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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강좌

종교는 도덕을 구현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by anarchopists 2019. 11. 22.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3/03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의 눈으로 보는 동양철학}


유가철학의 종교관-‘인’(仁)의 재현(再現: represent)



1. 유가철학, 종교인가? 철학인가?

  유가철학이 조선조의 통치이념과 생활 철학으로 자리 잡으면서 우리나라에 적지 않게 정신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반드시 국가의 통치이념과 삶을 이끌어 가는 생활원리만이 아니었음을 잘 지적하였던 초기 선교사의 관찰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것은 유가철학이 갖고 있는 보편적 핵심이 ‘인’으로 드러난 것일 뿐만 아니라  ‘인’의 구현, 인의 외현이 종교적 심성을 낳은 것이다. 사실 유가철학이 단지 철학인가 아니면 종교인가를 결정짓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얼마 전 유학을 여타의 종교들처럼 하나의 종교임을 선언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유학을 종교로 보는 시각이 그리 보편화되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공자가 생전에 유학을 종교화하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면도 있기 때문에 유학을 단순히 종교라고 단정 짓는 것은 섣부른 해석이라고 볼 수도 있다.


  유학이 종교인가 아니면 철학인가 하는 것은 먼저 ‘종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구함으로써 보다 명료해질 수 있을 것이다. 종교(宗敎)란, 마루 종(宗)자와 가르침을 의미하는 교(敎)로 이루어져 있다. 문자상의 의미로는 가르침의 으뜸이 되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또한 종교를 나타내는 영어의 religion은 ‘연결(連結)’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종교는 인간이 살고 있는 현세와 내세를 연결하는, 차안과 피안을 연결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종교를 규정하고자 하는 것은 연구자 또는 관찰자가 자신의 탐구를 진행시키는 데 필요한 연구 대상의 규정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종교의 정의는 한갓 작업가설에 지나지 않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또한 유학이 여타의 종교들처럼 초월자, 내세, 영혼불멸 등 뚜렷한 종교성을 드러내고 있지 않다고 여기는 바, 필자는 종교의 정의를 통한 작업가설을 시도하기보다는 유학의 가르침, 즉 천(天)에 대한 추상적 체계를 기술하는 데 그칠 것이다. 다만 공자가 모든 사물과 현상을 인의 관점으로 보았기 때문에 하늘을 인의 종교적 외현으로 보고자 한다. 그런 면에서 굳이 유학과 관련하여 종교의 정의를 내린다면, 종교는 인하는 마음이며, 그런 의미에서 공자의 신앙 대상은 인(仁)이다. 따라서 공자의 종교관은 “인교”(仁敎)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방동미(方東美)가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종교와 철학이 추구하는 바가 다르고 또한 종교적 대상이 철학에 의해 이성적 사유의 대상으로 전락하여 신비적 존재가 “은퇴한 상제”(리쾨르의 표현을 빌려)라고 주장한 것은 원시 유가의 상제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즉, 종교가 하향 수직적 방식의 방법론을 택한다면, 철학은 상향 수직적 방법론을 통해 신비에 도달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유교는 일상생활을 떠나지 않는다. 괴이한 것은 인간의 공허한 마음에서 일어나는 환상이라 생각한다. 어떤 신비적 사실도 윤리성을 벗어나면 확고하게 거부한다. 신비성의 근원인 하늘이 결코 비윤리적 형식으로 자신을 나타내지 않는다고 믿는다. 신비성이 합리성이나 윤리성과 상반된 것이라고 보는 입장이 아니라 서로 결합되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러한 입장과 더불어, 유학에서는 남상호 교수가 정당하게 해석한 것처럼, 원시 종교의 상제(上帝)는 ‘은퇴한 상제’가 아니라, 인을 통해 상제가 이 땅 혹은 인간의 삶 속에 관계적 존재로 구현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상제의 신비적 경험이 사랑으로 구현되지 않는 한 그것은 상제를 신비로 경험했다 볼 수 없을 것이며, 그 상제는 우리와 하등의 관계가 없는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종교는 하늘에 있는 형이상학적 존재를 섬기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기 현재적 존재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에 생생하게 드러나야만 한다. 따라서 유학은 도덕이라는 바탕에 종교라는 색채가 드러난 ‘도덕적 종교철학’이라고도 불릴 수 있을 것이다.



