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4/04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은 바로 종교인이 국가와 정치에 대해서 얼마나 맹목적이고 우매한가를 비판한 적이 있다. “정부가 스스로 겸손히 자기의 온전치 못함을 인정하면, 불완전하면서도 나라를 대표할 자격이 있지만, “내가 곧 국가다”하면 모든 능한 것이 악이 돼버린다... 정부주의란 자기가 곧 국가요 모든 것은 곧 자기를 위해서 있는 것을 생각하는 정부다. 즉 정부의 우상화다. 종교는 그런 정부를 섬겨서는 아니 된다는 말이다. 거기 대해 싸워 씨을 자유하게 하는 것이 책임이다. 그런데 지금 있는 종교치고 정부 섬기지 않는 종교가 있을까? 이름은 하나님을 섬긴다 하지만 그 실지를 보면 다 권력 밑에 엎디어 있다... 그러기 때문에 종교의 사는 길, 문명의 구원되는 길은 다시 개혁되는 것밖에 없다.”(함석헌, 『함석헌전집 「역사와 민족9」』, 한길사, 1983, 273-274쪽)
함석헌이 말한 것처럼, 종교인은 국가의 수장을 혹은 국가의 머슴인 국회의원을 뽑는 데에 있어서 반드시 종교인 되어야 한다는 환상을 접어야 한다. 그것이 정부나 정치인을 우상으로 만드는 길임을 깨달아야 한다. 물론 국회의원이 될 재목들 중에는 종교를 갖고 있으면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헌신하고 정말 머슴이 되려고 하는 이들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유권자로서 종교인이 가져야 할 자세는 종교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나라를 위해서 머슴이 될 것이라고 판단되는 후보에게 표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명심해야 할 것은 유권자로서 종교인은 종교정당인 혹은 종교정치인을 뽑아서 그를 섬기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부나 국가가 자신이 믿는 종교적 신념에 의해서 운영되어야 한다는 오만도 버려야 한다. 자칫 그렇게 될 때 모든 사람들은 그러한 종교에 머리를 숙여야 하고 그러한 종교 권력을 행사하는 권력자가 되기 십상이다. 우리는 현 정부에서도 그러한 경험을 여러 차례 했고, 결국 그로 인해서 종교 갈등이 더욱 심화되지 않았는가.
국민의 머슴을 뽑는 데 있어 종교의 신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유권자가 모든 정치인에 대해서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려고 하는가와 마음이 치우침이 없는 평정을 가지고 판단하려고 하는 자세이다. 지금부터라도 공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후보 한 사람 한 사람을 찬찬히 살피면서 지역과 국가를 위해서 참되게 일하고자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분석하고 또 분석해야 한다. 종교가 사는 길은 특정 종교의 신념을 가진 정당인을 많이 배출시키는 것이 아니며, 국가를 특정 종교의 신념에 의해서 운영되기를 염원하는 것 또한 아니다. 진정 종교가 사는 길은 종교인 각자가 자신의 (신앙)의식을 개혁하고, 나아가 정치의식과 행위를 개혁하는 일일 것이다.
따라서 이번에 공정한 선거를 위해서 각 종단의 대표자나 지대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성직자의 발언은 매우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법회나 미사, 그리고 예배 중에 특정 종교를 옹호하는 발언은 부처님의 뜻도, 하느님의 뜻도 아니다. 그저 자신의 종교적 신념이 반영된 사적인 의견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법문(설법), 강론, 설교는 자칫하면 공적인 의사결정을 하게 만드는 그야말로 우매한 결과를 낳게 될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성직자는 공인이다. 그렇다면 그가 발언하는 말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인의 표심을 얻기 위해서 절이나 성당이나 교회를 찾아가 인사를 하는 것을 용인하는 것도 처신을 잘 하는 것이라 볼 수 없다. 각 장소의 목적을 분별하지 못하는 이가 때와 장소를 가릴 뿐만 아니라 남을 배려하고 전체의 관계를 생각하는 정치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할 것이다.
종교인의 한 표에는 신의 뜻을 묻고 행사하는 신중한 마음이 담겨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지 않고 아무런 생각이 없이 이미 마음에 후보를 결정해버린 유권자가 있다면 먼저 그것이 편견의 마음이 아닌 신의 마음인지를 정직하게 헤아려 봄이 어떨까? 우리나라의 진정한 정치 현실을 위해서 말이다(2012/04/04).
*위 이미지는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
종교는 선거를 위한 객관성과 평정을 유지해야 한다!
