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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칼럼

돈, 동그랗지만 날카로움으로 감

by anarchopists 2019. 11. 15.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5/19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돈, 동그랗지만 날카로움으로 감



  인간에게 돈이란 무엇일까? 돈에 대한 경제학적인 정의는 차치하고, 돈의 본질을 차근히 물어보자. 우선 돈은 유형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동전과 지폐라는 독특한 물질로 구성된 것으로서 우리의 감각과 욕망을 자극한다. 또 다른 한편 돈은 무형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돈의 가치는 약속일 뿐, 그 수치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수학적 계산과 산정 방식은 추상적 개념에 불과하다. 그것은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것 같지만, 우리를 속이는 가상이다. 나아가 돈 자체는 또한 광기를 갖고 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광기를 전염시킨다. 소유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나은 광기, 소유를 하고 싶지만 소유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는 광기는 사람들을 전염시킨다. 그렇게 전염된 사람은 절망과 불안을 경험한다.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절망하고, 소유했기 때문에 상실될 것에 대한 불안을 갖게 된다.


  따라서 인간에게 있어서 돈은 절망이자 불안이다. 돈 자체를 소유하고 있다고는 하나 소유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든지 나를 충족시켜줄 수 있을 것 같지만 우리가 인식하는 만큼 쉽게 가시적 결과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절망이다. 또한 돈을 소유하고 있다고는 하나 일순간에 나의 곁을 떠나버리고 말 수도 있는 물질이고 계량화된 개념이다. 그래서 돈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 사회는 그러한 인간의 절망과 불안의 묘한 심리를 악용하고 있다. 그리고 광기를 전염시켜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하는 체제는 사실 모두가 이 세계를 초월하고 싶은 황홀경에 빠져 있는지도 모른다. 돈은 사람으로 하여금 세계를 초월하도록 만든다. 또 다른 세계를 꿈꾸면서 개인의 이상적 사회를 만들어 나간다. 그것은 공동의 이상사회가 아니라, 개인의 이상사회에 그리며 빠져-있음이라는 기이한 현상으로 치닫게 된다.


  돈으로 인해서 인간은 이 현실 세계의 고통을 초월하려고 하지만, 정작 돈 때문에 이 세계에 빠져-있음이라는 역설
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빠져-있음으로 해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빠져-있음으로 해서 그곳에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광적으로 중독되어 있다. 이렇게 돈은 광기를 동반한다. 즉 신비스러움, 성스러움으로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돈은 두렵다. 돈은 공포가 된다. 멀리 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가까이 하지도 못하는 거룩한 물질이 되는 것이다. 그 거룩한 물질, 어쩌면 모든 인류에게 금기시 된 물질을 건드리는 것은 저주가 될지도 모른다. 차라리 그 물질을 얻기 위해서 고행의 길을 가는 것이 나을 것이다. 역사 이래로 거룩한 물질은 항상 접근 불가라는 암묵적이고 비밀스러운 딱지가 붙어 있었다. 그래서 그 물질을 얻으려고 하는 자들은 항상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위험을 감수하기도 했다. 그만큼 그 물질은 인간에게 매력적이었던 것이다.


  나아가 그 매력은 마력이다. 돈의 매력은 치명적인 마력을 가지고 있다. 동그란 동전, 길쭉하면서 촉감이 묘한 지폐의 마력은 한마디로 추종이다. 그것을 추종하는 자는 모두가 똑같은 길을 따라가려고 할 것이고, 고행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돈은 고행이다. 고행을 해야 얻을 수 있는 물질이다. 고행을 하면서 얻으려 하는 돈은 자기 증식을 한다. 돈은 자기를 늘이고 한없이 뻗쳐 나가려고 한다. 고행을 하는 사람은 바로 절벽 아래로 한없이 뻗쳐 나간 그 위험천만한 줄기와 뿌리를 얻으려고 하기 때문에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광기를 알아차리지 못하면서도 손을 뻗고 마는 것이다.


  지난 번 정부에서는 부실 저축은행을 정리하겠다고 발표를 하였다. 다행스럽게도 뱅크런(bank run․예금 대량 인출 사태) 조짐이 보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제 매스컴은 그 이후의 사태가 어떻게 되었는지 관심을 갖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돈의 마력에 빠져-있음의 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의 밑바닥에 얼마나 날카로운 죽음의 그늘이 숨겨져 있는지도 모르는 채 말이다. 돈은 돌고 도는 동전이나 순환을 하는 물질만이 아니다. 돈은 날카로움이다. 돈은 우리의 정신을 날카로운 곳을 향해 가게 만든다. 은행은 그것을 감추고 안정적이고 안전한 유토피아만 말해준다. 정부는 사람의 좌절, 두려움, 공포, 불안을 조작하여 기어코 국민들이 돈을 숭배하도록 만든다. 어떤 사람은 뼈아픈 고행을 하면서, 또 다른 어떤 사람은 그 같은 고행을 덕보고 거룩한 물질을 일순간에 손에 넣는다. 그래서 돈은 정직하지 못한 속임수가 너무나 많다. 그래도 사람들은 오늘도 고행을 마다하지 않고 금기가 되어 버린 거룩한 물질을 소유하기 위해서 모진 애를 쓴다.




*위 이미지는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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