2. 유가철학의 종교적 이해

  일찍이 공자는 하늘을 가리켜 인격을 가진 존재라고 보았다. 그래서 하늘은 인간의 사회와 자연을 다스리는 주재로 일컬어진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기도할 곳도 없다.”라는 말은 하늘에 대한 경외와 두려움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위해 공자의 종교관 중에 귀신에 대한 그의 이해를 살펴보면 보다 명확할 것 같다. “제사를 지낼 때는 조상이 계신 듯이 하셨으며, 신을 제사지낼 때에는 신이 계신 듯이 하였다.” 이는 그리스도교, 특히 개신교에서는 유교(유가철학)가 조상을 숭배한다하여 배척하는 민감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는 우리가 제사를 지낼 때, 우리의 조상이나 신이 와 있다고 한 것이 아니라, ‘계신 듯이’라고 한 점에 주목을 해야 한다. 아마도 공자가 귀신의 존재를 믿었다면 ‘와 있다’고 했겠지만 ‘계신 듯이’라고 했듯이 반드시 공자가 귀신의 존재를 인정했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자로가 귀신을 섬기는 것에 대해 여쭈었을 때에 “사람을 잘 섬기지도 못한다면 어떻게 귀신을 섬기겠는가?”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살아 있는 사람에게 잘 하는 것이 제사의 진정한 의미임을 깨우쳐 주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제사는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는 의례의 기능을 가진다. 그런데 이 제사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즉, 제사 의례는 죽은 자 중심이 아니라 산 자, 살아 있는 부모 중심이라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인(仁)은 초월자에게 향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있는 부모와의 관계로 향해 있는 것이다. 하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인간은 땅에서 가시적 존재인 부모에게 잘 함으로써 인하는 것이고 하늘의 뜻(命)을 실현하는 것임을 알게 해준다. 그러므로 유학에서 신을 이야기한다고 해도 그것은 인간이 출발점이 되는 것이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인의 외양적 표현, 덕행의 표현으로 보아야 한다. 다만 신비적인 요소는 있을지라도 미신적인 요소는 없다할 것이다. 첸리푸는 자신의 다른 책에서 하늘이 갖고 있는 이러한 도덕적 의미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


인간을 포함한 우주 만물은 ‘하늘’(天)을 뿌리로 하여 태어난 자녀들이다. 천은 지금 우리의 공간상에 떠 있는 ‘물리적 하늘’(sky)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모든 자연 현상을 뜻하는 물리적 개념일 뿐만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운행하는 원리와, 이들이 따라야 하는 도덕적 원리로서 자리하는 ‘관념적 천’(heaven)의 개념이다. 이러한 천의 자녀인 인간과 사물은 우주의 원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숭고한 존재로서 자리한다. 이 숭고한 존재들은 자신 안에 담겨 있는 우주론적 원리대로 살아갈 때, 그 존재는 자신이 짊어지고 가야 할 존재 의무를 실행할 수 있다. 바로 ‘존재의 올바른 길’(道)을 벗어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그 자리를 동북아시아 유교문화는 ‘일상’에서의 공생․공존․공진화의 길(도)로 바라본 것이다(굵은 글씨는 논자의 강조).


공자의 종교관은 한 마디로 ‘인’의 외현, 즉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깨우쳐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고 제사와 귀신의 관계에서 하늘로부터 땅으로 관심을 환기시킨 것은 죽음 이후의 인간의 삶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라기보다 지금 현재의 삶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긴 공자의 마음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자의 종교관은 내가 지금 여기에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위해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하는 인을 밖으로 나타낸 인간의 도리와 행위를 말한다. 대부분의 종교들이 인간의 현실보다는 내세에 치중해 있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그래서 종교인들은 현실에서 부딪치는 모든 삶을 용기 있게 맞서기보다는 회피하며 단지 내세를 위해 감내하려고만 한다. 그러나 공자는 인간 자신이 처해 있는 모든 삶에서 빚어지는 문제를 관계에서 풀어가려고 한다.


  유학이 종교로 비춰지는 것은 그것이 지향하고 있는 것이 도덕적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공자가 이전의 종교 중심의 사회에서 인(仁)을 통해 탈신중심사회로 나아가려는 마치 소크라테스적 전회를 시도한 것이다. 그는 유학을 종교가 아닌 윤리, 도덕적 체계를 가지고 천(天)을 추상적으로 체계화하였다. 그렇다면 공자의 눈으로 오늘의 삶을 직시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仁]을 통해 유학의 종교성을 구현해보면 어떨까? 그것이 곧 하늘을 섬기는 것 아니겠는가.



*위 이미지는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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