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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강좌

인과 예를 갖춘 사람

by anarchopists 2019. 11. 22.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2/29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의 눈으로 보는 동양철학]


《論語》, <雍也篇>


제5장 子曰回也는 其心三月不違仁이오 其餘則日月至焉而已矣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顔回는 그 마음이 3개월 동안 仁에서 떠나지 않았으나 그 나머지 사람들은 하루나 한 달 정도 거기에 이를 뿐이다.”).
해설: 안회는 경쟁심이 없이 경건한 마음 상태를 보존하는 것을 석 달 정도 지속할 수 있으나, 나머지 사람들은 하루 아니면 한 달 정도 지속할 수 있을 뿐이다. 제자들의 학문의 수준을 이야기한 것이다.


제16장 子曰質勝文則野요 文勝質則史나 文質彬彬然後君子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였다. “바탕이 외관을 이기면 촌스럽고 외관이 바탕을 이기면 호화스럽다. 외관과 바탕이 어울린 후에야 군자이니라.”).
해설: 禮를 배워서 잘 실천할 수 있게 되면 교양미를 갖춘 인격자로서 세상일을 잘 분별할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예를 실천하는 것이 예를 형식만이고 거기에 예의 정신이 들어 있지 않으면 외형적으로만 교양인이지 참다운 교양인이 아니다. 이런 사람의 모습을 여기서는 ‘외형만 호화스럽다’는 의미에서 史라고 하였다. 예의 정신을 추구하다가 그것이 인간의 본마음임을 알게 되고 또 그 본마음은 모든 사람의 마음과 같은 것임을 알아서, 본마음을 실천한 결과 남의 일과 자기 일을 잘 구별하지 못하고 사리를 잘 분별하지 못하게 된 상태를, 여기서는 ‘촌스럽다’는 의미로 野라고 하였다. 史가 知者의 부류에 속한다면 野는 仁者의 부류에 속한다. 그런데 여기서 보면, 본마음을 실천하는 삶이 곧 남과 다르게 주어진 자신의 직분에 충실함으로써 전체와 조화를 이루게 되는 삶이 되는 경우가 최선이 된다. 文과 質이 조화를 이룬, 바꾸어 말하면 仁과 知를 완벽하게 겸비한 삶을 聖人이라 하고, 조금 못 미친 사람을 賢人이라고 하는데 성인과 현인을 포함해서 말할 때 君子라고 한다.


제17장 子曰人之生也直이니 岡之生也는 幸而免이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사는 것은 정직함이니 속이는 사람들이 사는 것은 요행이 [죽음을] 면한 것이다).
설명: 사람이 살아가는 바탕은 정직함이다. 사기성이 있는 사람은 결코 살아갈 수 없다. 그 중에 혹 있다 하더라도 요행이 죽지 않았을 따름이지 정상은 아니다.


제18장 子曰知之者不如好之者요 好之者不如樂之者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거워하는 것만 못하다)
설명: 학문은 禮를 배우는 데서 시작된다. 그런데 학문이 깊어지면 무엇 때문에 예를 하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된다. 또한 사람을 포함한 만물의 삶을 영위하는 天命이 곧 나의 주체임을 알게 되어, 전체의 삶을 영위하는 입장에서 나 개인의 삶을 결정하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죽음까지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게 된다. 삶을 즐거움 속에서 영위되고 예의 실천은 즐거움의 표현수단이 되는 것이다.


제19장 子曰中人以上은 可以語上也어니와 中人以下는 不可以語上也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중간쯤 되는 사람 이상은 形而上者를 말할 수 있으나 중간쯤 되는 사람 이하는 形而上者를 말할 수 없다.”)
설명: 구체적인 형식으로 가르칠 수 있는 것은 형이하자이고 구체적으로 가르칠 수 없는 것은 형이상자인데, 수준이 중간쯤 되는 사람에서 그 이하는 예의 형식 등 형이하자에 속하는 것을 가르쳐야지 형이상자를 가르치면 혼란을 일으키므로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제20장 樊遲問知한대 子曰務民之義 敬鬼神而遠之면 可謂知矣니라 問仁한대 曰仁者先難而後獲이면 可謂仁矣니라
(번지가 知에 대해서 물으니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백성들을 의롭게 만드는 데 힘쓰고,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하면 知라고 할 수 있다.” 인에 대해서 물으니 말씀하셨다. “仁者의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 어려운 일을 먼저하고 얻는 것을 뒤에 하면 인이라 할 수 있다.”)
설명: 지자의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은 남과 나를 남남으로 생각하므로 남의 것과 나의 것을 잘 분별하고, 분명하게 따지는 합리적인 사고를 한다. 또한 남과 나를 하나로 여김으로써 나타날 수 있는 남에 대한 동정심과 의리 정신이 빈약하기 쉬우며, 비합리적인 요소를 따지고 밝히는 능력이 부족하기 쉽다. 그런데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지자의 단점을 취하지 않고 장점을 최대한 살리는 사람이다. 또한 인자의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은 남과 나를 하나로 여김으로써 남에 대한 동정심과 의리정신이 발달하며 평화를 애호하게 되는 점이다.


