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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강좌

윤리없는 시대, 다시 인으로 돌아갑시다!

by anarchopists 2019. 11. 22.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2/24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의 눈으로 읽는 동양철학]


유가철학의 ‘인’(仁)사상에 관한 이해-공자를 중심으로


1. 인은 인간의 관계적 삶의 본질이다!

 
원래 우리나라는 이씨 조선 이래로 유가철학(혹은 유교)을 국가 정치의 이념이자 백성들의 삶의 근본으로 삼아 왔다. 우리는 그것이 국가 통치의 이데올로기로 남용되면서 그 본질적인 정신이 곡해되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정신과 맥이 그간 우리를 규정하고 충과 효를 기반으로 하는 윤리적 삶을 지탱해왔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거기에는 유가철학, 특히 공자의 독특한 사상의 핵심인 ‘인’(仁)이 있었다. 한자어가 표상하는 것처럼, 인은 관계적 용어이다. 그것은 공자가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고유한 본질을 깨달았다는 것을 뜻한다.


  공자의 인은 자신의 철학뿐만 아니라 유가철학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개념이다. 본래 인이라 함은 “이(二)와 인(人)으로 되어 있으며 그 의미는 친(親)”으로 본다(說文解字). 또한 중용에서도 “仁을 人”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친밀한 관계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요컨대 인은 ‘사랑’이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의 공동체가 있는 곳에는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기 마련이다. 본시 인간은 태생이 홀로는 살 수 없게 되어 있는 존재다. 공자는 그러한 인간됨의 속성과 삶을 인이라 규정하였다. 즉 공동체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통찰하였던 것이다. 또한 유가철학의 인은 일개 국가의 군주나 한 가정의 가장이 똑같이 갖춰야 하는 인격 윤리였다. 한 국가를 다스리는 군주는 백성들을 사랑으로 다스려야만 하고,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은 식솔들을 사랑하는 배려로 이끌어가야만 한다. 이렇듯 유가철학에서 인은 윤리적 공동체로서 가장 기본이 되는 가정에서부터 더 넓게는 국가의 통치 윤리로까지 확대되었던 것이다.


2. 인은 타자에 대한 연민이다!

  프린스턴 대학의 동양학 교수였던 모트(F.W. Mote)에 의하면, 인의 실천적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는 인을 두고 타자의 행복에 관심을 기울이는 윤리라고 주장했다. 타자의 행복을 바라고 그것에 관심을 갖게 된다면 자연히 인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고 본 것이다. 인하는 마음은 나의 이익과 행복에 먼저 이끌려지는 것이 아니라 타자의 이익, 타자의 관심을 우선으로 하는 것이다. 나아가 타자의 고통, 타자의 슬픔, 타자의 어려운 처지에 측은지심을 느끼는 것이 인하는 마음이다. 이것은 타자를 나와 하나라고 인식하지 못한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실천윤리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유가철학의 인의 윤리는 정서적 윤리 또는 감성적 윤리이다. 물론 감정이 동반되지 않고서 윤리가 이성적 실천으로 표현된다는 것은 사실 모순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타께우찌 요시오(武內義雄)가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인은 ‘친애의 정’이다. 그에 의하면 인이란 먼저 가족 관계에서부터 시작이 된다고 본다. 그것이 바로 효제(孝悌)의 윤리이다. 『논어』 학이편(學而篇)에 보면 “효도와 우애는 인의 근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인은 가정에서 부모님께 효하고, 형제들과 우애하는 것이 장차 사회 및 국가에 이르기까지 확대, 완성되는 공동체 윤리이다. 공동체가 건강하고 건전하게 유지되려면 먼저 가정에서 가족 구성원의 관계가 사랑으로 교류하고 서로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만 한다. 공자는 가족 공동체나 국가 공동체의 결속력과 그 지속적 관계는 ‘사랑’(仁)에 달려 있음을 자신의 혼란한 정치적 상황 속에서 체험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이 인은 비단 가족 공동체와 국가 공동체의 관계 윤리뿐만 아니라 세계의 평화와 행복에도 기여를 하는 윤리가 된다.


