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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칼럼

국회의원 후보자, 그들의 본질을 꿰뚫어 봅시다.

by anarchopists 2019. 11. 20.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3/29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섹스투스 엠페리쿠스, 사람을 섣부르게 피상적으로만 판단하지 말아라!



  고대 그리스의 회의주의자이며 의사인 섹스투스 엠페리쿠스(Sextos Emperikos/ Sextus Empericus, 160-210)는 이른바 피론주의(Pyrrhonism)에 속하는 철학자라 볼 수 있다. 피론주의자들은 우리가 외부 대상의 실제 모습에 대해 정확한 앎을 획득할 수 없으므로, 외부 대상에 대해 일체의 판단을 유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될 때 인간은 아타락시아(ataraxia), 곧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인간의 고통이 외부 세계에 대한 집착에서 발생하는 인식의 독단주의에서 비롯된다고 보기 때문에 외부 세계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면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얻는다고 본 것이다. “판단유보(epoche)는 사고(dianoia)의 정지이며, 이 때문에 우리는 어떠한 것도 거부하지도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마음의 평안은 마음에 동요가 없는 상태 혹은 고요한 상태이다.” 따라서 그들의 철학적 모토는 ‘회의주의의 길이며, 탐구의 길이고 판단 유보의 길’(epektike)로 불리게 되었다.

외부 대상 혹은 외부 세계에 대해서 회의를 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보이는 것을 기술하고, 독단적 믿음을 가지지 않고서(adoxastos) 자신이 느끼는 바를(pathos) 보고하며(apangelei) 외부 대상에 대해서 결코 확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의 감각과 인식을 현혹하는 외부 대상은 실제로도 우리 눈에 보이는 모습 그대로 존재하는가에만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회의주의자들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회의주의는 독단적인 견해(doxa)와 관련
해서는 마음의 평안을 추구하고, 우리에게 불가피하게 주어지는 것들에 대해서는 감정의 순화(metriopatheia)를 목표로 삼는다. 이들의 철학은 인간에게 주어지는 감각적 표상들을 평가해서 어떤 감각 표상이 참인지 또는 어떤 감각 표상이 거짓인지를 파악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마음의 평안을 얻으려고 하는 데에 있다. 단적으로 말해서 인간은 외부 대상이나 외부 세계에 대해서 판단을 유보하면 마음의 평안이 생긴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 인간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대상과 관련을 맺게 되는데 어떤 사물에 대해서든 반드시 좋고 나쁨에 대한 판단을 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 회의주의자들의 입장은 오히려 그러한 사물이나 대상들에 대해서 분명한 입장을 철회하게 되면 고통이나 두려움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외부 대상의 각각이 나에게 어떻게 보이는가에 대해서는 말할 수가 있다. 하지만 그 대상이 본성상 어떠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는 좋은 방법임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대상에 대한 감각과 감각 표상은 인간 자신을 속이고 독단으로 흐르게 함으로써 인식을 흐리게 하고 그에 따라 불안이 생길 수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은 끊임없이 의심하고 회의해야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사과를 가지고 그 맛을 느끼고 향유를 한다고 한들 모두가 다 향기롭다거나 달콤하다고 말하지 않고 어떤 사람은 고통스럽다고 표현하는 사람이 있을 수가 있다. 주어진 대상이나 사물에 대한 감각, 감각 표상은 그만큼 다양하다. 마찬가지로 사랑이나 증오하는 감정뿐만 아니라 고기라는 특정 음식의 기호에 대해서도 다른 반응들이 나타날 수가 있고 다르게 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감각, 감각 표상 혹은 판단을 타인에게 강요하거나 보편화 할 필요는 없다. 그러한 것이 바로 독단으로 나아가게 되는 아집이 될 수 있다. 다만 각자의 느낌과 감정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감각, 감각 표상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겸허한 생각을 가지고 판단을 유보해야 한다. 그래야 타인에 대해서도 자유로울 수 있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여유와 평안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다. 인간관계에서든지 우리가 접하는 대상이나 사물에 대해서든지 간에 섣부른 판단을 자제하고 유보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국회의원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후보들에 대한 입장과 그들의 피상적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본성과 속내는 완전히 인식하기는 어렵다. 그럴수록 유권자들은 마음의 평정과 평안을 추구하기 위해서라도 그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 정치와 정치가의 본질을 꿰뚫어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본질을 보지 못하면 독단이나 편견에 사로 잡혀서 훗날 정치의 중요한 향방을 결정짓는 투표에 실수를 할 수 있는 노릇이다. 따라서 그들의 외모, 언어, 표정, 감정, 복장 등으로 인한 감각적 편견에서 자유롭고 의식의 사태를 본질 직관하기 위해서 “판단을 중지하라”고 외치며 회의주의자를 계승한 에드문트 후설(E. Husserl)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위 이미지들은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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