국회의원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정치권의 여러 사건들로 인한 후보들간의 공방전으로 정작 시민들은 그들의 공약과 정책이 무엇인지, 나아가 후보의 됨됨이는 어떤지에 대한 분석조차도 정확히 파악이 안 된 상태다. 이러한 때에 가장 우려가 되는 것은, 종교인이 갖고 있는 편견이다. 종교인이니까 무조건 종교정당과 종교정당인에게 표를 준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종교인이라고 해서 반드시 정치적인 능력이 있다고 믿어서도 안 되며, 더군다나 그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인격을 소유한 정치인이라는 사실도 잘 가늠이 되지 않으니 꼼꼼히 따져서 냉철한 정치이성으로 판단을 해야만 한다.
함석헌은 바로 종교인이 국가와 정치에 대해서 얼마나 맹목적이고 우매한가를 비판한 적이 있다. “정부가 스스로 겸손히 자기의 온전치 못함을 인정하면, 불완전하면서도 나라를 대표할 자격이 있지만, “내가 곧 국가다”하면 모든 능한 것이 악이 돼버린다... 정부주의란 자기가 곧 국가요 모든 것은 곧 자기를 위해서 있는 것을 생각하는 정부다. 즉 정부의 우상화다. 종교는 그런 정부를 섬겨서는 아니 된다는 말이다. 거기 대해 싸워 씨을 자유하게 하는 것이 책임이다. 그런데 지금 있는 종교치고 정부 섬기지 않는 종교가 있을까? 이름은 하나님을 섬긴다 하지만 그 실지를 보면 다 권력 밑에 엎디어 있다... 그러기 때문에 종교의 사는 길, 문명의 구원되는 길은 다시 개혁되는 것밖에 없다.”(함석헌, 『함석헌전집 「역사와 민족9」』, 한길사, 1983, 273-274쪽)
함석헌이 말한 것처럼, 종교인은 국가의 수장을 혹은 국가의 머슴인 국회의원을 뽑는 데에 있어서 반드시 종교인 되어야 한다는 환상을 접어야 한다. 그것이 정부나 정치인을 우상으로 만드는 길임을 깨달아야 한다. 물론 국회의원이 될 재목들 중에는 종교를 갖고 있으면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헌신하고 정말 머슴이 되려고 하는 이들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유권자로서 종교인이 가져야 할 자세는 종교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나라를 위해서 머슴이 될 것이라고 판단되는 후보에게 표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명심해야 할 것은 유권자로서 종교인은 종교정당인 혹은 종교정치인을 뽑아서 그를 섬기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부나 국가가 자신이 믿는 종교적 신념에 의해서 운영되어야 한다는 오만도 버려야 한다. 자칫 그렇게 될 때 모든 사람들은 그러한 종교에 머리를 숙여야 하고 그러한 종교 권력을 행사하는 권력자가 되기 십상이다. 우리는 현 정부에서도 그러한 경험을 여러 차례 했고, 결국 그로 인해서 종교 갈등이 더욱 심화되지 않았는가.
국민의 머슴을 뽑는 데 있어 종교의 신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유권자가 모든 정치인에 대해서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려고 하는가와 마음이 치우침이 없는 평정을 가지고 판단하려고 하는 자세이다. 지금부터라도 공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후보 한 사람 한 사람을 찬찬히 살피면서 지역과 국가를 위해서 참되게 일하고자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분석하고 또 분석해야 한다. 종교가 사는 길은 특정 종교의 신념을 가진 정당인을 많이 배출시키는 것이 아니며, 국가를 특정 종교의 신념에 의해서 운영되기를 염원하는 것 또한 아니다. 진정 종교가 사는 길은 종교인 각자가 자신의 (신앙)의식을 개혁하고, 나아가 정치의식과 행위를 개혁하는 일일 것이다.
따라서 이번에 공정한 선거를 위해서 각 종단의 대표자나 지대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성직자의 발언은 매우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법회나 미사, 그리고 예배 중에 특정 종교를 옹호하는 발언은 부처님의 뜻도, 하느님의 뜻도 아니다. 그저 자신의 종교적 신념이 반영된 사적인 의견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법문(설법), 강론, 설교는 자칫하면 공적인 의사결정을 하게 만드는 그야말로 우매한 결과를 낳게 될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성직자는 공인이다. 그렇다면 그가 발언하는 말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인의 표심을 얻기 위해서 절이나 성당이나 교회를 찾아가 인사를 하는 것을 용인하는 것도 처신을 잘 하는 것이라 볼 수 없다. 각 장소의 목적을 분별하지 못하는 이가 때와 장소를 가릴 뿐만 아니라 남을 배려하고 전체의 관계를 생각하는 정치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할 것이다.
종교인의 한 표에는 신의 뜻을 묻고 행사하는 신중한 마음이 담겨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지 않고 아무런 생각이 없이 이미 마음에 후보를 결정해버린 유권자가 있다면 먼저 그것이 편견의 마음이 아닌 신의 마음인지를 정직하게 헤아려 봄이 어떨까? 우리나라의 진정한 정치 현실을 위해서 말이다(2012/04/04).
*위 이미지는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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