  이러한 도덕적 실천의 궁극적인 표출은 ‘충’(忠)과 ‘서’(恕)로 나타난다. ‘충’이라 함은 정직한 마음, 즉 나에게 거짓이 없고 정직하여 바로 서 있는 것을 뜻한다. ‘서’라 함은 나의 마음이 타자의 마음과 같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충을 통하여 나 자신에게 먼저 정직한 마음, 깨끗하고 거짓이 없는 참된 마음을 가질 때 타자의 마음과 같아 질 수 있고 그 속에서 남을 사랑하고 자비를 베푸는 인이 나올 수 있다. 그래서 방동미는 충서지도(忠恕之道)를 ‘광대한 동정심’이며 ‘관점 변경’이라고 말하고 있다. 인의 구체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는 이러한 충서지도(忠恕之道)와 결구지도(絜矩之道)를 《大學》과 《中庸》에서 뽑아보았다.

윗사람이 싫어하는 것을 아랫사람이라 하여 부리지 말 것이며 아랫사람이 좋아하지 않는 것을 윗사람을 섬길 경우에 쓰지 말 것이다. 그리고 앞사람이 싫어하는 것을, 뒷사람을 앞에서 인도할 경우에 쓰지 말 것이며, 뒷사람이 싫어하는 것을 앞사람을 좇을 경우에 쓰지 말 것이다. 그리고 오른쪽 사람이 싫어하는 것을 왼쪽 사람에게 주고받지도 말 것이며, 왼쪽 사람이 싫어하는 것을 오른쪽 사람에게 주고받지도 말 것이다. 이것을 혈구지도라 한다(所惡於上母以使下; 所惡於下母以事上; 所惡於前, 母以先後; 所惡於後, 母以後前; 所惡於右, 母以交於左; 所惡於左, 母以交於右, 此之謂絜矩之道. 《大學; 10》).

충서의 도는 결코 심원한 것이 아니다. 자기가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은 남에게 하지 말고, 자기가 자식들에게 바라는 그 마음으로 어버이를 섬기며, 자기의 신하들에게 바라는 그 마음으로 임금을 섬기며, 자기의 아우에게 바라는 마음으로 형을 섬기며, 벗들에게 바라는 마음으로 먼저 벗들에게 베풀어주어라(忠恕違道不遠, 施諸己而不願, 亦勿施於人....所求乎子以事父....所求乎臣以事吾....所求乎弟以事兄.....所求乎朋友先施之. 《中庸》).


  “차라리 자기가 괴로울지언정 남이 괴로워하는 것을 못 견디는 동정심을 갖도록 해주지 못한다면 도덕교육은 법적 제재와 다를 게 없다.” 이처럼 공자의 인은 인간에 대한 연민의 정이 물씬 풍긴다. 사람은 누구나 본질적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 그 사랑하는 마음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광대한 연민과 관점 변경으로 드러나야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감정적 교류를 인이라고 규정한 공자는 가정 윤리와 국가 윤리를 동일한 정서적 윤리의 바탕에서 보고 있다. 인이 가정에서 제대로 실천되어질 때 그것이 국가의 윤리로서 공동체를 굳건히 하는 데에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공자에게 있어서 가정에서 부모에게 효하고 형제들끼리 우애하는 것은 국가 및 세계 윤리의 초석이 된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자신의 마음을 바로 잡고 참된 마음을 통해 남을 이해하고 남의 관점에 서서 그를 배려해야만 한다(충서).
 

  오늘날 개인 윤리와 공동체 윤리를 논하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사회가 병들어 가고 있다. 저마다 인하는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공자가 보고 있는 것처럼 끝임 없이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지금 우리는 학교 선후배와의 갈등과 폭력, 세대간의 갈등, 노사간의 갈등, 종교간의 갈등, 개인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의 충돌, 국가와 국가간의 폭력과 테러, 인간의 끝 모를 욕망으로 인한 자연에 대한 인간의 파괴와 착취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는 남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태도 변경, 즉 완전한 덕으로서의 인을 지향해야만 이러한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위 이미지는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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