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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강좌

종교간 대화를 향하여

by anarchopists 2019. 11. 23.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2/21 06:00]에 발행한 글입니다.

종교간 대화를 향하여


  종교에서 초월적 실재를 지칭하는 낱말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신, 하나님, 하느님, 알라, 브라흐만, 부처(불성), 하늘(천), 상제, 한울님, 도(道) 등 초월적인 존재내지는 절대자는 우리가 ‘없지 않고 있다’라고 고백한다. 그것을 초월자, 혹은 절대자, 궁극적 존재라고도 말한다. 그런데 종교인은 종종 초월적 존재를 만났다고도 하고 체험했다고도 말을 하는데, 그 말에는 자신의 실증적인 결과나 모습을 가정한다. 예컨대 선함, 경건, 자비, 사랑 등 각기 종교가 추구하는 근본 바탈이 없으면 그것은 참이 아니다. 설령 내가 특정 종교를 갖고 있고 그 종교의 교리나 신앙 체계를 믿는다 하더라도 여전히 참이 아닌 나로 있는 것이다. 종교적인 용어로 ‘회심’(回心, metanoia)이 안 된 것이다. 마음 바꿈, 정신 바꿈, 태도 바꿈이 나의 사건으로 생활화 되지 않은 것이다.


  각 종교에는 신을 만난 것에 대한 고백과 표현들이 있다. “사랑한다”, “죄인이다”, “찬양한다”, “기도한다”, “자선을 베푼다” 등. 이러한 언어와 표현들은 다시 고도의 신학적 언어로 규정되어 “예수는 구원자이시다”, “하나님은 삼위일체이시다” 등의 도그마(dogma)가 생겨난다. 더 나아가서 종교는 경전 속의 신화(神話)를 전례와 삶으로 반복적으로 재현한다. 그리스도교의 경우 창세 이야기, 에집트 탈출 이야기, 동정녀 탄생 이야기, 수난과 부활 이야기 등은 중요한 전례이자 삶으로서 표현된다.


  종교는 윤리적 실천을 통해서 자신의 본래성을 드러낸다. 종교인 스스로 이웃 사랑, 불살생, 자비, 인 등을 실천하면서 자신의 종교적 윤리를 승화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러한 종교의 윤리적 행위를 통해서 종교성의 참과 거짓을 구분하고자 한다. 그뿐만 아니라 종교는 동일한 믿음 체계를 갖고 있는 일정한 공동체를 형성한다. 그리스도교의 교회당 혹은 성당, 불교의 승가(사찰), 이슬람의 움마(모스크) 등이 그것이다. 그 곳에서 신앙 체계를 교육하고 전수하면서 종교 고유의 전통을 유지 계승하는 것이다. 종교란 이렇게 초월적 실재를 경험한 인간의 내면적인 신앙의 언어, 윤리, 공동체로 체계화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을 역사 안에서 하나하나 생길 때마다 이름 붙이니 그리스도교, 불교, 도교, 천도교, 유교 등이 된 것이다. 형식은 다르나 모든 신앙 내용은 사랑, 자비, 인 등을 표방하고 있는 하나의 믿음 공동체임을 알 수가 있다.


  철학적 개념 중에 ‘호명’(interpellation)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이는 A가 B를 아줌마, 검둥이, 불교인, 그리스도
교인이라고 지칭할 때 그것이 정말 ‘나’인가 하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준다. 호명은 늘 변하는 것이므로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다. 호명은 어쩌면 사회적으로 적합한 주체성이나 양식들을 제공하면서 그에 맞게 우리를 고용하거나 우리로 하여금 수용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호명은 확정된 것이 아니라 ‘차이’와 ‘지연’을 가지고 있는 시공간적 개념(데리다의 차연, differance)이다. 종교와 종교의 차이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유보되면서 그 개념의 규정과 변화를 반복, 생성한다. 그러므로 종교의 개념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열려있다. 내가 믿고 있는 종교가 절대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렇게 종교의 개념이 하나의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 무한히 열려 있는 개념이며 확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현재의 종교간의 갈등을 풀어가는 인식론적 토대를 마련한 셈이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니다. 종교간의 대화를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도그마로 논쟁을 하면 안 된다.

“생명력이 풍부하여서 가까이 오는 인격에 변화를 주는 힘은 사실은 설명을 초월한 것이므로 직접 인격적인 교섭이 중요하지 교리의 설명이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교리는 교세가 이미 상당히 나가서 밖에서 역습해오는 사상과 싸우는 때에 내적으로 경험된 것을 체계적으로 정돈할 필요를 느끼는 데서부터 발달하게 된다. 공세적이기보다는 수세적인 시기의 산물이다.”(함석헌저작집14, 새 시대의 종교, 한길사, 2009, 50)

도그마란 각 종교의 신념 체계를 철학적 사변을 통하여 구축해놓은 논리와 개념인데, 이 도그마는 수많은 시간과 서로 다른 역사적 맥락 속에서 발전해 왔기 때문에 논쟁을 위한 공통분모를 마련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자신의 교리를 수호하기 위해서 싸움을 하는 이른바 교리주의나 종교근본주의는 철저하게 자각하고 경계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도그마로 시작된 대화는 독단에 빠질 수 있다. 더군다나 자신의 종교가 가장 우월하다고 하는 편협한 사고와 독선으로 상대를 판단하기 때문에 일부의 종교 전통으로 타종교를 재단하여 인류의 경험을 총체적으로 수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런 의미에서 함석헌의 비판은 매우 적확하다.

“기성종교의 신앙에서 그릇된 선민사상과 충성주의의 관념을 버려야 한다. 그것은 자기중심주의의 변태밖에 되는 것 없다. 사실 이때껏 종교가 인심지도(人心指導)도 해왔지만 역사를 비참하게 한 것이 종교 아닌가? 모든 비참의 원인은 종파심에 있다. 좁고 교만한 종파심이 봉건 귀족을 압박자로 만들었고, 민족사상을 배타적으로 만들었고 독재자에게 구실을 주었다. 그랬기 때문에 주의(主義)라는 미명 아래 전쟁을 하지 않았나?”(함석헌저작집14, 새 시대의 종교, 한길사, 2009, 62)

  따라서 각 종교의 경험된 기억들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뿐만 아니라 개별 종교의 발언을 존중해야 한다. 타종교의 역사적 기억과 체험들, 그리고 그들의 언어를 귀중하게 여길 수 있어야 자신의 종교에 대해서도 자긍심을 가질 수 있다. 종교는 인류 전체의 정신적 흐름을 공유해왔기 때문에, 어느 특정한 종교만의 기억과 언어가 지배적인 것이 될 수 없다. 특히 종교의 정체성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만큼 배타성이 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당연한 논리이지만, 그래서 더욱 자기 주장의 논리를 절대화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언제든지 타자에게 열어놓고 배척하지 말며 배울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타종교, 타종교인에 대한 환대(hospitality)이다. 라틴어 hostis는 이웃과
적이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품고 있다. 우리는 이웃을 자신의 얼굴을 대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적으로 대하든가 양자택일을 할 수밖에 없다. 이웃 종교에 대한 선택지가 많지 않은 것은 고사하고 한 종교의 선택이 극과 극을 오가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종교간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도그마나 환대를 통한 만남이 공통적인 사회의 관심사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 지역의 현안문제를 놓고 서로 다른 종교들이 모여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종교적인 지혜를 모은다면 종교간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 지역이나 지구촌 전체의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 마당에 지역의 종교들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한심스럽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위 이미지는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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