다. 초월자는 인간 안에서 자신을 통하여 완전한 인간으로 실현한다.
지금 종교는 낡아가고 있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역사 속에서 새로운 낳음을 기대하고 있다. 낳음을 통하여 삶의 새로움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함석헌이 말한 것처럼, 새로움이란 피고 성장하고 완성하는 것이라면, 종교는 새로운 신의 탄생, 새로운 하느님의 아들을 낳음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유한한 인간 안에서 신의 아들의 낳음을 보고자 한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은 아닐 것이다. 종교가 새로워질 수 있는 길은 바로 종교 안에서 신의 아들의 낳음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해야 할 것이다.
*위 이미지는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2. 낡은 세계를 새롭게 하는 종교: 자신 안에서 신의 아들을 낳아야 한다!
새로움은 자기 존재 속에서 낳음이다. 초월자 속에서 낳아야 새로울 수가 있다. 초월자가 아니라면 낳을 수가 없는 것이다. 초월자만이 자기 자신을 낮출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버리고 새로운 존재로서의 아들을 낳을 수가 있다. 여기에 자기 부정이 있다. 초월의 자기 부정을 통하여 새로운 존재의 탄생을 가져오는 사건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도 초월을 지향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인간도 초월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통해서 새로운 탄생, 새로운 아들을 낳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무한자와 유한자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이다. 낳음의 절대적 주체로서의 초월자는 동시에 무한자이지만, 인간의 낳음은 초월자에 대한 인식과 경험을 통하여 낳음으로써 유한자인 것이다. 따라서 낳음의 연속성은 곧 인류가 새로워질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무한히 낳을 수 없다면 인류는 새로워질 수가 없다. 낳아야 새로울 수가 있다. 그래서 유한자인 인간 안에서 계
그런 의미에서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말을 빌리면, 우리 안에서 신의 탄생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신의 거처인 우리 안에서 절대가 드러나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 안에서 신이 드러날 수 없으면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죽음의 실존으로 살아가는 인간은 불안에 휩싸이게 된다. 우리 안에 신이 없기 때문이다. 신학자 발터 카스퍼(W. Kasper)는 “인간의 완전한 실현으로 제공하는 신비”가 곧 “하느님”(W. Kasper, 박상래 옮김, 예수 그리스도, 분도출판사, 1991, 79쪽)이라고 했는데, 우리는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불완전성을 완전성으로 바꾸게 하는 존재는 초월자이다. 초월자는 인간 안에서 자신을 통하여 완전한 인간으로 실현한다.
*위 이미지는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
김대식 선생님은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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