제21장 子曰知者는 樂水하고 仁者는 樂山하며 知者는 動하고 仁者는 靜하며 知者는 樂하고 仁者는 壽하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지자는 물을 좋아하고 인자는 산을 좋아하며 지자는 움직이고 인자는 고요하며 지자는 즐기고 인자는 오래 산다.”)
설명: 인자의 부류에 속하는 사람은 종교적 성향이 있으므로 나와 남의 관계보다 나와 하늘의 관계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 수직적 사고가 발달한다. 모든 가치를 위로 두기 때문에 산을 좋아하고 자주 산에 오른다. 지자의 부류에 속하는 사람은 남과 나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 대하여 늘 관심을 갖는다. 나와 너의 횡적관계를 중시하므로 자신을 낮추는 겸허한 자세가 필요하기 때문에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하여 물을 좋아하는 것이다. 지자의 부류는 호기심이 많아 이것저것을 습득하기 위해 돌아다니나 인자는 고요하다. 지자는 육체의 노동을 귀중하게 생각하여 노동의 과정 하나하나를 즐기나 인자는 육체의 노동을 경시하는 경향이 적어 남과 경쟁하지 않으며 과탐, 과식하지 않고 오래 건강을 유지한다.


제23장 子曰觚不觚면 觚哉觚哉아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모난 술잔이 모나지 아니하면 모난 술잔이겠는가? 모난 술잔이겠는가?”-李基東; “고라는 술잔을 고에 맞게 쓰지 않는다면 고라고 하겠는가!”)
설명: 8각형 정도로 모가 나 있는 술잔(또는 제사에 쓰는 모가 난 그릇)을 觚라고 하는데, 나중에는 각을 없애고 원형으로 만들어서 사용하면서 그것을 그대로 고라고 부르자, 공자가 그 명칭의 잘못됨을 인하여 지적한 것이다. “고라는 술잔은 모가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데 이제 둥글게 만들어 쓰면서 고라고 부르니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임금이 임금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면 임금이라 말할 수 없고 신하가 신하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면 신하라 할 수 없다. 또 다른 해석은 황간에 따르면, 술잔을 한 번 바칠 때에 賓과 주인이 서로 백 번 절을 하는 것이 고라는 술잔을 사용하는 예법이다. 그런데 공자 당시에 고를 사용하여 술을 마시면서 이러한 예법을 지키지 않고 술에 취하여 절도가 없었다. 공자는 고라는 술잔으로 술을 마시면서 이러한 예법을 지키지 않는 상황을 비판하는 것이다.


제25장 子曰君子博學於文이요 約之以禮면 亦可以不畔矣夫인저
(공자께서 말씀하였다. “군자가 문에 대하여 널리 배우고 요약하기를 예로써 한다면, 또한 (도에서) 어긋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설명: 군자는 우선 글로 표현되어 있는 서적을 통하여 정치, 경제, 역사, 문학 등에서 나타나는 사람이 사는 방법을 두루 섭렵해야 하지만, 행동을 할 때에는 그 중에서 가장 보편타당한 것을 집약하여 그것을 실천해야 하는 것이니, 그것이 바로 성인의 행동거지로 기준을 정한 예이다. 참다운 삶, 즉 도를 모른다 하더라도 예를 실천하기만 하면 외형적으로는 도를 실천함으로써 나타나는 형식과 일치하므로 도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제26장 子曰南子하신대 子路不說이어늘 夫子矢之曰予所否者인댄 天厭之, 天厭之시리라
(공자께서 남자를 만나시자, 자로가 기뻐하지 않았다. 이에 공자께서 맹세하셨다. “내가 잘못한 것이었다면 하늘이 나를 미워할 것이다. 하늘이 나를 미워할 것이다.”)
설명: 공자께서 남자를 만나자 다른 제자들은 감히 어쩔 수 없지만 나이가 많고 용기가 있는 자로는 불쾌함을 표시하였다. “품행이 좋지 아니한 여자와 무엇 때문에 만납니까?”하고 항의하는 의미였다. 공자는 하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함이었지 다른 뜻이 없었다.


제28장 子貢曰如有博施於民而能濟衆이면 何如하니잇고 可謂仁乎잇가 子曰何事於仁이리오 必如聖乎인저 堯舜도 其猶病諸시니라 夫仁者는 已欲立而立人하며 已慾達而達人이니라 能近取譬면 可謂仁之方也이니라
(자공이 말하였다. “만약 백성에게 널리 은혜를 베풀어 많은 사람을 구제할 수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인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찌 인하다고 할 수 있느냐, 반드시 성에 속한 일(聖人)인 것이다. 요순도 (그렇게 못하는 것을) 부족한 것으로 여겼다. 대저 인자는 자신이 서고자 할 때 남을 세우며 자신이 통달(이루고자)하고 싶을 때 남도 통달하게(이루게) 한다. 가까운 데서 취하여 알 수 있다면 인을 실천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설명: 자공에 대한 공자의 대답은 예를 배우고 실천하며 도를 알고 덕을 밝혀 궁극적으로 천명을 깨달아 학문을 완성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도 자기가 깨달은 바의 천명을 깨닫게 하여, 참다운 삶을 유도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예를 실천할 수 있는 지와 남을 나처럼 사랑할 수 있는 인을 겸비한 사람만이 가능한 것이므로 성인의 역할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인자는 남을 자기처럼 사랑하는 사람이므로 내가 서고(立身) 싶을 때 남도 세워주고 내가 통달하고 싶을 때 남도 통달하게 해주는 것이다. 내 마음과 다른 사람의 마음은 같은 것이므로 가까이에 있는 내 마음을 취해서 헤아리면,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알 수 있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면 인을 실천할 수 있다.



*위 이미지는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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